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스크랩] 책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그림

klgallery 2008. 3. 19. 15:58

 

새롭게 시작하는 한주를 맞는 월요일. 여러분의 일상은 어떤 속도로

이루어 지셨는지요? 시간의 속도는 받아들이는 존재의 상태에 따라 빠르게

혹은 더디게 흐른다고 하더군요. 오늘 제겐 좋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두 달여간 끌어왔던 계약건을 확정지었고, 3월에 출간될 책의 두번째

수정본을 받아 읽으며 더 게워내야 할 문장들의 숲을 헤매었습니다. 생각지 않았던 고객에서

달콤한 차를 얻어마셨고, 외국으로 떠나는 작가 선생님에게 그림 한점을 위탁받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5권의 책을 샀고, 3월 중

독서 후기 계획을 세운 후, 한달 동안 치열하게 움직이는 프랭클린 다이어리의

행간에 일자와 시간을 정확하게 적어놓습니다.

 

연두색 보드판이 눈에 띄지요? 어제 컨퍼런스 끝나고 네이버측에서 선물로 준 것이랍니다.

 

 

책을 쓰면서 참고하느라 끙끙 대며 읽었던 존 하비의 책이

번역되었길래 기쁜 맘에 바구니에 담았고, 안무가 트와일러 타프가 쓴 <창조적 습관>은

4권째 삽니다. 예전에 사서 읽었는데 내용이 좋아 지인들에게 다 선물로 주었습니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랑 함께 들으며 보려고, 카페문화를 다룬 책을 샀고, 디자인의 역사를

상품의 관점에서 다룬 20세기 디자인 아이콘 83 과 패션 디자이너들의 색채의식을 밝힌 책도 샀습니다.

 

저의 독서는 최근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4 년여에 걸쳐 복식사 책을 쓰느라, 복식과 패션에 관한 책

제 원래 분야인 마케팅 전략과 시장개발론에 관한 책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요.

김훈의 남한산성을 제외하곤, 소설 텍스트와는 거의 담을 쌓아버렸네요.

 

복식에 관한 책을 읽으면 참 행복합니다.

옷 자락, 주름 하나에 배어있는 역사의 향기가 느껴지고, 문화적 방향성이 그려지는

유쾌한 독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서재에 패션사에 관련된 책을 정리해보았습니다.

 

 

프란즈 아이블 <독서하는 처녀> 1850년

캔버스에 유채, 53*41cm, 벨데베레 박물관의 오스트리아 회랑

 

집필을 위한 독서행위는 때로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이럴 땐, 즐거운 책을 읽어야죠. 아껴둔 시인의 글을 낭독하거나

이번에 새로 구매한 램프불빛 아래, 잔잔하게 글의 향연을 느껴야 합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사교계에서 초상화가로 유명세를 떨쳤던 프란즈 아이블의

그림 속엔, 뭔가 서스펜스 소설을 읽는 듯, 동요된 감정을 느끼며

살포시 내려온 옷 한단을 손으로 감추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랑스럽네요.

 

 

라몬 카시스 이 카르보 <무도회가 끝난 후> 1850년, 캔버스에 유채, 아바디아 박물관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은 밤 11시, 이 늦디 늦은 시간에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한통.  내일 저녁 바비큐 파티가 있다며 부릅니다.

책을 읽고 싶었던 마음에 찬물을 껴엊는 이런 전화가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달아나야 겠습니다.

 

이 그림을 그렸던 라몬은 잡지 삽화가로 유명세를 떨쳤어요.

술집을 운영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뭔가 무도회에서 달콤한

술 한잔 걸친 후 초록빛 소파에 누운 여인의 모습을 잘도 그렸습니다.

저 소파에 누워 책이나 실컷 읽고 싶네요.

 

 

안톤 에베르트 <잠잘 때 읽어주는 동화> 1883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아이가 생기면 항상 잠자리에서

동화를 읽어주는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림책 교육을 하시는 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아빠가 낭독할때와

엄마가 낭독할때 각자 그 효과가 다르고, 두뇌의 활동영역이 달라진다네요.

목소리 톤과 읽기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두뇌 발달이 균형 있게 이루어진답니다.

 

19세기의 장르화가였던 안톤 에베르트가 그린 그림 속

침대에서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엄마의 품속이, 너무나도 따스할 것 같습니다.

 

 

존 싱어 사전트 < 밑줄 귿는 남자> 1890년 캔버스에 유채, 스미소니언 박물관

 

침대에 누워 턱을 괸채, 책의 행간을 읽는

남자의 초상이 유독 살갑습니다. 빅토리아 후기, 초상화의 대가였던 사전트의

붓놀림은 대기를 떠도는 시간의 미립자를 정치하게 잡아냅니다.

펜을 입에 문 채, 아마도 좋은 구절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언제든, 펜으로 행간의 여백에 또렷한 밑줄 하나 그을 것 같네요

 

 

신선미의 한국화를 보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갑니다.

정교하게 잘 그린 그림이라고 하기엔, 전통 채색화를 그린 과정에 배어있는

엄청난 작가의 공력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꼼꼼하게 장지를 선택한 후

아교에 백반을 섞어 칠의 번짐을 막고 (이걸 아교반수라 하지요) 스케치를 하고, 먹선을 그리고,

옅게 담묵으로 양감을 표현한 후, 다시 여러번에 걸쳐 채색을 한 것이죠.

 

 
신선미_당신이 잠든사이2_장지에 채색_62×92.5cm_2007

 

감청색과 적색의 한복도 곱고, 그 위에 자수로 처리한 꽃들도 환하게 피어있고

우리의 전통적인 해학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지요.

책을 읽다 잠시 잠들어 버린 여인의 모습은 사랑스럽습니다.

 

부산하지만, 완결된 하루의 마무리는 꼭 책을 한줄 읽는 것으로

처리합니다. 내 서재에 꽂아둔 영혼의 안테나처럼, 외부와 내면을 이어주는

 책 속의 목소리가 오늘도 나를 부추깁니다.  

 



신선미_당신이 잠든사이_장지에 채색_100×162cm_2006

 

여러분이 잠든 사이......아포리즘으로 가득한 책 한권 꺼내 읽어야 할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일상에 행복한 밑줄을 긋고 싶습니다. 귀가 가려울 것 같다고요?

 

 

 

 

출처 :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
글쓴이 : 김홍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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