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어나무
오름해설사 5기생들에게 외부강사 초청 강의가 있어
모처럼 3기 출신 모임에 마지막 단풍 기행을 권유했다.
한라산 아래에 있는 삼형제 말젯오름을 비롯한 남쪽
조그만 두 오름과 그 주변을 돌아보는 코스.
가는 도중에 마침 2기생 여러분을 만나 같이 할 수
있어 더욱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단풍은 지난 태풍 때문에
그리 화려하진 못해도 구석구석에 자리한 채로 마지막 타오르는
자연의 섭리라 할까? 주어진 환경에 몸으로 대응해 하나 더하고
뺄 수도 없는 본연의 모습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다.
단풍나무를 제외한 고운 나뭇잎을 올려본다.
* 덜꿩나무
♧ 마지막 잎새들 - (宵火)고은영
눈물 어린 내 초로의 눈동자
고운 단풍으로 물들었네
저 깊은 자락
뼛속까지 저리게 휘돌아 내리는
낙엽 향 마지막 잎새들
아, 거리엔 화려한 절정의 춤사위
눈물이 난다
우수수 떨어져 바람 따라 나부끼다
임 부르는 단말마 비명
자동차 바퀴 아래로 밟히는 아픈 비애
흐느끼듯 제 몸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 비목나무
♧ 가을 이야기 - 조윤주
우수수 털어내라고 한다. 몇날 며칠 그렇게 내마음 뜨거운 방안에서 뒹굴던 마지막 그리움 그 한 잎까지, 스스로 체온을 내주고 말라비틀어진 사랑, 변절과 몽상, 과거의 추억과 실패한 사업의 이력, 삶을 벼켜간 변절 그 모든 집착을 버리라 한다
뇌세포를 따라 수없이 맺혀있는, 나무둥치의 작은 잎새들을 가차없이 맨땅에 내리 꽂는 그 이중무늬의 생을 따라, 새들이 울다 웃기를 반복하는 산책로, 나무들이 내게 말을 걸어 온다. 그렇게 다 비운 벌거벗은 몸으로 한 서너 달쯤 풍설을 견디라 한다.
귀가 어두워 잘 들리지 않노라 변명하는 나에게
단풍나무 한 그루 몸의 핏줄들을 죄다 열어 보이며
가는 길을 가로막고 내 앞에 섰다
* 졸참나무
비운다는 것은 언제나 붉은 피를 쏟는 전쟁. 아 그러나 어쩌나, 숱한 몽알이들을 깨고 나오는 새순들. 내 몸에서 아직도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걸. 하여 일년에 한 서너달쯤은 맨땅에 내리꽂히는 이파리들처럼 내 뼈와 살을 열어 한 때는 사랑이었던 이별을 배웅할 수 밖에. 하지만 몇 번의 이별의 시간을 건너온 사람들은 안다. 바로 앞에 춥고 매서운 혹독한 겨울이 기다린다는 것을 절절한 뜨거움을 감춘 노을과 단풍은 늘 그래서 아름답다는 것을
저무는 태양을 배낭에 짊어지고 주저앉은 나는 저린 발을 주물러 세웠다. 발자국 꽁무니에 매달린 낙엽 몇닢의 미련을 툭툭 털어내며, 그 곳에서 일어서는 내가 보였다. 삶은 늘 이렇게 차오르기 위해 비움을 필요로 하는 것.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지 않으면 새 잎을 틔울 수 없는 나무처럼 우리네 삶도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다람쥐 한 마리 겨울 양식을 위해 분주한 계절이다.
* 사람주나무
♧ 가을처럼 자신을 알 수 없을 때엔 - 정세일
가을처럼 자신을 알 수 없어
산 위로 걸어올라 가고 싶을 때에는
마지막 몇 개 남은 나의 마음에
나뭇잎들을 모아서
낙엽으로 떨어져 쌓이기 전에
가을처럼 붉고 푸른색으로 먼저 물을
들이고 싶습니다
가을처럼 나는 나 자신을 알 수가 없어
들판으로 달려갈 때마다
아직도 철지난 들꽃을 피우며
날아가 버린 나비들이
다시 찾아오리라 나는 지나버린
그리움을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나 봅니다
* 참빗살나무
가을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나도 가을처럼 노래를 부르려고
당신의 베이스가 들어있는
하모니카를 가슴에 안고서
옥수수처럼 알알이 영그는 그곳에서
당신의 손길이 스며있는
그 가을 밭을 노래하고 있답니다
오늘처럼 가을을 알수없는날은
나는 나무가 되어 울긋불긋 거리며
단풍도 만들고
들꽃처럼 피어나 잃어버린 추억을
다시 찾아오고 싶습니다
오늘 나는 당신의 가슴이 들어있는
하모니카를 들고 나 자신에게 당신의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보고 싶습니다
* 화살나무
♧ 가을 공원 - 박인걸
솜털 묻었던 잎 새들
푸르렀던 그 시절도 가고
건드리기만 해도
우수수 쏟아지는 단풍 잎
온 몸에 피를 토하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아쉬울 것도 서럽지도 않은
행복하게 살았던 삶이기에
그대로 땅에 눕는다 해도
기쁘게 받아드리며
이제 먼먼 세계로
기나긴 여행을 떠나기 전
아직 남아 있는 잎들과
이미 떨어진 낙엽이 어울려
소리 없이 부르는 합창에
함께 물들어가는 나그네는
남의 일 같지만 않다.
꿈결 같은 한 세상을
살처럼 살아온 삶이여
며칠 후면 그 흔적마저
찾아 볼 수 있으려나.
* 비목나무
♧ 떠나는 가을 - 배혜영
그렇게도 다정하게 미소짓던
붉은 웃음의 단풍도
이 가을만은 나를 모른 채
계절을 떠나며 멀어지고
국화꽃 향기 사라지는 길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겨우 겨우 마음 돌려
지금 내게 세워두었는데
세월을 휘발유처럼 태우며
지나가는 내 삶의 자동차는
오늘도 빠르기만 하구나
지나간 자리
불타 없어진 추억의 자리
늦어도 올 것만 같았던
그곳에서 날마다 기다리는
내 끝없는 그리움은
아쉬움으로 떠나는 시간에
손흔들어 이별을 한다
보고 싶어도 참야야 하는
갖고 싶어도 아껴야 하는
떠나는 시간속에서
그래도 미워할 수 없이
가슴속에 품고 살아야 할
너 한사람에 대한 기다림은
10월의 찬란한 빛이 된다
* 팥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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