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박칼린, 천상의 하모니+부드러운 카리스마

klgallery 2010. 7. 28. 18:51

 

'남자의 자격' 합창단 편에서 이국적인 외모와 폭발적인 카리스마로 43명의 합창단원을 제압한 박칼린 음악감독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5일 방송된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 선데이' 1부 '남자의 자격-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 (이하 남자의 자격)에서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34명의 오합지졸 연습과정이 그려졌다.

그러나 베일을 벗은 합격자들과 함께 더불어 주목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박칼린 감독. 그녀는 의욕과 열정이 앞선 '신생' 합창단 개개인의 목소리를 기억하기 위해 셔츠가 젖어가도록 목청을 높이며 활약했다.

사실 그녀의 인기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오디션 편이 전파를 탔을 때에도 그녀의 존재감은 시청자들의 즉각 반응으로 나타났다.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는 것은 물론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을 정도.

박칼린 감독의 매력은 단연 '부드러운' 카리스마다. 조용조용한 말투 속에서도 힘이 있는 전달력, 옆집 누나 같은 편안함으로 다가온 전문가의 섬세함이 바로 그녀의 파워를 뒷받침한다.

또 멤버들의 장난에 어린아이처럼 박장대소를 하다가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면 소리를 안내도 모르겠다"는 김성민의 농담에는 "누가 그런 말을 했냐"며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지휘자로서의 평정심을 잃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특히 그녀는 그간 평균나이 40세 멤버들에게는 부족했던 '대모' 역할을 하며 자연스럽게 방향을 제시했다. 여기에 이른바 호탕한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반영하듯 시청자들은 해당 게시판을 통해 "합창 단원들의 하모니에 소름이 돋았다. 단시간에 어떻게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박칼린 감독의 실력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오합지졸 합창단의 장점을 잘 드러내게 해주는 박칼린에 감동했다" 등 글을 올리며 칭찬일색 했다. 뿐만 아니라 네티즌들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남자의 자격'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박 감독의 트위터 멘트를 리트윗(RT) 해 폭풍 감동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박칼린 감독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악작곡학을 전공하고 현재 킥 뮤지컬 스튜디오 예술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 감독은 뮤지컬 '명성황후' '오페라의 유령' '사운드 오브 뮤직' '시카고' '아이다' '한여름 밤의 꿈' 등 국내 뮤지컬에서 그 실력을 입증 받았다.

 

아하, 그 음악? 이 감독! <br>""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씨""

세계일보 | 입력 2005.01.16 05:18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대극장의 막이 내리고 잠시 암전. 무대와 객석 사이에 자리한 오케스트라석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친다. 한 여성이 찰랑찰랑한 머리카락과 함께 지휘봉을 흔들자 관객의 박수가 쏟아진다. 여성 지휘자가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더욱 이국적인 외모와 카리스마의 박칼린감독은 관객을 ‘감전’시키며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공연의 엔딩 신으로 남는다. 바로 뮤지컬 ‘노틀담의 꼽추’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박칼린씨(38)다. 그는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는 첼로를, 서울대 대학원에서는 국악을 전공한 독특한 문화이력의 소유자. 미국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로 만난 고 박동진 명창으로부터 한눈에 “넌 소리를 해야 쓰겄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건너온 그는 박카스병을 들고 박 명창의 소리방을 드나들었다. 이후 그가 음악감독으로 데뷔한 창작뮤지컬 ‘명성황후’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그 사이 ‘오페라의 유령’ ‘페임’ ‘렌트’ ‘미녀와 야수’ 등 국내 뮤지컬사에 획을 긋는 작품들은 모조리 그의 지휘봉을 거쳤다. 뮤지컬은 뮤직(음악)에서 파생된 장르인 만큼 뮤지컬 음악감독은 ‘무대 뒤의 주인공’이다. 작사・작곡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배우와 스태프 구성 작업은 물론 무대 위 연주까지 전 과정을 관할해야 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전문인력이 매우 부족한 국내 뮤지컬계의 상황에서도 유독 음악감독 부문은 전문인력들의 진출이 도드라진다. 음악감독의 전형을 만들어 내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박 감독 덕분이다. 그는 부흥기를 맞고 있는 뮤지컬 산업에서 여성 음악감독・여배우의 멘토(스승)가 되며 ‘여풍(女風)’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엔터테이너로서의 전문성과 역량을 인정받은 박 감독은 16일부터 아리랑 TV의 토크쇼 ‘아리랑 카페’의 진행자로 뽑혔다. 주한미상공회의소 제프리 존스 전 회장과 건축전문가 피터 바돌로뮤, 외교통상부 도영심 문화협력대사 등 3인과 함께 돌아가며 자신의 전문분야에 걸맞은 초대손님과의 토크쇼를 이끌어가는 역할이다. 국악 전문방송 진행자, 작사가, 연극배우, 가수, 대학교수 등 그의 이름 앞에 붙었던 직함은 많지만, 관객의 기를 뒤통수로 받으며 지휘봉으로 무대를 움직이는 그의 모습이 보일 때 극장의 사람들은 비로소 안심한다.
◇박칼린 감독이 작업한 뮤지컬 ‘명성황후’ ‘미녀와 야수’ ‘오페라의 유령’ ‘노틀담의 꼽추’ 공연 장면(사진 왼쪽 두번째부터). 매혹의 카리스마 <음악감독 여풍시대 연 박칼린씨> 오케스트라 연습은 물론 노래 편곡・보컬코치・안무・동선까지 예술과 기술・사람 삼박자를 무데위에서 조화롭게 이끄는 힘 “음악을 잘하는 것만으로 되는 건 아닙니다. 음악감독은 사람을 다룰 줄 알아야 해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람이죠. 배우와 스태프, 예술성과 기술을 조화시키며 수많은 사람을 조화롭게 이끌어가는 카리스마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휘자가 연주자들로부터 선택받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지휘봉을 들어도 사람들의 마음이 떠나면 안 좇아오거든요.”
◇지휘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검은 남자 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매일 밤 지휘대에 오른다는 박칼린씨. 막이 내리는 순간 객석을 향해 뒤돌아서 인사하면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은 최고의 무대의상을 걸친 듯 빛이 난다.허정호 기자 한국 최초 음악감독 박칼린. 스무 살 초반의 어린 여자가 남자 스태프들을 진두지휘하는 사령관으로 뛰어들었을 때 왜 억울함과 어려움이 없었을까. 하지만 10여 년 사이 이제 뮤지컬에서 음악감독 박칼린의 이름은 연출가의 이름보다 작품의 보증수표로 통한다. 대본과 악보를 받는 순간부터 무대 막이 내릴 때까지 그는 전천후로 ‘개입’한다. 악보를 받아서 오케스트라 선정하고 연습을 시키고, 때로는 노래를 하나하나 따라부르면서 배우들의 캐릭터에 맞게 편곡하기도 한다. 배우들의 오디션에 참가하고 배우들의 보컬을 지도한다. 음악에 맞춰 안무와 동선을 짜는 일도 나몰라라 할 수 없다. 그는 한 가지 역할만 잘하면 된다는 ‘개인주의’를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제가 음악감독이라는 역할모델에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말한다. 브로드웨이에서는 세분화된 음악분야 업무를 1인다역으로 소화해낸 것.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이 모든 일을 성의껏 다했기 때문에 어린 여성 감독이 부딪칠 수 있는 ‘관계’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고민해서 풀어야 할 퍼즐이 없는 일에는 의욕을 못 느낀다는 박칼린. 뭐든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어릴 적 꿈은 발명가였다. 성악을 전공하고 아리랑을 곧잘 불렀던 금발에 푸른 눈의 어머니는 세 딸을 교회로 떠밀었다. 오로지 음악을 하라는 이유에서였다. 어머니가 부르던 팔도 민요, 가곡, 이미자 노래에 ‘우쭐’하며, 부산에서 버스 안내양들의 ‘오라이 오라이’ 소리를 듣고 자란 그는 자신이 뮤지컬을 시작한 게 언제인지 모른다.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가서 첼로를 배우면서도 하다못해 학예회나 전시회에도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 입혔고, 연주와 연기와 노래를 번갈아 했다. “전 맥도널드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했으면 망했을 겁니다. 뭔가 다르게 만들어보려고 했을 게 뻔하니까요.” 그는 배우, 스태프와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연습 기간이 가장 즐겁다. 반면 관객 앞의 연주는 가장 지루한 시간.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오로지 음악감독과 무대감독 2인의 지시와 상호작용으로만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낀다. 오늘은 관객을 얼마나 끌어올 수 있을까, 자고 있는 관객을 어떻게 깨울까, 배우와 관객의 상승하는 에너지를 얼마만큼 유지시킬까, 지휘봉을 높이 들었다 낮췄다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케스트라석은 무대와 객석의 기가 충돌하는 비무장지대고요, 저는 나체로 서서 양쪽을 대면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6〜7개월씩 가는 장기공연에서 매일 연주대에 서는 과정을 그는 “장기적으로 섹스를 즐기는 기쁨”에 비유한다. “무엇이든 긴 호흡으로 파도를 타는 게 중요합니다. 빨리 끝내거나, 후반에 지치거나 하지 않도록 호흡을 맞춰 나가는 건 보통 공력이 필요한 게 아니거든요.” 뮤지컬 배우, 가수들의 보컬 선생으로도 유명한 그는 올해 모 대학 뮤지컬학과의 전임교수 제의를 받고 고민 중이다. 올해 장장 10개월간 공연되는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의 음악감독을 맡기로 했고, 현재 음악감독으로서의 뮤지컬 관련 이야기를 책으로 집필 중이기 때문이다. 또 오는 4월 CJ엔터테인먼트와 LG아트센터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창작뮤지컬 워크숍 쇼케이스’ 준비하느라 바쁘다. 창작 공모를 통해 선별된 작품을 극작가, 작사가, 작곡가로 구성된 창작그룹이 워크숍으로 가다듬어 투자자들에게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거기는 같은 작품을 10년씩 해요. 대작들만 움직이는 공장 같은 곳이니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전 미국이든 한국이든 구애받지 않습니다. 제 아이디어가 활발히 돌아갈 수 있는 통로가 많은 곳이면 어디서든 열심히 할 겁니다.” 글 김은진, 사진 허정호 기자 jisland@segye.com 여성음악감독 전성시대 주역은? 구소영・원미솔・김문정등 30대 실력・신선한 감각으로 국내 휩쓸어 뮤지컬 음악감독 분야의 여성 바람은 남다른 데가 있다. 박칼린 감독을 선두로 구소영 원미솔 김문정 등 국내 인기 뮤지컬 음악감독의 계보를 모두 30대 나이의 젊은 여성들이 작성 중이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분야의 여성 독점은 국내 문화에서 신선한 현상이다. 인기 음악감독이 대부분 남성인 뉴욕 브로드웨이와 비교해서도 차별화된다. 젊고 신선한 음악감각, 궂은일을 마다 않는 원만한 성격과 부드러운 카리스마, 음악 전공자의 탄탄한 기본기와 열정 등이 이들의 공통점으로 꼽힌다. 구소영씨는 러시아 국립음악원에서 지휘를 전공한 재원으로 1999년 ‘명성황후’에서 조감독으로 시작했다. 이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한여름 밤의 꿈’ ‘카르멘’ ‘달고나’ 등으로 창작뮤지컬의 역사를 만들어가며 창작뮤지컬 전문 음악감독으로 불린다.
◇""맘마미아""의 김문정, ""지킬 앤 하이드""의 원미솔, ""카르멘""의 구소영씨 (사진왼쪽부터) ‘록키 호러 쇼’ ‘그리스’ ‘킹 앤 아이’ ‘지킬 앤 하이드’ 등을 작업한 원미솔씨는 서울대 음대 작곡과 출신. 정통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작곡 실력이 특장이다. ‘명성황후’를 제작한 에이콤 인터내셔날의 전속 음악감독인 김문정씨는 ‘맘마미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둘리’ ‘페임’ 등에 참여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명성황후’의 현 음악감독으로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를 졸업했다. 국내 뮤지컬 제작 현장에서 안무나 무대미술 등에 비해 전문가 풀을 가진 분야가 음악감독이다. ‘명성황후’의 연출가 윤호진(에이콤 대표)씨는 “10여년 전만 해도 전문 스태프가 없었는데, 박칼린이라는 뛰어난 여성 음악감독의 약진이 후진들을 이끌었다”면서 “한국 여성감독들의 경우 우리 어머니들의 근성과 인내심을 내성화해서 그런지 지난한 창작현장에서 능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달고나’의 제작 프로듀서 김종헌(PMC프로덕션 상무)씨는 음악감독들의 활약이 우리 뮤지컬 산업의 내실을 기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그동안 우리 뮤지컬계에는 연기 감독에 불과한 사람이 연출이란 이름으로 전권을 휘두른 게 문제”였다면서 “현재 싹트고 있는 우리의 중・소극장 뮤지컬 운동이 극작・작곡가 중심에서 벗어나 창작 스태프를 조정하는 음악감독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는 시스템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연습실. 훌쩍 큰 키에 서구적인 모습의 여성이 부드러우면서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노래 지도를 하고 있다. ‘신시 뮤지컬 컴퍼니’ <댄싱 섀도우>의 연습 현장이다. <댄싱 섀도우>는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원작으로 세계무대를 겨냥해 만든 뮤지컬. 6?5로 여자들만 남은 마을에 공비가 찾아오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아리엘 도르프만의 극본, 에릭 울프슨의 작곡을 거치면서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는 작품으로 거듭났다. 오는 7월 8일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우리말 가사로 초연한 후 세계로 나간다는 계획. 우리 뮤지컬이 처음부터 세계무대를 겨냥해 제작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신 나간 과부들이 노래하는 거야. 그 느낌을 살려야지.”
 
  노래 지도를 하고 있는 음악감독 박칼린. 그는 음악감독 1호로, 우리나라 뮤지컬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연습 후 잠시 짬을 낸 그는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며 인터뷰에 응했다. 그에게서 어느 순간에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음악을 공부한 그. 미국에서 태어난 뮤지컬이 한국에 뿌리내리고 꽃피는 데 그가 어떤 역할을 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명성황후> <오페라의 유령> <페임> <렌트> <사운드 오브 뮤직> <시카고> <노틀담의 꼽추> <미스 사이공> <아이다> …. 그가 음악감독을 맡아 무대에 올린 작품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숨찰 정도다.
 
  외국어 가사를 우리말로 번안하고, 극 흐름에 맞춰 어느 노래가 어디에 들어갈지 구성하고 편곡하고, 배우와 오케스트라를 캐스팅해 연습시키고, 막이 오르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음악감독의 역할에 대해 박칼린 씨는 “관여하는 일이 너무 많아 오히려 없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라고 표현한다. 그런데도 오케스트라에서 지휘하는 그의 모습을 일부러 찾는 팬들이 많아졌다. 음악감독의 역량에 따라 뮤지컬의 음악적 완성도가 좌우되니, 그는 우리나라 뮤지컬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며 각광받는 데 주춧돌 같은 역할을 한 존재라 할 수 있다.
 
  그가 뮤지컬 음악감독이 된 것은 우연이었다. 한 번도 무엇이 되어 보겠다고 문을 두드린 적이 없는데, 자신을 먼저 발견하고 이끌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 자리까지 온 것이라고 한다. 처음 자신을 알아본 사람은 미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연극반 선생님이었다. 학교 뮤지컬 공연 때 그는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를 위해 역할을 만드시더니 첼로 연주를 쉬는 사이에 1인 5역으로 무대에 오르게 하셨다. ‘내성적이었던 나에게서 무엇을 보셨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이것이 그의 무대인생에 서막이 됐다.
 

  고등학생 때 잠시 한국에 살았던 그는 1년간 경남여고에 다니면서 연극반 활동을 했다. 그때 만든 마당놀이 형식의 뮤지컬로 연극제에서 연기상을 받았다. 미국으로 돌아가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총괄음악을 전공하고, 서울대 국악과 대학원으로 돌아왔다. 그의 피와 마음속에 동서양이 함께 있기 때문일까? 피아노, 첼로 등 서양악기와 가야금, 대금, 장구 등 우리 악기에 모두 끌렸다고 한다.
 
  그리고 명창 박동진 씨를 만났다. 하와이를 방문하는 인간문화재의 통역을 맡았을 때였다.
 
 
  박동진 명창이 보자마자 “너, 소리해야 쓰겄다”
 
  박동진 선생은 그를 보더니 대뜸 “너, 소리해야 쓰겄다”고 말했다. 그때 그의 대답은 “장난하시는 것 아니죠?”였다. 그 후 3년이 넘게 매일 박동진 선생을 찾아가 소리를 익혔다. 박동진 선생은 열성적으로 그를 가르쳤다. 그는 자신의 삶이 이런 인연들로 이어져 왔다고 한다. 자신을 먼저 알아봐 주고, 길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고등학교 연극반 시절의 명성 덕에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뮤지컬계로 들어왔다. 뮤지컬 연출가 윤호진 씨가 그를 알아본 것. 1990년대 초, 우리나라 뮤지컬이 아직 뿌리내리기 전이니 음악감독이라는 역할이 뚜렷하지 않을 때였다. 배우들 노래 연습을 시키는 등 이 일 저 일을 돕던 그가 음악감독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알린 것은 1995년 초연한 <명성황후>를 통해서였다. 구한말을 소재로 한 이 한국적 뮤지컬에 그는 동서양 음악을 섭렵한 자신의 역량을 녹여 넣을 수 있었다.
 
  그는 ‘마녀’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무섭게 몰아치는 음악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완벽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작품에 임하면 관객이 얼마나 들지, 돈이나 명성에 대한 생각 같은 것은 아예 머릿속에 없다. 오로지 작품만을 위해 올인한다.
 
  “어떻게 음악적으로 완성도를 높여 뮤지컬을 만들 것인가에 몰입하죠. 이건 내게 주어진 퍼즐을 푸는 것과 같아요. 그렇게 문제를 푸는 게 재미있어서 이렇게 살아요.”
 
  “이왕 하기로 했으면 똑바로 하라”가 그의 좌우명이다. “먹고살려고 어쩔 수 없이 일한다”는 말이 제일 싫다면서 “어쨌든 그것도 자신의 선택 아닙니까? 선택을 했으면 똑바로 해야죠”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붙잡고 연습을 시키는 그에게 배우들이 스트라이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너희들끼리 해보라”고 손을 딱 뗐는데, 결국 “연습이 덜된 채 나가니 무대에서 박수 받는 게 부끄럽다”며 그들이 백기를 들고 나왔다. 요즘은 몰아붙이지 않고도 원하는 수준에 이를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요즘 그의 관심은 ‘돕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제는 자신이 누군가의 길잡이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뮤지컬 음악감독과 배우, 스태프, 연주자를 발굴해 양성하는 ‘킥 뮤지컬’도 세웠다.
 
  “사실 노래를 시켜 보기도 전, 오디션 보러 들어오는 것만 봐도 느낌이 팍 오는 친구들이 있지요.”
 
  한국 뮤지컬계에서 엄청난 파워를 발휘하는 조승우를 2000년 <명성황후>에 캐스팅한 것도 그였다. 연습 중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받아먹는지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고 한다. 최근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에스메랄다 역에 캐스팅된 오진영 씨의 경우 “너는 할 수 있으니 여주인공에 도전하라”고 힘을 불어넣었는데 그대로 됐다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다.
 
  온통 일에 몰입했다 삽살개를 데리고 여행을 하거나 경비행기를 조종하거나, 혹은 요리, 청소, 설거지 같은 일로 머리를 비운다는 그. 이제껏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에 최선을 다해 왔다는 그에게 꼭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물었다. 역시 이상주의자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우주비행? 아니면 샹그릴라 같은 이상향을 찾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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