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농장 주변에 옮겨 심은
사철나무가 새싹을 틔웠다.
마른 땅에 뿌리 내려
솟아오른
저 여린 잎들.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인다.
사방이 온통 푸르다.
내 詩도
더 깊이 뿌리 내려
잎새 푸른 나무가 되었으면 한다.
-2011년 6월
김윤숙
♧ 황매
늦봄이라 서둘렀나
황매화 어롱진 눈물
햇살이 쏟아진 오월
지은 죄도 사할 것 같은
꽃잎이 사방 날리는, 아픔도 꾹 참는다
♧ 남천
그만 내려놓으라고 네게 연신 되뇌지만
저 성성한 남쪽 하늘 차마 놓을 수 없던
눈가의 번지는 눈물, 이내 붉게 맺혔네
모퉁이를 돌아서면 한생의 그 흔적들
바람 타 흩어지는 꽃잎처럼 속수무책
마른 몸 기도 품었듯, 기척 없이 새순 돋네
♧ 술패랭이꽃
가라쓰 시 이삼평* 후손의 도자기 전시장
접시에 술패랭이꽃 허리 폈다가 굽힌다
남몰래 가슴에 쌓인 슬픔, 꽃으로 피었을까
수산 집 바깥채 일본 삼촌 화분의 꽃이던
징용 온 남편 따라간 제주에서 그린 고향
임종 때 지니고 못 간 그 한 줌 햇살이여
맹독 같은 그리움으로 빚은 그릇 전시장
한 하늘 이고 살아도 고향 못 밟았던 이들
불가마 달군 눈물에, 허리 펴는 술패랭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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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 아리타 도기의 시조가 된다.
♧ 동백꽃
폭설 그치고
동백나무
동박새 찾아들었다
순백의
그리움을
가슴 깊이 껴안아
새소리
붉은 울음도
툭, 툭, 툭
던져낸다
♧ 으아리
등 따갑게 햇살 내리던 돈대산 등성이서
가던 발걸음 이내 멈추게 하는
바람 한 줄기
산자락
파도쳐 올린
먼 바다 그리움 같은 꽃
♧ 선인장
꽃!
하고 주었더니
손에 가시가 박혔다
바닷가 소금기 밴
손바닥선인장
눈 맞춘
붉은 열매를
살짝 댄 게 화근이다
내
사랑도 그러했다
수많은 명주실 가시
왼편이 괜찮으면
오른쪽이 더 아렸다
자꾸만
가슴 헤집어
눈물 고이게 한다
♧ 민들레
비행장 옆 농장 길엔 언제나 앞서 있다
확장 공사 바리케이트 소롯길마저 차단하는
봄날이 저문 이 땅에
노랗다 슬픈 경계
♧ 계요등
계요동꽃 비양봉 등대 향해 오른다
물빛을 가두어 불 밝히려 하는지
벼린 잎 시퍼런 가슴
그마저 껴안았다
섬에 발 딛자마자 마음 접은 일 알아챘나
갯가 정자 마늘 까던 그 손톱에 전 때처럼
햇볕은 물고 늘어진다.
한 천 년 더 기다리라고
♧ 용담꽃
가을이 깊을수록 짙푸른 쪽빛이여
따라비 하늘 향해 왈칵 눈물 쏟아내면
저 들길,
오름 등성이에
별빛으로 남으리
♧ 원추리꽃
바다에
이르지 않으리라던
맹세 두고
안개비 속
저 홀로 붉게 필
다짐 두고
보목동
산 일 번지로 와
섶섬 앞에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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