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독말풀
꽃 그림들입니다. 그런데 매우 확대되어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에 시선을 빼앗깁니다. 늘 보던 꽃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단순화된 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 파란색과 녹색의 음악
이 그림을 그린 여인은 <조지아 오키프>입니다. 그녀는 꽃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느꼈던 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꽃은 너무 작아서 사람들은 꽃을 오래 보려고 하지 않는다. 친구를 사귀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듯이 꽃도 오래 보아야 한다. 나는 크게 그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내가 본 꽃을 볼 수 있도록, 다른 면에서 보시죠.
- 연작
그녀가 그린 꽃은 분명 꽃입니다. 그런데 실제의 꽃을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닙니다. 형태는 단순화 되어있고, 색도 실제보다 환상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비로운 그녀의 꽃그림을 추상환상주의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녀의 생각이 궁금하십니까?
1930년 오키프는 클리블랜드 미술관장인 월리엄 밀리켄에게 이런 편지를 씁니다. “나는 내가 꽃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나는 꽃에 대한 나의 경험, 혹은 어느 시간, 내가 느꼈던 꽃의 의미를 그림으로 전달 할 수는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표현 하였던 것입니다. 색채와 형태가 더 이상 외형에 집착해서는 안 되며 작가의 내면과 감정을 탐구해야 한다는 칸딘스키의 기본 이론을 실천하였던 것이죠.
- 양귀비
조지아 오키프는 미국 모더니즘이 시작되었던 20세기 초부터 추상으로 흘렀던 1960년대 이 후까지 미국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화가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녀가 처음 유명해진 것은 그림 때문이 아니라, 누드모델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전문 모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모델을 했던 이유는 당시 유명 사진가이며, 갤러리 291을 운영했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스티글리츠는 당시 291갤러리를 운영하며, 새로운 미술을 뉴욕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오키프의 목탄 드로잉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작품에 큰 감명을 받게 되죠. 그 후 스티글리츠는 작가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작품을 291갤러리에 전시합니다.
사실 예의에 크게 어긋난 일이었죠.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크게 가까워집니다. 서로 한눈에 통했던 것이겠죠. 후에 스티글리츠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우리는 서로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몇 년의 세월을 일주일에 모은 것 같았다. 이런 경험은 전에는 없었다.
그 후 스티글리츠는 사랑하는 오키프가 작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고, 그녀는 사랑하는 스티글리츠의 사진모델이 되어줍니다.오키프는 서서히 뉴욕에서 자신의 그림을 인정받게 되고, 스티글리츠도 그녀를 모델로 한 사진을 통해 새로운 작품의 영역을 개척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1924년 12월 11일 결혼식을 올리고, 평생의 파트너가 됩니다.
'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 출간
(서울=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 조지아 오키프(1887-1986)는 미국의 대표적인 여류 화가다.
지난 200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작품 '붉은 아네모네와 칼라'는 620만 달러(당시 62억원)에 거래돼 여성 화가로서는 최고가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사후 그의 집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자 예약 대기자 명단이 1년치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여기에는 그의 삶을 둘러싼 스캔들과 세간의 호기심도 있다.
그의 삶이 워낙 드라마틱했기 때문이다.
오키프는 28살 때인 1915년 실험적인 작품 전시에 적극적이었던 291화랑의 소유자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1864-1946)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쌓기 시작했다.
스티글리츠는 화랑주일뿐 아니라 당시 미국의 가장 유명한 사진작가로 뉴욕의 예술계를 주름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유부남이었다.
하여간 스티글리츠는 1918년부터 오키프와 연인으로 지내며 오키프를 모델로 수없이 많은 누드 사진을 찍었다. 당시 오키프가 그렸던 '연작I'과 '음악-분홍과 파랑, 1번' 등은 성기를 연상시키는 오키프 특유의 꽃 그림이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와 결국 1924년 결혼했지만 스티글리츠는 도로시 노먼이라는 유부녀와 1927년부터 눈이 맞았다. 오키프는 정신 치료까지 받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후 그는 1945년 뉴멕시코주로 홀로 이주해 작업에만 매달렸다.
나이가 든 오키프의 곁에는 젊은 남자인 존 해밀턴이 있었다. 오키프는 자신이 85살에 만난 26살의 존 해밀턴에 대해 스스로 연인이라고 생각했고 해밀턴이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렸지만 모든 재산을 해밀턴에게 상속했다.
미국의 미술평론가인 헌터 드로호조스카필프가 쓴 '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는 수천 통의 편지와 인터뷰 등 철저한 조사를 통해 오키프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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