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날씨가 쌀쌀합니다.
완연한 봄이라...수사를 쓰기엔 아직 무리일까요?
제가 다니는 회사의 맨 꼭대기에는 작은 정원이 있습니다.
이 척박한 땅에, 그래도 한뙈기 작은 땅에
생명을 심고 느낄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여수에서 태어나 줄곧 자라온 작가 김은정의 그림 속 정원에 비하면
남우새하기 그지 없으나, 아래층 디자인 전문회사 직원들 덕에 환하게 핀
봄꽃들을 보는 이 순간이 행복합니다. (이분들 참 부지런하게 정원을 가꾸시더군요)
다음엔 사진으로 올려볼께요.
김은정_꽃밭_장지에 채색_73×100cm_2008
요 며칠 모 블로거(오드리햅번)분의 공간에 놀러갔었습니다.
적십자에서 일하시는 분인데, 항상 다른 분들 돕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시지요.
가장 부러운 분입니다. 마음의 부자를 뵐때마다 행복합니다.
최근 큰 맘 먹고 구입한 커피머신에서 신선하게 원두를 우려내
5잔의 향긋한 커피를 만들어 올립니다. 한잔은 최근 약혼한 디자이너 실장과
10살 차이의 연애(?)를 자랑하며 절대동안 외모 자랑에 여념이 없는 문 대리와
초과달성 했으니 성과급 받으면 아내에게 예쁜 핸드백을 사주시겠다는 부장님.
저를 위해 열심히 스케줄을 조정하고, 때로는 받기 어려운 전화도 척척 해결하는
소중한 비서 윤영님과 그리고 저를 위해서입니다.
구성연_팝콘하늘
봄의 시간엔 많은 것들이 유연해지나 봅니다.
사무실엔 부쩍 웃음소리가 커졌습니다. 물론 최근에 따낸 좋은 수주건도 그 효과가 있지만
회사 벽면 하나하나에 예쁘게 걸어놓은 몇 개의 그림이 괜찮은 힘을 발휘하나 봅니다.
팝콘이 꽃처럼 가지에 피어있는 구성연의 작품은
제가 참 아끼는 작품입니다. 예전에도 꽤 많이 다루었지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 그 경계에서 향기나는 꽃이 핀다는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힘든 과정들 하나하나 잘 지켜준 사람들 때문에 행복합니다.
구성연_꽃시리즈2
오늘 같은 날엔 사실 상큼한 봄꽃과 이파리 담아
예쁜 꽃밥을 먹고 싶었으나 사실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그냥 커피 한잔이 제겐 식사가 되어 버렸네요. 때를 놓치면 잘 안먹거든요.
조성연_사물의 호흡_디지털프린트_2007_설치전경
꽃이 피는 계절에는 호흡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겨우내 움츠려드느라 줄어버린 폐활량도 다시 조절하고,
심장판막에도 연두빛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지요. 예전에 그저 앞서나가고
잘나가면 좋은 것인줄 알았는데, 요즘은 뒤를 돌아보며, 함께 가자고 손을 내미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제서야 철이 조금씩 들어가나 보지요.
조성연_사물의호흡_2007
사과 한 알 손바닥 가운데 올려놓고
빛 고운 살갗에 선뜻 입술 가까이 하지 못하는 봄날
가지에서 툭 떨어져 한 철 어둡고 찬 방에서 쓸쓸하게 보냈을
속내를 들여다보기 싫어 꽃 핀 날을 더듬어 보는 것이다
번뇌 같은 사과꽃이 피었을 때 눈감은 부석사를 찾아갔다
삐이걱, 불이문을 열고 진흙 묻은 발을 내밀었는데
손님도 없이 독경 소리가 봄꽃처럼 활짝 피었다
캄캄한 불 옆엔 사과 한 알이 덩그러이 놓여있고
꽃 내음새 대신 법당의 짙은 향내가
예불을 알리며 범종을 치고 있었다
누구 손을 잡고 있었는지
마음속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아득한 계곡에 누웠는데
꽃잎 같은 당신 손에
한 알 사과 같은 내가
놓여있었다
사과꽃이 필 때였다
당신과 내가 벌거벗고 놀았던
사월의 어느 날이었다
김종제의 <사과꽃이 필 때>전문
4월이 다가옵니다. 너무 바쁜 일정에 몸이 축날까 걱정도 됩니다만
일이 있고, 사람이 있고, 여유가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물론 예쁜 정원을 가꾸어준
아래층 회사분들에게도 고맙고요......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분들에게 커피 한잔씩 내야 겠습니다.
조관우의 목소리로 듣습니다. <꽃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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