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릴케/엄숙한 시간

klgallery 2012. 1. 4. 11:05

 

 

지금 세상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지금 까닭없이 울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

지금 세상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웃고 있다.
지금 까닭없이 웃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웃고 있다.

지금 세상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걷고있다.
지금 정처 없이 걷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지금 세상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죽고있다.
지금 까닭없이 죽고 있는 그사람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엄숙한 시간/릴케-

우리가 한끼 배부르게 먹을 때
이 세상 어디에선가는 여섯명의 사람들이 굶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여우 목도리 하나를 사서 옷장에 넣을 때
어쩌면 우리는 수십 마리 여우들의 목숨을 옷장에 걸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에 연연할 때
아프리카에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가혹한 노동에 쓰러져가고 있는가.
사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육체 속에서 함께  살고 있다.
인간 이라는 육체 속에서 .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기나긴 마취에서 깨어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몸의 절실한 고통으로 느낄 수 있으리라.

-이상은 최인호님의 산문집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