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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Steve Paul Jobs | |
출생 | 1955년 2월 24일(1955-02-24) (56세) 미국 샌프란시스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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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미국 |
학력 | 리드 대학교 중퇴 |
직업 | 애플 대표이사 회장 월트 디즈니 이사 |
배우자 | 로렌 파월(Laurene Powell) |
자녀 | 4명 |
부모 | 폴 잡스 클라라 잡스 |
서명 |
스티븐 폴 잡스(Steven Paul Jobs, 1955년 2월 24일 ~ )는 애플의 CEO로, 현재 컴퓨터 산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했다. 애플 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하였다. 또한, GUI와 마우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보고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하였다. 1985년 경영분쟁에 의해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체제를 개발했다. 1996년 애플이 NeXT를 인수하게 되면서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고 1997년에는 임시 CEO로 애플을 다시 이끌게 되었으며 이후 다시금 애플이 혁신과 시장에서의 성공을 거두게끔 이끌었다.
잡스는 《인크레더블》과 《토이 스토리》 등을 제작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소유주이자 CEO였다. 월트 디즈니 회사는 최근 74억 달러어치의 자사 주식으로 이 회사를 구입하였다. 2006년 6월 이 거래가 완료되어 잡스는 이 거래를 통해 디즈니 지분의 7%를 소유한, 최대의 개인 주주이며 디즈니 사의 이사회의 이사가 되었다.
[편집] 어린 시절
스티브 잡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1]대학원생 동거 커플인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2] 태어난 지 1주일 후에, 학교를 다니고 있던 그의 어머니에 의해 캘리포니아 주 산타 클라라에 사는 폴/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되었다.[3] 잡스를 입양한 부부는 그에게 스티브 폴 잡스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를 낳은 부모는 결국에는 이혼하고 말았지만, 결혼해서 소설가이기도 한 잡스의 여동생 모나 심슨을 낳았는데, 둘은 어른이 될 때까지 만나지 못했다.
잡스는 "양부모"라는 단어를 싫어했는데, 그는 폴과 클라라 잡스 부부를 유일한 부모로 여겼다.
잡스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자주 빼 먹는 비행 청소년이였다. 담임 선생님이 돈과 사탕으로 구슬리는 것으로 겨우 학교생활을 하던 그는 히스키트라는 아마추어 전자공학 키트를 얻는 순간 인생의 전환점에 도착하게 된다. 그는 이 덕분에 어려서부터 전자제품의 작동원리를 익히게 되었다.[4]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쿠퍼티노 중학교와 홈스테드 고등학교를 다녔다.[5] 고등학교 시절 동안 그는 팔로 알토의 휴렛 패커드사에서 방과후 수업을 들었으며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휴렛 패커드사에서 여름 동안 임시 채용되기도 했다.[6] 1972년 고등학교에서 졸업한 잡스는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리드 대학교에 등록하여 철학을 공부하였으나 1학기만 수강한 후 중퇴하였다. 잡스는 이후에 부모님들이 비싼 학비를 내는 데 대해 부담스러웠다고 학교를 도중에 그만둔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중퇴하기는 했어도 그 후 18개월 동안 학교에 머물면서 여러 강좌를 들었으며, 특히 타이포그래피(글자를 다루는 시각 디자인의 한 분야이다. 출판계에서는 책의 주제를 아름다우면서도 개성있는 글씨로 요약하여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표지 디자인에 응용한다.) 수업은 이후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면서 수려한 글자체를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였다.
[편집] 일화
철저한 채식주의자로 견과류와 물만 섭취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펩시에 계약차 들렀을 때 펩시 음료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애플 초기, 펩시콜라의 사장인 존 스컬리를 영입하려 했으나, 대기업의 사장자리를 버리고 신생기업으로 가기를 망설이던 스컬리에게 "남은 일생 동안 설탕물이나 팔면서 살 겁니까?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꾸실 겁니까?"(Do you want to sell sugar water for the rest of your life, or do you want to come with me and change the world?)라고 하자 존 스컬리는 망설임 없이 애플로 이적했다고 한다. 딸인 리사가 태어났을 때 부친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받아들였고, 애플 리사는 그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연봉이 1달러인 최고경영자로 유명한데 이는 연봉을 한 푼도 받지 않을 경우에 법적으로 고용관계가 유지될 수 없기에 최소한도로 정해 놓은 액수이다.[7] 그는 실제로 연봉 1달러 외에도 스톡 옵션이나 여러 가지 성과급 형태로 보상받고 있다.[7]
[편집] 업적
그는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동업으로 애플 컴퓨터를 설립했다. 홈브루라는 이름의 클럽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이 개발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1을 공개했다. 애플1은 모니터도 없고 디자인도 투박했으나 의외로 큰 반응을 보이며 판매에 성공했고 그에 힘입어 1980년에는 주식을 공개했다. 1984년에는 IBM에 대항하여 최초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탑재한 애플 리사를 내놓았다. 그러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실패하였고, 또 매킨토시 프로젝트가 경쟁사 IBM에 비해 가격이 비싸기도 했다. 그리고 응용 소프트웨어 또한 부족하자 또 다시 실패하게 되었다. 이것은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PC를 사용하게 된 큰 사건이었다. 결국 스티브잡스는 1985년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애플을 떠난 뒤 넥스트사를 세워 세계 최초의 객체 지향 운영 체제인 넥스트 스텝을 개발하였고 1986년 이혼 문제 때문에 자금이 필요한 조지 루카스 감독의 컴퓨터 그래픽 회사를 인수하였다. 잡스는 회사 이름을 픽사로 바꾸고 10년 간 6천만 달러를 투자하여 할리우드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로 키워냈다. 픽사는 여러 번 단편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오스카상을 받았으며 그 뒤로 최초의 장편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는 디즈니사에 합병되었다. 그 후 1997년 넥스트는 애플에 인수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그는 애플로 돌아왔다. 그 해 7월 애플의 최고 경영자로 복귀하였으며, 1997년 10억 달러의 적자를 낸 애플을 한 해만에 4억 달러에 가까운 흑자를 내게 만들었다.[8]
이와 같은 스티브 잡스의 업적과 영향력 때문에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일부 그의 팬들은 예수를 빗대어 추켜세우기도 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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