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감동받은 글중에서
몇 해 전, 동료 하나가 퇴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했다.
그런데 그가 받는 선물 중에 유독 탐이 나는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나무를 두께1cm. 직경5cm의 넓이로 저며 만든 열쇠고리였다
후배교사가 산에 죽어 넘어져 있는 나루를 주워다가 만든 것으로 나이테까지 선명한 그곳에 야생화를 그려 넣어 채색한 것이다.
나는 그에게 내가 퇴직할 떼도 꼭 해달라고 미리 부탁을 했다.
"물론 해드리지요." 흔쾌히 대답하는 그에게 나는 " 저는 금강초롱을 좋아해요." 라고 언제 할지도 모를 퇴직선물을 예약해 두었다.
그는 웃으며 "금강초롱은 제가 직접 본 일이 없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그려 넣지요."했다
선믈을 해달라며 때를 쓰고 거기다 그려넣을 꽃까지 지정하는 내가 좀 지나쳤나 싶었지만 너무도 가지고 싶은 나머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 후 2년이 지나 다니던 학교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다른 학교에 가있는 그에게 전화로 나의 퇴직을 알리고, 그 열쇠고리 이야기를 했다.
그분은 유쾌하게 웃으며 "그것 받고 싶어서 퇴직하신 거 아니에요?" 하며 내 마음을 풀어주었다.
얼마 후 그가 모임 때 그 선물을 가져와 주었다.
"제가 금강초롱을 직접 본 것이 아니어서 잘 표현이 안된거 같아요. 그래서 뒷면에 제가 좋아하는 구름범위귀 라는 꽃을 하나 더
그려 넣었어요. " 하면서 양면에 꽃이 그려진 나무 연쇠고리를 내밀었다.
먼저 받았던 동료가 "나는 하나뿐이었는데..." 하며 부러워했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좀 과장하면 '퇴직하기 정말 잘했다!' 할 만큼. 그것은 내가 받은 그 어느 선물 보다 나를 기쁘게 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 열쇠고리를 찬찬히 살며 보았다
그런데 내가 좋아해서 그려달랬던 금강초롱보다 그분이 좋아해 그려넣은 '구름범의귀'가 더 아름다고 더 마음에 드는것이었다.
그때 어떤 깨달음이 내게 왔다.
'맡김'이었다.
내 의지로, 내 구도대로 이루려고 하는 것보다 믿고 맡기는 것이 섣부른 내주장, 내 의지보다 더 진정한 것을 이룬다는것을...
나는 내 자식도, 내 제자들도, 내가 꿈꾸어오고 내가 생각해온 틀에 맞추어 넣으려고 하고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을 속상해하고,
절망하고, 원망하고 때로는 꾸짖기도 했다.
내 삶에서도 내가 바라는 '금강초롱'이 있었기에 나는 갈증 나고 불행하고 미흡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꽃들도 다 아름답고, 더 아름다운 꽃들이 지천인데 나는 금강초롱만 제일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 열쇠고리를 일삼아 본다, 그가 그려준 '구름범의귀'. 참 예쁘고 참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치우친 생각을 되돌아보게 하는 내 삶의 스승이 되었다
그 스승은 마침내 나를 '하느님에게도 '라는 생각으로 까지 이끌어 갔다.
나는 이제껏 하느님께도 '금강초롱만 그려주세요' 해왔다
'하느님께 맡김' 온전히 맡김'
이 생각에 미치자 나는 삶의 번뇌에서 일순 벗어났다.
나를 짓누르고 가두는 못 미침과 못 거둠에 대한 절망감, 미흡함, 두려움, 갈증들에서...
물론 내가 무엇을 깨달았다 해도 또 흔드리고 또 바라고 도 무너지지만, 한조각 나무 열쇠고리를 보며 나는 또 나를 깨우친다.
- 가톨릭다이제스트 2009.4월호 - 신앙과 삶/ 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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