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스크랩] 황금찬 시모음

klgallery 2009. 5. 22. 11:47
 


 
 
* 발소리 - 황금찬

어제는
달래의 파란 잎을 밟고
누가 걸어왔을까

오늘은
냉이의 하얀 꽃을 쓸며
또 누가 걸어오고 있을까.

물 오른 가지에
꽃봉오리는 부풀고
사랑은 눈 뜨고

벙글어 가는 매화꽃나무
이름 모를 산새
사랑의 앓음소리.

하얀 창호지
남창가에 머무는
동백꽃 소식.

얼음이 앉았던 자리에
꽃잎이 앉듯
인정이 먼 가슴엔
사랑이여 오려나.
 


 
* 나의 층계 - 황금찬

나의 처음 층계는
꽃이었다.
갈수록 그것은
돌층계였다.
그 위의 층계는
극형이였다.
앞서 간 사람들도
이 층계를 밟고 갔을까
한 층계 사이가
천 린가, 만 리
그들도 이 층계에서
방황했을까.
산다는 것은 피, 그리고 땀
다시 눈물이다.
이쯤에서 머무를 수 없을까
나의 형벌을.

 
* 바위 - 황금찬

너는
나지 않았어야 했다.

아니면
내가 나지 말았어야 했다.

바위는
하루를 천 년같이
꼼짝도 않는데

바람은
풀잎만 흔들고 있다.
 




* 사랑의 에스프리 - 황금찬

낮이면
구름이 되어
너의 창 앞에 떠돌다가
밤이 되면
비가 되어
네 잠든 꿈 언덕에
소리 없이 내리리라.


*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합창 - 황금찬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석양은 먼 들녘에 내리네.
염소의 무리는 이상한 수염을 흔들며
산을 내려오네.

종을 울리네.
황혼의 묏새들이
종소리를 따라
바람에 날리는 억새꽃같이
호숫가 숲으로 날아드네.

머리에 가을꽃을 꽂은
소녀들이
언덕 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교회의 종소리는 우리들을 부르네,
이 석양이 지나면
또다시 우리들은
아침을 맞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지고
촛불 위에 눈이 내리네,
눈 위에 순록의 썰매는 달리고.
그리하여 우리들도
어제의 소녀가 아니고
오렌지 향수가 하늘에 지듯
우리들의 향기도 지리.

종이 울리네.
숲 속에서 새들이 무상을 이야기하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소년들은 노래를 부르네.


 
 
* 보내놓고 - 황금찬

봄비 속에
너를 보낸다

쑥순도 파아란히

목매기 송아지가
울며 오는데

멀리 돌아간 산굽잇길
못 올 길처럼 슬픔이 일고

산비
구름 속에 조는 밤

길처럼 애달픈
꿈이 있었다

* 고독 - 황금찬

밖에는
눈이 내리고

새벽 3시 15분
추억 속의
편지를 읽고 있다.

 

'팔순소년'시인 황금찬 28번째 시집냈다 - 중앙일보

영원한 바닷가 소년의 꿈인 시인 황금찬 (黃錦燦) 씨가 팔순을 맞아 신작시집 '옛날과 물푸레나무' 를 펴냈다 (모아드림刊) .강원도 속초에서 난 황씨는 강릉에서 교직에 몸담으면서 1951년 시동인 '청포도' 를 결성해 그곳 문학청년들과 함께 동해 바다같이 맑고 확트인 '동해안 시' 를 일궜다.

이후 상경해서도 '해변시인학교' 교장을 맡으며 바다 정서로 문학도들의 시심을 맑게 틔워주고 있다. 다산 (多産) 시인으로도 손꼽히는 황씨의 28번째 신작시집인 이번 시집에도 자연과 낭만과 희망과 설렘을 향한 시심은 결코 늙지않고 있다.

"바다는 잠자고/별들만 눈 떴는데/가을 연인아/조가비의 침실에/등을 밝히고/조용한 호수/여름바다와/물새가 남긴 긴 대화/흘러간 노래처럼/달이 뜨고/싸늘히 식어가는/들국화/이 침실에 아침이 오기 전에/가을 연인아" ( '조가비의 침실' 전문) 바다.별.조가비.호수.물새.달.들국화 등 자연을 소재로 내세우며 가을 연인을 노래하고 있다.

세속과 문명의 세월에 찌들지 않은 바다와 호수를 돌려주면서,가을 그 영원한 설렘의 고향 같은 모습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겠다는 것이다. "요즘 시들은 주제나 소재가 너무 기계적이고 일상적이다. 시의 맛과 신비는 현실과 좀 동떨어져 있을 때 나오는 것인데. 나는 아직도 순수 자연물을 통해 꿈과 신비를 엿보고 싶다" 는게 황씨의 시관이다.

"내 평생 넘은 고갯길에서도/찾지 못했다./신을 들고 걸으면서도/보지 못했다./가을 나뭇잎 한장/물에 띄우고/그 위에 내려앉는 채색의 구름/손바닥에/앉아/무게를 갖지 않는/하늘 구슬/한사코 놓을 수 없는/늦가을 햇살이다./저녁 하늘은/구름으로 물들고/하늘 구슬은/나의/영원과/같이 있었다. "( '가을에' 전문)

단풍잎 한장 물에 띄워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낀 햇살에 층층이 물들어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햇살이 알알이 눈섭에 맺히는 것을 보던 안타깝게도 아름다운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날 저문 저녁까지도 그 햇살, '하늘 구슬' 을 '영원' 처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아무 무게도 지닐 수 없는 그 맑은 햇살의 영롱한 구슬같은 시들로 황씨는 오늘도 우리를 가볍게, 그 순수했던 시절로 데려가고 있다.
 
 
* 황금찬

1918년 강원도 속초생,
일본 다이도호학원 중퇴.
현대문학으로 등단('56). 시문학상 수상('65). 대한민국 문학상 수상(80),
시집 <오월의 나무> <영혼은 잠들지 않고> <고독과 허무와 사랑과>
<사랑교실> <한강> <그리운 날은> 등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합창곡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김서봉 그림

출처 : 방문해주신 모든분께 행복을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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