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마음 깊은 곳, 붉은 꽃 한 점 이성렬 만약 이 황폐한 정원의 토양 위에 한 송이 붉은 작약이 피어난다면 그대는 그것을 무엇이라 하겠는가. 오랫동안 나는 이 정원으로 꽃씨들을 유혹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나날은 참으로 외로웠으나 나는 배추벌레 한 마리 초대하지 않았다. 이 정원의 밑그림으로 사용했던 화선지를 나는 이미 오래 전에 태워버렸다. 양분이 되지 않는 재를 한 귀퉁이에 뿌려 놓고 나는 그저 저무는 햇살 한 쪽 끝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 그리고는 저녁 빗방울들이 북소리처럼 내려 굵은 흙더미 사이로 봄날의 숨결 몇 삽이 스며들기를 바랬을 뿐. 잎사귀 하나 피우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아픔의 포자들이 터져야 하는지 익히 알고 있었기에 나는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꽃씨 한 개의 뿌리내리고자 함을 짐짓 모른 체 했었다. 청초한 꽃 한 송이가 척박한 토질을 바꿀 수 있겠는가. 이 황폐한 정원에 핀 적작약 한 송이를 그대는 기적이라고 부르겠는가. 물기도 없는 땅에 꽃은 흙과 뿌리 그리고 날벌레들 사이의 아무런 거래도 없이 피었다. 흙 속에 박힌 기와 조각들 사이에 굳게 입을 다물고. 이 꽃의 호흡을 내가 오랜 후에 이 정원에서 터득한 먹이사슬의 법칙으로는 헤아릴 수가 없다. 아침 햇빛이 구름 사이로 찾아 들 듯이, 꽃도 그냥 거기에 피어난 것일까. 오, 햇빛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하여 지상에 내려앉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대는 햇빛마저도 기적이라고 하겠는가. 지금 이 황폐한 정원에 눈물처럼 피어 내 마른 눈을 적시는 작약꽃을 그대는 사랑이라 부르리라. |
출처 : 살맛 나는 세상이야기들...
글쓴이 : 크레믈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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