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류시화 의 아침의 시 (펌)

klgallery 2014. 8. 28. 11:50

아침의 시_84


벽에 세워지고, 총살대는 발사 명령을 기다린다
그가 형 집행 유예를 받은 것은 그때였다...
만일 그들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쏘았다면?
그 모든 작품들을 쓰기도 전에?
아마도 세상에
직접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리라
그의 책을 읽어 본 적도 없고
결코 읽지 않을 사람들이
수십억 명이니까
그러나 청년인 나는 안다
나를 공장에서 벗어나게 하고
창녀들을 지나치게 하고
온 밤 내내 나를 들어올려
더 나은 장소에 내려놓은 것이
그였다는 것을
심지어 술집에서 다른
노숙자들과 술을 마시면서도
도스토예프스키에게
형 집행 유예 명령이 떨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것은 나에게 내려진 형 집행 유예였으며
나로 하여금 똑바로 쳐다보게 해 주었다
내가 사는 세상의
부패한 얼굴들을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는 죽음을

- 찰스 부코스키 <도스토예프스키> (류시화 옮김)


빈민 병원의 군의관 아들로 태어난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 최고의 건축학교 상트 페테르부르크 공병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문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첫 장편소설을 발표해 호평을 받았으나 공상적 사회주의 운동 서클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20명의 핵심단원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 성탄절을 사흘 앞둔 날,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수들과 함께 끌려나가 광장의 총살대 앞에 세워졌다. 얼굴에는 검은 복면이 덮이고 세 명의 죄수가 차례로 총을 맞고 쓰러졌다. 도스토예프스키 차례가 되고 총살대가 명령을 기다리는 순간 한 병사가 '발사 중지!'를 외치며 달려왔다. 황제로부터 형 집행 유예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형 직전에 목숨을 건졌다. 훗날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는 반동세력을 위협하기 위해 사전에 계획된 일이었다.

같이 살아난 친구 하나는 이 일을 겪은 후 미쳐 버렸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남은 생을 문학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시베리아로 이송되어 유형지와 감옥에서 10년 동안 고초를 겪고 자유의 몸이 되자 인류 문학사에 남은 걸작들을 쓰기 시작했다. 만일 그때 총살을 당했다면, 혹은 황제의 명령을 가지고 달려온 병사가 조금만 늦었다면, 혹은 폭군인 아버지와 일찍 죽은 어머니와 십대부터 시작된 간질 발작을 포함해 그의 삶이 그토록 고뇌에 차지 않았다면 탁월한 심리 묘사를 바탕으로 한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지하 생활자의 수기>, <백치> 같은 걸작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을 하층민들과 함께 살면서 '잘난 체하는 세상'의 부패한 얼굴들을 향해 직설적이고 신랄한 작품들을 던진 시인이자 소설가인 찰스 부코스키, 그가 자신의 삶과 문학이 도스토예프스키에게 크게 빚지고 있음을 감동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든 죽을 수 있었다. 추락과 침몰과 전쟁과 자연재해가 언제든 덮칠 수 있다. 우연에 가까운 행운으로 이 세계에 살아남아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떤 차이를 이 세상에 가져다주고 있고, 누군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 수많은 시를 읽으면서
당신은 깨달을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비창조적으로 살아왔는지를

부코스키가 한 말이 나에게도 뼈아프게 박힌다.


* 찰스 부코스키(1920-1994)에 대해서는 '아침의 시' 54, 58, 59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그림_이반 아이바조프스키(1817-1900, 아르메니아계 러시화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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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시_84
  
  
벽에 세워지고, 총살대는 발사 명령을 기다린다
그가 형 집행 유예를 받은 것은 그때였다
만일 그들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쏘았다면?
그 모든 작품들을 쓰기도 전에?
아마도 세상에
직접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리라
그의 책을 읽어 본 적도 없고
결코 읽지 않을 사람들이
수십억 명이니까
그러나 청년인 나는 안다
나를 공장에서 벗어나게 하고
창녀들을 지나치게 하고
온 밤 내내 나를 들어올려
더 나은 장소에 내려놓은 것이
그였다는 것을
심지어 술집에서 다른 
노숙자들과 술을 마시면서도
도스토예프스키에게
형 집행 유예 명령이 떨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것은 나에게 내려진 형 집행 유예였으며
나로 하여금 똑바로 쳐다보게 해 주었다
내가 사는 세상의 
부패한 얼굴들을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는 죽음을
    
- 찰스 부코스키 <도스토예프스키> (류시화 옮김)
  
   
빈민 병원의 군의관 아들로 태어난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 최고의 건축학교 상트 페테르부르크 공병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문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첫 장편소설을 발표해 호평을 받았으나 공상적 사회주의 운동 서클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20명의 핵심단원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 성탄절을 사흘 앞둔 날,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수들과 함께 끌려나가 광장의 총살대 앞에 세워졌다. 얼굴에는 검은 복면이 덮이고 세 명의 죄수가 차례로 총을 맞고 쓰러졌다. 도스토예프스키 차례가 되고 총살대가 명령을 기다리는 순간 한 병사가 '발사 중지!'를 외치며 달려왔다. 황제로부터 형 집행 유예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형 직전에 목숨을 건졌다. 훗날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는 반동세력을 위협하기 위해 사전에 계획된 일이었다.

같이 살아난 친구 하나는 이 일을 겪은 후 미쳐 버렸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남은 생을 문학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시베리아로 이송되어 유형지와 감옥에서 10년 동안 고초를 겪고 자유의 몸이 되자 인류 문학사에 남은 걸작들을 쓰기 시작했다. 만일 그때 총살을 당했다면, 혹은 황제의 명령을 가지고 달려온 병사가 조금만 늦었다면, 혹은 폭군인 아버지와 일찍 죽은 어머니와 십대부터 시작된 간질 발작을 포함해 그의 삶이 그토록 고뇌에 차지 않았다면 탁월한 심리 묘사를 바탕으로 한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지하 생활자의 수기>, <백치> 같은 걸작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을 하층민들과 함께 살면서 '잘난 체하는 세상'의 부패한 얼굴들을 향해 직설적이고 신랄한 작품들을 던진 시인이자 소설가인 찰스 부코스키, 그가 자신의 삶과 문학이 도스토예프스키에게 크게 빚지고 있음을 감동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든 죽을 수 있었다. 추락과 침몰과 전쟁과 자연재해가 언제든 덮칠 수 있다. 우연에 가까운 행운으로 이 세계에 살아남아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떤 차이를 이 세상에 가져다주고 있고, 누군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 수많은 시를 읽으면서
당신은 깨달을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비창조적으로 살아왔는지를

부코스키가 한 말이 나에게도 뼈아프게 박힌다.
  
  
* 찰스 부코스키(1920-1994)에 대해서는 '아침의 시' 54, 58, 59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그림_이반 아이바조프스키(1817-1900, 아르메니아계 러시화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