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로 건너가 중산간도로로 막 접어들었을 때
제주대학교 아열대식물연구소 담벼락을 장식하고 있는
저 하얀 꽃무더기, 조밥이라기보다는
쌀밥나무라 부르고 싶은 저 녀석들을 만났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차를 세우고 한 동안 바라보았다.
그 옛날 배고프던 시절 보릿고개에 저 꽃이 조밥으로 보일 만큼
부황이 들었을 때 하눌타리 뿌리, 무릇 뿌리, 배추 뿌리 캐다먹고
전분을 빼버린 고구마 찌꺼기, 밀기울도 못 먹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조팝나무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관목으로
높이는 1.5∼2m 정도로 줄기는 모여 나며 짙은 밤색이고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이며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다.
꽃은 4∼5월에 피고 흰색 산형꽃차례로 달린다.
열매는 골돌(利咨)로서 털이 없고 9월에 익는데
꽃잎이 겹으로 되어 있는 기본종은 관상용으로 일본에서 들어 왔으며
꽃 모양이 튀긴 좁쌀을 붙인 것 같아 조팝나무라고 했다한다.
뿌리는 해열의 효능이 있어 민간에서는 감기로 인한 열, 신경통 등에 쓴다.
♧ 조팝나무 - 반기룡
조팝나무를
보면 밥이 고프다
허리가 휘청거리듯
잔뜩 나무를 싣고
집으로 돌아오면
허기가 허리끈을 당기고
눈알이 핑핑 돌지만
고봉밥 한 그릇이면
금세 생기가 나고
다리가 듬직해진다
"밥이 보약여"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얘야 밥 많이 먹고 힘쓰거라"
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도 낭랑히 들리는 듯하다
힘줄이 툭툭 솟고 알토란같은 근육은
고봉밥 덕분인가 보다
산자락에 서 있는
조팝나무가 고봉밥처럼 환하다
♧ 조팝나무 꽃 - 김종익
식장산 한적한 계곡 오르다가
조팝나무 하얗게 핀 군락 만나
왈칵 눈물 나도록 반가웠다
어린 시절 누나 등에 업혀 오르내리던
언덕길에 반겨주던 꽃
오랜만에 만난 누나인 듯
어루만지며 서로 안부를 물었다
조밥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던 시절
그 누나 조팝나무 꽃 하얗게 어우러진
고개를 넘어 시집가다가
자꾸 뒤돌아보며 눈물짓던
한번 헤어지고 만나지 못한 누나
몇 번 철책 선에 가서 그 너머 어딘가에 있을
그 이름 불렀었지만 메아리 되돌아오고
눈물을 삼키느라 목이 메었는데
오늘 누나 조팝나무 꽃에 소식 전해준다
누나 등에 업혀 응석부리던 나도
이젠 머리 하얀 조팝나무 되어 서 있다
♧ 조팝나무 - 도종환
낮에는 조팝나무 하얗게 피는 걸 보다 왔구요
날 저물면 먼저 죽은 시인의 시 몇 편을 읽었어요
어떤 꽃은 낮은 데서 높은 곳을 향해 피는데
낮은 데서 낮은 데로 혼자 피다 가는 꽃도 있데요
그래도 사월이면 저 자신 먼저 깨우고
비산비야 온 천지를 무리지어 깨우더군요
해마다 봄 사월 저녁 무렵엔 광활한 우주를 되걸어와서
몸서리치게 우리 가슴 두드려 깨우는데요
시 삼백에 삿된 것도 많은 우리는
언제 다시 무슨 꽃으로 피어 돌아와
설움 많은 이 세상에 남아 있을런지요.
♧ 조팝꽃 - 복효근
조팝꽃이라고 했단다
산허리 내려찍으며 칡뿌리 캘 때
어질어질 어질머리
꽃이 밥으로 보여 조(粟)밥꽃이라고 했다
아이야,
그 서러운 조어법, 조팝꽃 발음할 때는
좀 아릿한 표정이래도 지어다오
저 심심산천 무덤가에 고봉밥
헛배만 불러오는 조팝꽃 고봉밥
고봉밥 몇 그릇
♬ 샹숑 - Les Lar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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