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지 몰랐습니다.
컨디션은 좋은데 몸이 일어나질 않습니다.
남편이 출근 준비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불 속에서 뒤척입니다.
행여 내가 잠을 깰세라 남편이 조심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허리가 아픕니다.
며칠째 허리의 통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통증은 아마도 상체의 기운을 하체로 보내려는 노력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믿으며 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통증이 두렵거나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냥 느끼며 함께할 뿐입니다.
몸을 웅크려도 보고 위아래로 쭈욱 늘이기도 하면서
오히려 통증을 가중시키기도 합니다.
이불 속에서 남편을 배웅하고 앞산을 바라봅니다.
한 달 전 하늘로 가는 기차를 타고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난 딸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딸이 떠나기 하루 전 날 밤이 생각납니다.
녀석은 2박3일 만에 집에 돌아왔고 녀석이 돌아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는 척했습니다.
다음 날 밝은 기분으로 녀석의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녀석은 불 꺼진 내 방으로 들어와 “엄마 자?” 하고 물었습니다.
아무 말도 없는 나의 등을 녀석이 뒤에서 두 팔로 살며시 안았습니다.
“엄마, 사랑해.
그리고 엄마 병 빨리 나아. 잘 자.”
녀석은 이렇게 내 마음을 풀어주고 조용히 방을 나갔습니다.
조용하고 따듯하며 친밀하던 모녀간의 느낌.
세상에서 나만이 간직한 유일한 것입니다.
딸이 어느 날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나도 그랬습니다.
결혼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딸 하나, 아들 하나 키우며 학교에 근무하던 15년 동안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답이 없었습니다.
나이 마흔을 넘으면서 사람들의 부음을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암으로 죽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보았습니다.
누가 암이라더라 하는 소릴 들은 지 두어 달이 지나면 그 사람
죽었더라 하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남편의 가장 가까운 고교 동창도 마흔네 살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고 옆집에 살던 아들 녀석 친구의 아버지도
사십 초반에 폐암으로 가족 곁을 떠났습니다.
남편 지인의 아내는 사십대의 여의사였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폐암인 것을 알고 치료를 포기하고 죽는 날까지
진료를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속절없이 우리 곁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암은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니구나, 내가 암에 걸린다면
생명을 연장해보겠다고 병원에 가지는 않겠다.‘
나도
암 환자가 되었고 얼결에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그 땐 남편을 설득할 용기가 부족했습니다.하지만
암이 재발했을 때 나는 남편에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을 거야.”
한방 치료를 받으며 가끔 생각했습니다.
‘왜 살려고 하는 거지?’
역시 답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투병 2년 동안 참으로 귀한 보물을 얻었습니다.
돈으로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새롭게 나를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보물은 계속 굴러들었습니다.
내 남편이 얼마나 귀한 분인지도 알게 되고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 덩어리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노래를 부르던 세계 여행에 대한 갈증도
사라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이 짜릿하게 다가왔습니다.
행복한 투병 생활을 하는 내 앞에서 딸은 종종
사는 게 재미없단 말을 하곤 했었지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똑똑하고 야망이 있는 아이니까
지나가는 감정의 바람이려니 했습니다.
외고 졸업, 외대 중퇴, 모델학과 졸업, 세계를 워킹 하겠다던
딸은 우주로 떠나버렸습니다.
세계도 좁았던가 봅니다.
새벽 두 시에 응급실로 달려가던 이 어미이게 걸려온 전화는
“형님, 응급실로 오지 마시고 영안실로 오세요.”였습니다.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
남은 가족의 행복을 빌며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간 내 딸아.
너의 장례를 치르며 엄마를 걱정하던 아빠의 파란 얼굴을 보았니?
아빠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엄마는 네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아빠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네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아빠,
그 아빠를 지켜야 할 사람은 엄마뿐이잖아.
경미야!
철없는 엄마를 번쩍 정신 차리게 해줘서 고마워.
오늘은 활짝 웃는 네 사진을 식탁 앞에 붙였다.
이제 널 바라보며 이런저런 애길 할 수 있을 것 같아.
또 만나자.
- 류부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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