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함석헌의 기독교 사상
함석헌의 기독교 사상은 크게 무교회 신앙과 퀘이커 신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무교회(無敎會) 신앙
함석헌이 무교회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우찌무라 간조 선생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함석헌이 무교회의 신앙을 본격적으로 쌓아간 것은 귀국 후 김교신, 정상훈, 송두용, 유석동, 양인성과 주축이 되어 〈성서 조선〉을 중심으로 한 활동을 통해서 비롯되었다.
그 당시 그가 강조한 무교회 신앙은 ‘형식적인 교회주의를 비판하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 있었다. 신앙은 하느님과 나 사이에서 자유로운 진리를 추구할 때 비로소 형성되는데 그 사이에 교회의 형식이나 수단이 방해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교회 그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함석헌 자신도 보이지 않는 천상교회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배격한 것은 교회가 아니라 ‘교회주의’였다.
그 당시 그 자신이 강조한 무교회 신앙의 특징은 〈성서 조선〉 초기에 실린 그의 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무교회 신앙의 핵심을 ‘형식적인 교회주의를 비판하는 하느님 중심의 신앙’이라고 보았다. 그는 “교회 내에 있는 인간주의 이것을 교회주의라고 한다. 인간적 의사를 가지고 교회에 임할 때에 양심은 생명적인 신앙을 경시하고 외적 기구를 유지함에 의하여 세속적 요구에 응합하려는 사업상을 가지게 되면 그리스도 본위(本位)에서 교회 본위로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 교회의 특색을 표시하는 말로 이에서 더 적합한 것은 없다"고 말하며 “무교회주의는 교회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주의’를 배격한다”고 주장했다.
즉 그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형식, 의식, 교권에 반대하면서 “하느님께 직접 나감”과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접함”을 자신이 몸담고 있는 무교회의 믿음이라고 말하고 이것만이 하느님 중심의 신앙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교회 신앙에 머무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과감하게 무교회 신앙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성숙시켜 나갔다. 당시 무교회 신앙에 대한 주된 비판 내용은 그들의 폐쇄성과 민중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그가 무교회에 머물지 않는 첫째 이유는 자신의 신앙 주체성을 찾고, 둘째 이유는 우리 민족, 역사 문제를 대면할 수 있는 적합한 종교, 신앙을 형성해 보려는데 있었고, 셋째는 민중을 위한 종교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위와 같은 이유를 가지고 1952년 ‘흰손’, 1953년 ‘대선언’을 발표하고는 “모든 종교에서의, 물론 무교회주의에서도 탈퇴를 선언”했다. 그는 이 선언을 통해 다시 한 번 하느님 중심의 신앙과 하느님과의 직접 대면 사상, 그리고 비형식적, 비교권주의적인 ‘참’을 추구하는 신앙을 천명한다. 그는 그것을 위해 신앙의 주체성, 역사성 그리고 민중을 위한 민주성을 지향하고, 이것을 자신의 기독교 사상 발전의 중심 토대로 삼는다.
출처 : ly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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