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운명의 바람 앞에 흔들리는 두 형제의 사랑과 선택! 1920년 아일랜드
젊은의사 데미언은 런던의 병원에 일자리만 얻지만 영국군의 횡포에 친구 미하일이 목숨을 잃는 사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결국 데미언은 자신의 꿈인 의사를 포기하고 형 테디가 이끄는 IRA (Irish Republican Army 아일랜드 공화국)에 가담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다 영국군의 무기를 빼앗는데 성공한 그들은 어느날 내부의 밀고로 잡히게 되고, 형 테디는..
▲ 웩스포드 폭동(Wexford Rebellion, 1798)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Robert Dwyer Joyce (1836-1883, 아일랜드)
I sat within a valley green, Sat there with my true love 나는 푸르른 골짜기 속에서 앉아 있네, 나의 진정한 사랑과 함께
Twas hard the mournful words to frame To break the ties that bound us
Twas sad I kissed away her tears, Her arms around me clinging
I bore her to some mountain stream And many"s the summer blossom
제목에서 '보리밭'은 아일랜드, '바람'은 외세를 뜻한다. 1798년, 영국에 대항하여 아일랜드의 웩스포드 지방 아울라트(Oulart, Wexford)에서 실패로 끝난 웩스포드 폭동(Wexford Rebellion)에 참가하려는 한 젊은이가 사랑하는 연인과 막 헤어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영국 사회주의 감독 켄 로치(Ken Loach)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6)의 제목은 이 시에서 가져왔다. 'Sarah Jezebel Deva'이 부른 이 노래는 영화에서 주요한 곡으로 쓰이고 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어듣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 Sarah Jezebel Deva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 Clancy Brothers & Tommy Makem
낭만적 눈물이 아닌 정치적 눈물!
제국의 ‘분할-통치 전략’을 보여주는 텍스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문강형준 (영화평론가)
아일랜드 독립전쟁(1919∼21)과 아일랜드 내전(1922∼23)를 배경으로 하는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아일랜드 역사의 세 단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첫 번째 단계는 영국의 압제다. 12세기 후반(1169)부터 20세기 중반(1948)까지 이어지는 잉글랜드·영국의 아일랜드 식민화의 역사는 아직까지도 북아일랜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으로써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영어가 아닌 게일어로 말하는 청년 미하일이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영국군에 맞아 죽는 장면은 영국의 압제를 압축해 보여준다.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미하일의 장례식에서 동네 아낙네의 입을 통해 구슬프게 불리는 로버트 조이스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역시 1798년에 실패로 끝난 아일랜드 봉기에 나섰다 연인을 잃는 한 청년의 슬픈 얘기를 그린 시다.
두 번째 단계는 민족주의적 투쟁이다. 미하일의 죽음까지만 해도 런던행을 포기하지 않았던 데미안이 기차역에서 또 한번의 폭력을 목격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아일랜드공화국군(IRA)에 참여함으로써 영국에 대한 투쟁을 시작하는 이 영화의 중반부는 독립을 염원하는 아일랜드인들의 단합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세 번째 단계는 내부의 분열이다. 영화에서는 크게 두 사건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지주인 존과 존의 협박에 넘어가 데미안 일행의 거처를 발설한 마을 청년 크리스를 처형하는 사건과 후반부에서 아일랜드 자유국 성립을 두고 내부 의견 대립 끝에 결국 형인 테디가 동생 데미안을 처형하는 사건이 그것이다. 데미안의 크리스 처형이 아일랜드 독립전쟁이 낳은 비극이었다면, 테디의 데미안 처형은 아일랜드 내전으로 생긴 비극이다.
“켄 로치의 가장 슬픈 영화”라는 허문영의 말(<씨네21> 제577호 ‘전영객잔’)은 이 두 장면만 두고서도 가능한 표현이다. ‘분열’과 ‘분할’이야말로 이 영화뿐 아니라 ‘슬픈 아일랜드’의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키워드일 것이다. 잉글랜드의 지배 이후 건너와 아일랜드 상류층을 장악하는 신교-지주-영국계 아일랜드인들과 토착민이자 하층계급을 이루는 가톨릭-농민-게일인들은 같은 아일랜드인이면서도 영국의 왕을 인정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피를 흘리며 싸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나온 영국계 아일랜드인들의 고뇌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버나드 쇼라는 영문학 거봉들의 작품의 토대를 이룬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돌아갈 ‘런던’이라도 있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들인 토착 아일랜드인들에게는 그마저도 없었다. 데미안 일행이 민족주의 앞에서 고뇌하기보다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영국은 아일랜드의 이 두 집단을 끊임없이 이간질함으로써 지배를 유지한다. ‘분할-통치전략’(divide and rule)이 그것이다.
켄 로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자로 알려져 있고, 이 영화에서도 섣부른 자치보다 계급의 입장을 강조하는 데미안과 댄에게 애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켄 로치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크리스를 죽여야 하는 데미안과 데미안을 죽여야 하는 테디가 겪는 슬픔을 통해 제국주의자들의 분할-통치 전략과 그로 인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눠야 하는 민중의 현실을 그리는 일이다.
크리스를 죽인 데미안은 크리스의 어머니를 볼 수 없고, 데미안을 죽인 테디는 데미안의 연인인 시네이드의 눈물을 감당해야 한다. 지주 존과 크리스를 죽이기 전에 댄에게 “조국이란 게 이럴 가치가 있는 거겠지”라고 말하는 데미안이지만, 드러난 결과는 모두가 모두에게 적이 되고 상처를 남기는 일이다. 압제에 대항해 일어난 민중은 이런 쓰라림을 겪어야 하지만, 그로 인해 영국은 아일랜드 남부를 자치령으로 묶고, 북부는 여전히 직접통치하는 실익을 얻는다. 이 거대한 지배의 메커니즘 속에서 사실 계급이나 민족문제는 부차적인 것 아닐까?
칸이 황금종려상을 이 영화에 바친 올해가 이라크가 수렁으로 빠지기 시작한 해였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아일랜드의 두 집단을 분할-통치했던 비슷한 시기에 이라크의 수니파와 시아파를 분할-통치함으로써 이들간에 씻을 수 없는 원한의 싹을 만든 것이 영국이었다.
이것이 다시 미국의 침략과정에서 불거져 이라크는 이미 내전상황이다. 아일랜드와 이라크의 슬픔이 외세에 의해 분단으로 갈려 여전히 ‘휴전’ 상태이며 내부의 치열한 싸움을 겪어야 하는 우리의 슬픔이기도 하다는 점은 또 어떠한가.
요컨대 이 영화는 아일랜드인들을 그리지만 실제로는 영국의 제국주의 지배전략을 보여주고, 과거의 역사를 다루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세계정세를 이야기한다. 이 영화를 보며 흘리는 눈물이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6년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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