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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윤숙 제2시집 ‘장미 연못’

klgallery 2011. 7. 16. 14:13

♧ 시인의 말


농장 주변에 옮겨 심은

사철나무가 새싹을 틔웠다.


마른 땅에 뿌리 내려

솟아오른

저 여린 잎들.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인다.


사방이 온통 푸르다.


내 詩도

더 깊이 뿌리 내려

잎새 푸른 나무가 되었으면 한다.


-2011년 6월

김윤숙

 

 


♧ 황매


늦봄이라 서둘렀나

황매화 어롱진 눈물


햇살이 쏟아진 오월

지은 죄도 사할 것 같은


꽃잎이 사방 날리는, 아픔도 꾹 참는다



 

 

♧ 남천    


그만 내려놓으라고 네게 연신 되뇌지만


저 성성한 남쪽 하늘 차마 놓을 수 없던


눈가의 번지는 눈물, 이내 붉게 맺혔네


모퉁이를 돌아서면 한생의 그 흔적들


바람 타 흩어지는 꽃잎처럼 속수무책


마른 몸 기도 품었듯, 기척 없이 새순 돋네



 

♧ 술패랭이꽃


가라쓰 시 이삼평* 후손의 도자기 전시장

접시에 술패랭이꽃 허리 폈다가 굽힌다

남몰래 가슴에 쌓인 슬픔, 꽃으로 피었을까


수산 집 바깥채 일본 삼촌 화분의 꽃이던

징용 온 남편 따라간 제주에서 그린 고향

임종 때 지니고 못 간 그 한 줌 햇살이여


맹독 같은 그리움으로 빚은 그릇 전시장

한 하늘 이고 살아도 고향 못 밟았던 이들

불가마 달군 눈물에, 허리 펴는 술패랭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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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 아리타 도기의 시조가 된다.

 

 


 

♧ 동백꽃


폭설 그치고

동백나무

동박새 찾아들었다


순백의 

그리움을

가슴 깊이 껴안아


새소리

붉은 울음도

툭, 툭, 툭

던져낸다



 

♧ 으아리


등 따갑게 햇살 내리던 돈대산 등성이서

가던 발걸음 이내 멈추게 하는

바람 한 줄기


산자락

파도쳐 올린

먼 바다 그리움 같은 꽃



 

♧ 선인장


꽃!

하고 주었더니

손에 가시가 박혔다


바닷가 소금기 밴

손바닥선인장


눈 맞춘

붉은 열매를

살짝 댄 게 화근이다


사랑도 그러했다

수많은 명주실 가시


왼편이 괜찮으면

오른쪽이 더 아렸다


자꾸만

가슴 헤집어

눈물 고이게 한다



 

♧ 민들레


비행장 옆 농장 길엔 언제나 앞서 있다


확장 공사 바리케이트 소롯길마저 차단하는


봄날이 저문 이 땅에


노랗다 슬픈 경계



 

♧ 계요등


계요동꽃 비양봉 등대 향해 오른다

물빛을 가두어 불 밝히려 하는지

벼린 잎 시퍼런 가슴

그마저 껴안았다


섬에 발 딛자마자 마음 접은 일 알아챘나

갯가 정자 마늘 까던 그 손톱에 전 때처럼

햇볕은 물고 늘어진다.

한 천 년 더 기다리라고

 

 


 

♧ 용담꽃


가을이 깊을수록 짙푸른 쪽빛이여


따라비 하늘 향해 왈칵 눈물 쏟아내면


저 들길,


오름 등성이에


별빛으로 남으리

 

 


 

♧ 원추리꽃


바다에

이르지 않으리라던

맹세 두고


안개비 속

저 홀로 붉게 필

다짐 두고


보목동

산 일 번지로 와

섶섬 앞에 흔들린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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