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사랑 이야기가 좋은 건 어쩔수 없나 봅니다
저번주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본 한편의 영화가 제 시선을 이끕니다.
지리하고 무더운 여름, 소곤소곤 들려주는 듯한 목소리와 애잔함이 소롯하게 베어나오는
영화 <스위트 노벰버(Sweet November)>
영화의 기능 중 하나가 동일화라고 한다지만
사실 이 영화 속 주인공은 어찌보면 지금의 제 자신을 참 많이도 닮았습니다.
광고회사의 중역으로, 근사한 집과 차와 멋진 직장, 광고회사의 잘나가는 중역으로 출연하는
키에누 리브스, 하지만 그의 생은 회사와 일로만 구성된 말 그대로 워커홀릭일 뿐입니다.
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제가 워커홀릭으로 살았던 시절엔
운동할 시간 하나 없어서 사실 제 가운데 살집들은 무수하게 늘어나기만 했는데
영화 속 주인공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느낌이 드네요. 예전 여행길에 들렀던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이야기는 습한 기운 속엔 힘을 차리지 못하는 제겐 일종의 환상처럼 다가오더군요
외국을 자주 다니면서 한가지 좋은 점이 뭔가 하고 생각해 보면 영화를 볼때, 어!.....저기 가봤는데 하는
장소들을 영화 속에서 만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필라델피아에 갔을때 영화 <록키>의 촬영지였던 미술관 계단 앞에서
열심히 포즈 취하고 그랬던 기억도 나네요. 참 그때는 왜 그런게 그렇게 재미있던지요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시험을 보러간 이 남자 키에누 리브스는 그곳에서
유별나 보이는 한 아가씨(샤를리즈 테런)을 만납니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11월 한달을 채워줄 애인이 되어달라는
참....특이한 제안을 하고 말지요. 저한테는 왜 이런 제안을 하는 사람이 없을까요!
잘 나가는 남자, 넬슨역의 키에누 리브스는 성공의 신화만을 향해 달려온
남자 주인공 역을 참 쿨하게 소화해 내는듯 합니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강박증이 보이는 그런 성격화 작업인데
잘해낸거 같더군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그는 그녀와 함께 한달간의 달콤한 연애에 돌입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그는
또 다른 회사에 취업도, 그를 24시간 괴롭히는 핸드폰도 모두다 압수를 당한채 그녀와 살게 되지요
새롭게 복구공사를 막 마쳤던 금문교 산책로를 따라
행복한 여유 넘치는 산책도 하고, 크리시 필드 비치에서 망중한을 보내는 여인의 모습에
또 한번 반하고 맙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고 싶을 때가 바로 이럴때죠.
왜 내가 걸으면 그렇게도 허접해 보이는데, 이 주인공들이 걸으면 똑 같은 배경인데도 이렇게 다를까.....
하긴 뭐 그거야 한국도 마찬가지겠지요.
바다를 좋아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테러벌 스트리트 밑 고속도로 아래 펼쳐진
파도치는 바다의 풍광이 눈에 쏙 들어오더군요. 예전에 갔을 때와는 계절이 달라서일수도 있고
촬영시간에 따른 변화랄까.....이런것들이 상이해서인지 몰라도, 그 느낌은 훨씬 신산하고
외롭지만, 주인공이 채워내는 프레임의 공백에는 따스함이 가득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꼭 일일 관광 코스에 들어가는
돌로레스 파크의 풍경이 아래에 펼쳐지네요. 물론 주인공들이 그곳을 거닐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샤를리즈 테런 너무 멋지지 않나여? 제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인거 같습니다.
약속한 한달의 시간이 지나지만 넬슨은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녀또한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어렵기만 합니다.
백혈병을 앓는 그녀는 그저 자신의 삶을 마음껏 즐기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했고 그 속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타인들을 도우며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랬던 거죠.
뭐 여주인공이 병에 걸려 죽는 영화야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죽었지요. 이 뿐인가요?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이 백혈병이란 진부한 병명을 스토리 전개에 써먹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영화들이 왜 매력을 잃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또한 해보게 되네요.
영화의 종반부에 들어가면서 넬슨의 변화는 아주 두드러집니다.
동네에 사는 고아아이를 대신해서 학교에 가주기도 하고, 무선 보트대회에 나간 아이를 위해
잠수함을 조정해 일등을 만들기도 하구요.(물론 이렇게 하면 불법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헌터스 포인트에서 찍은 씬인데,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이 영화를 보신 분은 혹시나 하고 이 영화를 떠올리실 분이 있지 않나 싶네요 <스튜어트 리틀>이라고
왜 명절때면 꼭 안빠지는 영화있잖아요 거기서 새앙쥐인 스튜어트가 형이 보트를 타고
운전하는 씬이 나옵니다. 바로 이곳이었죠.
예고된 이별이 찾아오고
그들은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만 간직하며 떠나갑니다.
이런 결론을 볼때마다, 과연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만 간직한채 떠나는 사랑이 확률적으로 얼마나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실제로는 그 반대의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고, 달콤한 사랑의 시간은
법정에서 쌍욕과 법률서류로 대체되는 걸 너무나도 즐겨 보는 세대인지라, 이런 사랑에 대한 향수는
그저 영화적 시간에서만 존재할 뿐이라고 믿는 것이겠지요. 마지막 장면을 찍었던 곳도 돌로레스 파크인데요
다음에 친구랑 이곳에 가서 한번 패러디를 찍어볼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다 헤어지면 어쩔거냐구요? 설마 그렇게 되겠습니까....영화와 현실은 엄연히 다른거죠
영화 속 음악이 아주 좋습니다. 엔야의 Only Time.....
이 음악과 함께 보는 샌프란시스코의 풍광들이 음률에 하나씩 덧입혀져
우리들의 마음 속, 왠지 이 더운 여름날 스잔한 겨울의 사랑을 환상 속에 품어보게 하는 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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