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6월 29일 월요일 흐림
어쩌면 어제와 오늘의 날씨가 이렇게 다를까 하며 오름에 올랐습니다.
아직도 거린악 쪽은 구름과 안개에 뒤덮여 있지만 하늘의 터진 듯이 내리던 비는
멈추었고 땅도 어느덧 말라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대록산과 소록산 사이로
새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펼쳐져 장마속의 기분을 상쾌하게 했습니다.
오름 곳곳엔 산수국이 피어나 더욱 짙은 색으로 변해가고 숲속 곳곳에 보이는
산수국은 이제야 피어 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그밖에 층층나무 꽃이 보이고는….
대록산 정상에 올랐을 때, 한라산이 막 구름을 벗겨지려다 밀려드는 기압골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주춤하더니, 이내 다시 밀려드는 안개에 갇히고 맙니다.
분화구 쪽 숲으로 들어가 나무들이 뿜어내는 향기를 온몸으로 느껴봅니다.
그 중에는 더덕향도 섞여 있고 죄피향도 섞이고 딱히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자꾸 산으로 나를 불러내는 그 알 수 없는 향기가 기운을 불어넣어줍니다.
숲을 나와 소록산으로 가는데, 막 피기 시작한 좁쌀만 한 작살나무꽃이 반깁니다.
6월이 다 가는 숲은 꽃보다는 진초록으로 가득차고 소록산 북쪽 자락에 앉아
눈앞에 가득하게 들어오는 대록과 소록의 정기를 받으며 마시는 술 한 잔 역시
나를 산으로 불러내는 힘인 것 같습니다. 이어 주변에 있는 병곳오름과 번널오름을
돌아 점심을 먹고 돌아왔는데, 골목길에서 이 원예용 작은 치자꽃을 만났습니다.
♧ 치자꽃 설화 - 박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 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는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 치자꽃 설화에 부쳐 - 김영숙
사랑이 서럽기야 했겠습니까
다 영글지 못한 인연으로 만나져
내도록 눈썹 밑에 달라붙은 채
눈을 감으나 뜨나 발 그림 그리고 섰는
미련이 그리움인 까닭입니다
내 전생에 어찌 살아
만나는 인연마다 골이 패이고
설익은 목탁소리에 속울음을 묻는 것인지
아무런 답을 들려 보낼 수 없었던
업장이 서러웠던 까닭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번민은 아닙니다
안고 싶은 그 사랑을 밀어내며
힘 풀리어 매달리던 무거운 두 팔
승속을 흐르는 일주문 달빛에 젖어
좀체 떨어지지 않던 한 쪽 다리입니다
정작 서러운 것은, 법당을 서성이다
열린 법당문을 빠져나가던 경종소리 쫓아
인연하나 변변히 맺지도 못하면서
변변하지도 못한 인연하나 못 놓아
산문을 되돌리던 복 없는 영혼이었습니다
*박규리님의 '치자꽃 설화'를 읽고...
♬ I Have A Dream - Connie Talbot (6세 소녀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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