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국외 취업성공기

klgallery 2011. 1. 5. 13:14
◆중소기업·개인, 국외에서 '길'을 찾아라◆ '청년 실업'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승승장구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엄친아('만능'을 뜻하는 '엄마 친구 아들'을 일컫는 말)' '엄친딸'일까. 아니다. 일찌감치 국외 시장의 흐름을 읽고 취업 준비에 매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의 사연을 통해 청년 실업의 해법을 찾아본다.

이장영


싱가포르 BCA 건설부 조사관
면접 기회도 안 주던 회사에서 스카우트 이장영 씨(30)는 싱가포르 건설청 산하 BCA(Building & Construction Authority)에서 세계 3대 녹색 인증 중 하나인 'BCA 그린마크' 인증 여부를 결정하는 조사관이다.

BCA 그린마크제도는 에너지, 물, 녹색기술 적용 등을 평가해 건물의 녹색화 정도에 따라 그린마크를 등급별로 인증하는 제도다.

이 씨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입사원서를 넣으면 '당연히' 떨어진다고 생각하던 취업준비생이었다. 관동대 환경공학과 출신으로 평생 한국에서만 살아온 터라 국외 근무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갑자기 싱가포르에서 당당히 공무원으로 근무하게 됐을까.

그가 국외 취업을 심각하게 고민한 계기는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가면서부터다. 영어에 워낙 자신이 없던 이 씨는 2006년 전역 후 1년여간 어학연수를 떠난다. 마침 홈스테이 집주인의 지인이 환경영향평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수질관리를 전공한 이 씨에게 자신의 회사에 지원해보라고 조언하며 이력서 작성을 도왔다. 덕분에 인터뷰 기회를 얻었지만 영어 실력이 부족해 취업에 실패했다.

국외 취업의 가능성을 알게 된 후 본격적으로 국외 취업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입대 전 배낭여행을 하다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에서 안소니 위라는 사람에게 우연히 길을 물은 적이 있다. 안소니와 마음이 맞아 6일 동안 그의 집에 머물렀다. 이 씨는 안소니에게 연락해 국외 취업을 하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안소니는 싱가포르에 세계적인 수질관리 시스템과 정화 시스템을 갖춘 기업들이 많으니 싱가포르 기업 문을 두드려보라 답했다.

이 씨는 안소니 집에 머물면서 BCA를 비롯해 싱가포르 국립수자원공사(Public Utilities Board), 하이플럭스(Hyflux), 아우레콘(Aurecon), G에너지, 코넬와그너(Connel Wagner) 등 유수의 환경 기업에 원서를 넣는다.

영어에 자신이 없고 외국 경험도 거의 없는 그의 무기는 자신감과 열정. 이력서를 인터넷으로 보낼 수도 있지만 굳이 이력서를 들고 직접 회사에 찾아가 HR 매니저와 면담을 신청했다. 대기업 인사 담당자가 굳이 만나줄 리 없는 일. 그렇지만 이 같은 노력은 후일 그가 합격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열정' 보여줘 취업 성공

대부분 기업에서 연락이 없었다. 낙담할 무렵 G에너지에서 연락이 왔다. G에너지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3명의 이사에게 모두 허락을 받아야 한다.

1차 면접에서 '자신이 얼마나 그린 빌딩에 열의가 있는지'를 열심히 설명했다.

2차 면접 일정을 잡으려는 순간 그는 '일단 무조건 여기서 일부터 하고 싶다'고 말한다. 마침 다른 두 명의 이사가 그 장면을 우연히 보고 갑자기 흥미를 가졌다.

덕분에 당일 2차 면접 기회를 얻었고 2시간 동안의 면접을 거쳐 결국 G에너지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이 씨는 건설업체들이 BCA 그린마크를 받을 수 있도록 컨설팅하는 컨설턴트 역할을 했다. 2007년 9월부터 1년 10개월 동안 일하다 보니 BCA 관계자들과 친분이 쌓였다. 이를 계기로 이 씨는 BCA에 스카우트됐다.

"우리나라 기업은 주로 공채제도를 활용하는 반면 국외 기업들은 수시로 사람을 뽑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만 보이면 의외로 수월하게 입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또 입사 후 열심히 하면 이직 기회도 생기고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면 국외로 눈을 돌려보세요."

복선호

일본 윈스텝 프로그래머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죠 우송대 일본어과를 졸업한 복선호 씨(30)는 2007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제 4년째다. 이 정도면 상당한 장수 직장인이다. 일본 IT 기업에서 장수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게 이쪽 불문율이다. 실제 많은 국내 학생들이 일본 IT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지만 얼마 견디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일본 IT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프로젝트 매니저'로 성장해야 되는데 나이 어린 현지 일본인들의 추격이 만만치 않아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학교 내 IT센터 도움받아

일본에선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IT업계에 대거 진출하기 때문에 팀장이나 부장 나이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언어와 문화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도 현지 적응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복 씨는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

대전동아공고 전자과를 나온 복 씨는 취업 대신 대학 진학을 선택하고 우송정보대학 관광일어통역과에 입학했다. 이후 우송대 일본어과에 편입했다.

3학년 재학 중 우송IT센터에서 IT 교육을 받으면 일본 취업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우연히 전해들은 복 씨는 그때부터 일본에 갈 결심을 했다.

4학년 과정 내내 IT 교육을 받은 그는 졸업 후 공백 기간 없이 바로 일본 현지기업에 취업이 결정됐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제공해준 기숙사에 살면서 일본 생활에 적응했다. 맡은 일만 잘하면 되는 IT 업무 성격상 일본인과 부딪치는 일이 별로 없어서 지내기가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힘든 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실전에서 직접 활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 접하는 업무인 데다 낯선 환경에서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았다.

복 씨는 일본 취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용기'라고 전한다. 그는 "타지에서 혼자가 될 수 있지만, 그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외국인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은지





앙골라 남광인터내셔널 어시스턴트매니저
대학 진학 때부터 포르투갈어 '올인' "아예 처음부터 국외 취업을 생각하고 학과를 선택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현재 아프리카 앙골라 소재 남광인터내셔널에 근무하고 있는 남은지 어시스턴트매니저(29)의 설명이다.

은지 씨는 한국외대 포르투갈어과에 진학, 전공 공부에 매진하는 한편 브라질로 포르투갈어 연수를 다녀오는 등 '언어'에 올인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생각에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이런 그의 전략은 먹혀들었다.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해외시장개척요원이란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제품을 국외 시장에 소개하고 바이어를 발굴하는 프로그램.

중기청에서 여러 가지 여건상 국외 진출에 어려움이 있는 기업과 해당국 언어 가능자를 연결해 주는 게 핵심이다. 남 씨는 2004년 이 제도에 지원, 3개월간 브라질로 날아가 일했다.

"제가 맡았던 제품은 식품 포장기계였습니다. 브라질에 도착한 후 시장조사를 하고, 바이어들을 만나는 일을 했는데 그중 가장 성과가 있었던 것은 전시회에 찾아갔던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시회는 부스를 설치해서 자기 회사 제품을 소개하고 바이어들이 그 부스를 방문하지만, 저는 거꾸로 전시회에 참석한 업체에 카탈로그 몇 장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뜻밖에도 여러 업체에서 본인들이 만들고 있지 않은 이 제품에 관심을 가졌고, 저는 한국에 있는 본사 해외영업팀으로 관심기업들을 성공적으로 연결시켜 줄 수 있었어요." 이 같은 왕성한 활동 덕분에 그는 국외 사업부 신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국내 모 건설사에 쉽게 취업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국외 근무를 희망했던 남 씨는 2006년 캄보디아 법인으로 파견 근무를 나간다. 업무가 대부분 영어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나쁠 건 없었지만 전공인 포르투갈어권 국가에 근무하고 싶은 꿈을 접을 수는 없었다. 그때 앙골라에 위치한 합작법인 남광인터내셔널이 포르투갈어와 영어를 함께 쓰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앙골라로 날아갔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회사라 포르투갈어뿐 아니라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한지 물어봤어요. 영작능력을 보려고 하셨는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도 영어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었습니다." 언어능력, 회사 경력 등 밀릴 게 별로 없었던 그는 결국 2007년 현 직장으로 이직에 성공한다.

현재 앙골라에서 남 씨가 하는 일은 외국인 직원 채용서부터 외국인 직원 입국 비자 준비를 위한 초청장 발행, 입국 후 앙골라에서 일하기 위한 워크비자 프로세스 등 외국인 직원을 위한 지원 업무다.

"저희 회사에 필리핀 직원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사람들이 영어 때문에만 채용되는 것은 아니에요. 전문 분야가 확실한 사람들이 주로 채용 됩니다. 전문성을 갖고 더불어 조금만 언어 공부에 투자하면 국외 취업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하송희

태국 두싯타니(Dusit Thani)호텔 Guest Relations Officer





"이명박 대통령도 칭찬" 한국인 1호 태국 특급호텔 입사

2009년 10월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참석차 태국 5성급 호텔인 두싯타니(Dusit Thani)호텔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은 뜻밖의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호텔 전 직원이 도열해 환호성을 지르며 이 대통령을 맞이한 것. 그때 한 여성 직원이 대통령에게 다가갔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방명록에 이름을 남겨주시겠습니까?" 또렷한 한국말. 대통령이 돌아봤다. 한국인 최초 태국 5성급 호텔에 입사해 화제가 된 하송희 씨(32)였다. 흡족해진 이명박 대통령은 태국 현지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태국에서 한국인으로 이렇게 일하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라고 말해 하 씨를 한껏 띄워줬다.

"호텔 VIP를 담당하고 있어요. 이명박 대통령을 위한 깜짝 환영식도 제 아이디어였지요. 517개 룸 중 그 VIP에게 가장 적합한 룸을 배정하고, 그에 맞는 룸 데코레이션을 챙기며 체크인부터 호텔에 머무는 동안 VIP 상태를 모니터하지요. VIP면 보통 왕족이나 총리, 장관 아니면 유럽의 귀족, 또는 큰 대기업 CEO이기 때문에 굉장히 민감한 사항들이 많답니다. 그런 면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제 임무입니다." 기자가 찾은 2010년 12월 중순에도 하송희 씨는 한국에서 온 가수 SS501의 의전을 챙기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 밖에도 중국 원자바오 총리, F1 선수 마크 웨버, 성룡 등 주요 인사의 의전을 모두 하 씨가 담당했다.

호텔 분야 선진국 태국에 주목

국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하 씨는 뜻한 바 있어 태국 대학에 입학했다. 왜 하필 태국이었을까.

"태국은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곳입니다. 외국 자본이 많이 들어온 나라다 보니 하루에도 몇만 명씩 전 세계인들이 회의에 참석하러, 관광하러, 회사 파티를 하러 오지요. 그만큼 고급 호텔 수요가 많아요. 그래서 태국의 두싯타니 컬리지 호텔경영학과 입학을 선택했어요. 학비도 프랑스나 스위스 학교보다 훨씬 저렴해 큰 부담이 안 됐습니다." 3년 반 만에 차석으로 졸업하고 외국인들은 받지 않는다는 하얏트호텔에서 6개월간 인턴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서양인이면 모를까 이곳 5성급 호텔은 외국인 인턴사원은 절대 안 받거든요. 방콕 인터컨티넨탈호텔에 원서를 집어넣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직접 호텔로 찾아가서 따졌지요. 일 잘할 수 있는데 왜 기회를 안주냐고요. 그쪽 인사과 매니저가 하는 말이 자기네 호텔은 직원 모집 정원이 다 찼으니 하얏트는 어떠냐고 추천해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저희 학교에서도 최초 사례였지요." 이후 하얏트호텔 VIP 중 하 씨를 눈여겨 본 이가 두싯타니호텔 CEO에게 추천했다. 두싯타니호텔은 하 씨를 졸업과 동시에 스카우트해갔다.

"막상 입사하고 보니 선배들에게 혼나가면서, 손님들과 부딪치거나 울면서, 프론트(FRONT)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기술을 다 배웠어요. 그렇게 노력하니 다들 인정해주더군요. 언어 역시 정말 중요해요. 태국어를 못했으면 호텔에 취직하는 건 꿈도 못 꿨을 거예요."

임근영

주 네팔 한국대사관 관저요리사





좋아하는 일 하다 보면 기회는 저절로 찾아옵니다

중국 베이징, 상하이, 앙골라, 트리니다드토바고, 네팔. 조선대 미술대학 산업공예과에서 공예를 전공한 임근영 씨(35)가 일했던 지역들이다.

임 씨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다. 대학교 때 제빵 기술을 익혀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리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그가 국외로 눈을 돌린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임 씨의 꿈을 부모님은 결사반대했다. 하고 싶은 요리를 마음 편히 하기 위해 국외 취업을 꿈꾸기 시작했다.

크라운베이커리 등 한국 제과점에서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요리사로 근무한 것은 중국 상하이에서다. 상하이 경제무역대학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피자레스토랑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그는 특히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중국과 이탈리아 음식에 대해서도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앙골라에서 일하게 된 계기도 그곳에 방문한 고객 중 한 명 덕분이었다. 이건창호에서 근무하던 고객은 이건창호 앙골라지사 인근에 한국 음식점이 없어서 앙골라지사에서 한국인 요리사를 급히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한국기업 외국지사 요리사 구인난

이후 삼성엔지니어링 소속 요리사로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일하다 2010년 5월부터는 네팔 한국대사관에서 관저요리사로 활동 중이다. 임 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우리에게 다소 낯선 국가에 진출한 기업 소속 한국인 요리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꽤 널려 있다.

국외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국외에서 일할 경우 어렵고 힘든 일도 많다"고 경고한다.

또한 국외 취업은 대개 매뉴얼이 없거나 선임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직접 모든 일을 처리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순원

펙스서플라이 ERP담당 엔지니어
IT 기술 익혀 뉴욕에 프로그래머로 취직 IT 인재들은 전 세계에서 필요로 하지만,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찾기는 어렵다.

한국무역협회는 10년 전부터 이런 트렌드를 읽고 IT 인재를 양성해왔다. IT마스터 과정을 통해 2001년부터 1418명을 배출했고 이 중 872명이 국외에 취업했다. 전체 취업률은 97%, 국외 취업률은 61%다.

미국 난방·배관용품 판매업체 펙스서플라이(PexSupply)에 근무하는 박순원 씨(30)도 2008년 IT마스터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그의 근무지는 뉴욕. 박 씨는 2005년 서울여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업체에서 1년간 근무하던 중 프로그래머로서의 실력을 가다듬기 위해 IT마스터 과정에 등록했다. IT마스터 과정은 하루에 4시간씩 IT 수업, 2시간씩 일본어 수업이 진행된다.

박 씨는 "수업 시간이 4시간이지만, 수업이 빡빡하게 이뤄져 제대로 이해하려면 온종일 공부해도 모자란다. 이때 1년을 스파르타식으로 공부해 자바에 대해 기초부터 심도 있게 배웠다"고 전했다.

IT마스터 과정을 수료한 박 씨는 바로 취직을 선택하지 않았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 결심하고 석사 과정에 도전해 카네기멜론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1년간 자바를 열심히 공부한 게 대학원 입학에 큰 도움이 됐다.

석사 학위를 마친 후 ERP(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을 자바언어 기반으로 바꾸고 있던 회사에 지원해 취업에 성공했다.

실력 인정받아 연봉 상승

현재 박 씨는 회사의 ERP 시스템을 운영·유지하는 일을 하고 있다. 펙스서플라이가 난방·배관용품을 수시로 판매하는 업체기 때문에 배송, 재고관리 등이 적시에 이뤄지는 시스템을 상시 갖추어야 한다. 박 씨는 "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새로운 프로젝트나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도 맡는다. 사장도 한국인 특유의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아한다"고 전했다.

야근이 없고, 의료나 재해 등 중요 보험을 회사에서 챙겨주는 근무환경도 장점이다. 박 씨는 "오후 5시 정시에 퇴근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다. 일찍 퇴근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남들보다 한 시간 먼저 출근한다"고 밝혔다.

박 씨는 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연봉이 6만5000달러에서 2011년에는 7만2000달러로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