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함민복 시-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klgallery 2014. 9. 17. 11:03

 

 

함민복 시-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배가 더 기울까봐 끝까지

솟아 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 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 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 세상을 안심시켜 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 이 공기, 숨 쉬기도 미안한 사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