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복숭아, 들복숭아, 개복숭아라 불리는
산도화(山桃花)가 집 옆 동산에 예쁘게 피어났다.
늦게 피어서 그런지 토실토실하고
꽃색이 잘 드러난다.
이 산도화와 만나는 분은 오랜만에 정호승 시인이다.
정호승(鄭浩承) 시인은 1950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 계성중학교와 대륜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경희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로
1982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로 당선되었다.
1976년 김명인, 김창완, 이동순 등과 함께 반시(反詩) 동인을 결성 활동하였고,
1979년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출간하였다.
이후 시집 ‘서울의 예수’(1982)와 ‘새벽 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수필집 ‘첫눈 오는 날 만나자’(1996)와
장편소설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1993) 등이 있다.
‘샘터’ 편집부와 ‘월간조선’에서 근무하였고,
2000년 현대문학북스 대표가 되었다.
1989년 제3회 소월시문학상, 1997년 제10회 동서문학상,
2000년 제12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꽃 - 정호승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마음속에 박힌 말뚝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 꽃을 보려면 -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그는 - 정호승
그는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 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 정호승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사람을 멀리하고 길을 걷는다.
살아갈수록 외로워진다는
사람들의 말이 더욱 외로워
외롭고 마음 쓰라리게 걸어가는
들길에 서서
타오르는 들불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고독하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면
어둠 속에서 그의 등불이 꺼지고
가랑잎 위에는 가랑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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