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는 음악으로 행복 주고 싶어요”
올해 초 서울 서초동의 대법원 청사 앞에 300석 규모의 공연장 ‘화이트홀’과 흰물결 갤러리가 개관했다. 삭막한 법조타운에 클래식 음악의 향기를 전하는 주인공은 윤학 변호사(51). 그는 “법률로 돈을 버는 일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며 지난해 가을 잘 나가는 로펌의 대표변호사직도 벗어 던졌다.
봄 비가 촉촉이 내리던 지난 주말. 화이트홀에서 열린 ‘봄바람 꽃바람’이라는 음악회에는 객석이 가득찼다. 한국의 가곡을 성악가들이 3중창, 4중창으로 편곡해서 앙상블로 들려주는 음악회는 색다른 활력이 느껴졌다. 가곡을 따라 부르는 관객들의 표정에선 ‘몇 년만에 느껴보는 감동인가’하는 표정이 흘러나왔다. 공연을 마칠 무렵 윤 변호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미국 뉴욕에 갔는데 거기서 수십년 살았던 교민이 한 번도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카네기홀 음악회도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부자 동네라도, 공연장이 많은 동네에 산다고 해도 한번도 일상에서 벗어나보지 못한 사람은 행복을 즐길 수 없습니다.”
윤 변호사는 1997년 외환위기로 폐간위기에 몰렸던 ‘가톨릭 다이제스트’라는 잡지를 인수했다. 아는 신부님의 부탁에 법률잡지도 아닌 종교잡지를 두 말 없이 넘겨 받았다. 그로부터 10년 후. 구독자가 몇 백 명 남짓에 불과하던 이 잡지는 국내외 독자가 7만 명이 넘는 흑자의 잡지로 성장했다. 유료 광고 한편 없이 윤 변호사가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낸 주변의 진솔한 이야기를 실어 이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최근에는 새로운 잡지 월간 ‘독자’(reader)도 창간했다.
“잡지는 책을 통해, 공연장은 음악을 통해 순수한 만남을 주선하는 일입니다. 출판사를 시작했을 때 한달에 1000만원 씩 까먹었어요. 변호사로 번 돈을 다 쏟아부었지요. 공연장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래도 간절히 원하니까 돈 문제는 해결되더군요.”
그는 “때로는 능력보다 순수함이 더 힘이 세다는 것을 믿는다”며 “음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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