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세월호 추모시집
- 출판사
- 실천문학사 | 2014.07.24
푸른 봄들이 우리 눈앞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동안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사고는 국가 안전 시스템뿐만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엄마저 냉혹한 자본의 권력 앞에 무참히 파괴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온 국민에게 크나큰 슬픔을 안겨준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사고 수습이나 대책은 요원하다. 지난 6월 2일 문학인들은 시국 선언을 통해 정부의 자격을 묻고 권력의 폭력을 고발했다. 그리고 세월호 추모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를 출간하며 문학의 윤리로 권력과 싸우고, 문학의 자유로 절망을 헤쳐나가고자 다짐한다.
이 책의 작가 인세 전액과 출판사 수익금 10%는 아름다운재단 ‘기억 0416 캠페인’에 기부되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캠페인은 참사의 사회적 기록을 위한 시민아카이브 구축 지원, 지역 사회복지사의 유가족 방문활동 지원 및 안산 지역공동체 복권치유 인프라지원 등의 사업으로 진행한다.
오늘 우리의 삶이 세월호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제주를 운항하는 6,835톤 대형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 해역은 맹골수도가 위치한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센 곳이다. 4월 16일 오전 8시 52분경,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에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최초의 신고자로 알려진 학생의 첫마디는 “살려주세요”였다.
사고가 발생하자 언론들은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사고 소식에 놀란 시민들은 얼마 뒤 승객 전원 구조라는 속보를 듣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이는 곧 오보임이 밝혀졌다. 사고 발생 후 제대로 된 구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울어가는 배 안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들은 선장의 퇴선 명령을 기다렸다. 그러나 선내 방송은 제자리를 지키라는 말만 반복했다. 선장과 선원들이 배를 빠져나가면서도 승객들에 대한 퇴선 안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수많은 이들의 손과 발을 묶은 것은 차가운 바닷물도, 두꺼운 강철판도 아닌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이었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그 말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조립을 기다리는 나사들처럼 부품들처럼
주황색 구명복을 서로 입혀주며 기다렸다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공장의 유니폼이라는 것도 모르고
물로 된 감옥에서 입게 될 수의라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은 끝까지 어른들의 말을 기다렸다
_ 나희덕, 「난파된 교실」 부분
그날 배에서 빠져나온 선원 중 한 사람은 다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가 회사와 나눈 통화에는 배 안에 타고 있는 승객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었다. 그 시간에도 승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선내 방송에 주목했다. 배 안에 남은 직원들은 아직 구명조끼를 입지 못한 승객에게 자신의 것을 벗어 주었고, 선생님과 부모들은 우는 아이들을 달랬다.
그에 앞서 해경 직원은 신고 승객에게 경도와 위도를 물었다. 현장에 출동하고 나서도 가라앉는 배에 다가가지 못하고 근처를 맴돌 뿐이었다. 배에서 탈출한 승객을 구한 것은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선들이었다. 침몰하는 배에 탄 학생이 다급한 목소리로 “살려주세요.”라고 말하고 나서 이후 몇 시간 동안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날 진도 앞바다에서 가라앉고 있던 것은 세월호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가라앉고 있었다.
침몰입니까? 아니 습격입니다 습격입니다!
우리들의 고요를, 생의 마지막까지 번지던 천진한 웃음을
이윤의 주구들이
분별심 없는 관료들과 전문성 없는 전문가들이
구조할 수 없는 구조대가
선장과 선원과 또 천상에 사는 어떤 선장과
선원들로부터의…… 습격입니다
_ 문동만, 「소금 속에 눕히며」 부분
국회의원, 장차관, 대통령까지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팽목항에 다녀갔다. 그들은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조속히 대응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언론은 지상 최대의 작전이라고 떠벌였지만 그들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 같았다. 상황은 진척되지 않았다. 사고 후 수많은 대책본부들이 구성됐으나 대책이 없었다. 그들을 진두지휘할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 그 사실을 지적하자 청와대는 스스로가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이 망쳐지는 동안 저 침묵의 바다에, 저주의 바다에 슬며시 고개를 쳐드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실체였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배에 타고 있는 국민들의 실체였다.
돌려 말하지 마라
온 사회가 세월호였다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이 세월호다
자본과 권력은 이미 우리들의 모든 삶에서
평형수를 덜어냈다
(중략)
자본의 무한한 축적을 위해
세상 전체가 기울고 있고 침몰해가고 있다
그 잔혹한 생존의 난바다 속에서
사람들의 생목숨이 수장당했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돌려 말하지 마라
이 구조 전체가 단죄받아야 한다
사회 전체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_ 송경동,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부분
사고 후 100일이 지나고 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다. 세월호 특별법도 진척이 없다. 세월호 소유주는 행방을 감췄다. 얼마 전 희생자 가족들은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세월호는 여전히 침몰 중이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침몰 중이다. 그날 배 안에 타고 있던 376명의 이름은 우리 모두의 이름이었다.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책속으로
§. 발간사
참사 직후, 우리는 참혹한 심정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뜻을 되새기기 위해 여기에 다시 싣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다. 무너진 것은 국가 안전 시스템만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일의 뜨거움과 생명 가진 것들의 존엄 자체가 냉혹한 이윤과 차가운 권력 앞에서 침몰해버렸다. 말의 질서와 말의 윤리를 믿는 작가들이 더욱 망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힘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피폐를 응시하고자 한다. 우리는 국가가 아니라, 함께 사는 이웃들의 박해받는 슬픔이 가진 생명력을 믿고자 한다. 여전히 말은 무력하고 인간을 위한 세상은 멀어 보인다. 하지만 그 먼 곳이 반드시 가야 할 길임을 알기에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
문학은 본래 세상의 모든 약한 것들을 위한 것이고 세상의 가장 위태로운 경계에 대한 증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 기억하고, 그치지 않고 분노하며 끈질기게 싸울 것이다. 이러한 문학의 언어를 두려워할 줄 아는 권력을 원한다. 정권의 안위가 아니라 위임받은 권력의 책임에 민감한 정부를 원한다. 이 정부를 허용하고 방임한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자인하며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정부의 책임을 묻겠다.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무능하고 진실을 억압하는 데에는 능란한 정부의 자격을 캐물을 것이다.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나서는 오만과 착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누가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주었단 말인가. 위임받은 권력으로 국가를 참칭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그 착각을 허락한 적이 없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적 가치만 지킬 것을 요구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세월호에서 가족과 친구와 연인을 잃은 비통한 슬픔을 디딤돌 삼아 우리는 이렇게 다짐한다. 우리의 자존을 겁박하는 권력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생명과 일상을 위협하는 모든 부정에 회피하지 않고 맞설 것이다. 우리의 미래와 사랑을 자본에게 통째로 맡기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희망을 퍼뜨리면서 절망과 싸울 것이며 사랑을 지키면서 억압을 깨뜨릴 것이다. 정의를 말하면서 협잡을 해체할 것이며 공동체를 껴안으면서 권력의 폭력을 고발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위해서라면 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 이것이 문학의 윤리이며 문학이 말하는 자유임을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집은 우리의 슬로건이다. 맹골수도 검푸른 바닷속에 잠든 영혼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 2014년 6월 2일 문학인 시국 선언 「우리는 이런 권력에게 국가 개조를 맡기지 않았다」 일부 발췌.
_ 2014년 7월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두고
§. 편집자가 꼽은 시
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선우
믿기지 않았다. 사고 소식이 들려온 그 아침만 해도
구조될 줄 알았다. 어디 먼 망망한 대양도 아니고
여기는 코앞의 우리 바다.
어리고 푸른 봄들이 눈앞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동안
생명을 보듬을 진심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사방에서 자동인형처럼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 시키는 대로 하라, 지시를 기다리라.
가만히 기다린 봄이 얼어붙은 시신으로 올라오고 있다.
욕되고 부끄럽다, 이 참담한 땅의 어른이라는 것이.
만족을 모르는 자본과 가식에 찌든 권력,
가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무능과 오만이 참혹하다.
미안하다, 반성 없이 미쳐가는 얼음 나라,
너희가 못 쉬는 숨을 여기서 쉰다.
너희가 못 먹는 밥을 여기서 먹는다.
환멸과 분노 사이에서 울음이 터지다가
길 잃은 울음을 그러모아 다시 생각한다.
기억하겠다, 너희가 못 피운 꽃을.
잊지 않겠다, 이 욕됨과 슬픔을.
환멸에 기울어 무능한 땅을 냉담하기엔
이 땅에서 살아남은 어른들의 죄가 너무 크다.
너희에게 갚아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마지막까지 너희는 이 땅의 어른들을 향해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차갑게 식은 봄을 안고 잿더미가 된 가슴으로 운다.
잠들지 마라, 부디 친구들과 손잡고 있어라.
돌아올 때까지 너희의 이름을 부르겠다.
살아 있으라, 제발 살아 있으라.
난파된 교실
나희덕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그 말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조립을 기다리는 나사들처럼 부품들처럼
주황색 구명복을 서로 입혀주며 기다렸다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공장의 유니폼이라는 것도 모르고
물로 된 감옥에서 입게 될 수의라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은 끝까지 어른들의 말을 기다렸다
움직여라, 움직
'나그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일미사 11월의 묵상 /손톤 와일더의 희곡 『우리 읍내』 (0) | 2014.11.19 |
---|---|
어린왕자/ 오늘의 묵상 中 (0) | 2014.09.23 |
함민복 시-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0) | 2014.09.17 |
류시화 의 아침의 시 (펌) (0) | 2014.08.28 |
그날/ 황미광님 (0) | 2014.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