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펌)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klgallery 2007. 6. 20. 12:40


 

[포토엔]‘내 남자의 여자’ 엔딩 표정 이랬다! 지수-준표-화영 ⑮

 

뉴스엔 조은영 기자]

SBS 월화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서 화영 역의 김희애가 보여준 팜므파탈의 이미지는 분명 전형적인 구석이 있다.

근래 보기 드문 매력적인 캐릭터였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단순히 불륜이란 금기된 욕망에 솔직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 가족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 화영이 던진 도발은 공격적이라 느껴질 만큼 거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화영의 외연은 1차적으로 ‘가정을 지키며 살던 나’를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화려함과 자유분방함으로 귀결된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당당한 그녀는 친구의 남자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인 준표(김상중)와의 사랑이 윤리적 핸디캡을 지녔다는 것 따위에 상관하지 않는다. 그녀는 늘 예측불허의 솔직함으로 남자와의 관계를 리드한다.

심지어 불륜의 피해자인 지수(배종옥) 앞에서 조차 거리낌이 없다. 지수에게 준표와 자신의 사랑을 당당하게 고백하는 것은 물론 심정적으로 기대고 싶을 때도 망설임 없이 지수를 찾는다. 마치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미덕으로 알던 지수와 제도권안의 안온한 가정을 무너뜨리려는 의도적인 도발인 것처럼.

물론 그런 화영에게도 아픔은 있다. 그녀는 성형외과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이도 없이 무능력한 남편은 자살하고 양가 가족들의 경제적 착취에 시달려 왔다.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지 못한 그녀에게 가족은 지긋지긋한 굴레다.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래서 화영은 지수와 동일한 가정을 소유하고 싶어 했다. 밖에서 바라보는 지수의 가정은 더 없이 안락하고 이상적이어 보였으니까.

결국 화영은 준표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평생 소유해 보지 못했던 제대로(?) 된 가정을 갖기 위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 그녀는 적지만 준표의 월급봉투에 감격하고 주부가 되기 위해 요리학원에 등록하며 엄마가 되기 위해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자신이 걸어온 길과 다른, 여자로서 본연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굳게 믿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준표의 여자이자 한 가정의 주부라는 일상으로 들어간 화영이 점진적으로 깨닫게 된 것은 외부인의 눈에 안락하게 비춰졌던 준표와 지수의 이상적인 가정이 사실은 지수 혹은 여자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부당한 희생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처음부터 가정이 주는 의미가 억압과 고통 그 자체였던 화영이 잠시 지수를 보며 다른 꿈을 소망했지만 결국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18일 23회 방송 분에서 1년전 지수가 전해준 이혼서류를 정리하지 않고 보관해 두었던 준표에게 “이렇게 치사하게 정리시키고 차지해야 할 만큼 홍준표의 아내란 자리가 대단한 거야? 당신은 나에게 숨기지 말고 상의했어야 했어. 대등한 부부관계로 인정해야 했어. 언제부턴가 내가 지수가 돼 가는 것 같아. 날 지수처럼 만들려는 게 화가 나”라며 날선 공격을 던지던 화영의 대사는 허약한 부르주아 가정에 대한 조소어린 공격이 숨어 있었다.

결국 김수현 작가는 화영이란 캐릭터가 구축해 놓은 판타지에 현실이란 매정한 칼질을 들이대며 전형적인 요부이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자 이상의 역할을 만들어주려 했던 것 같다. 화영 역시 가정이란 억압적인 체제의 속박에 끊임없이 희생당하는 피해자이자 증거자였던 것이다. 화영과 준표의 불륜으로 상처 입은 지수가 화영에게만은 연대감 같은 애틋한 감정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결국 가장 안락해 보이는 한 가정을 무너뜨린 장본인이었지만 몸소 가정이란 울타리가 만든 억압된 사회적 질서의 허망함을 깨닫고 미련없이 이전 상태로 회귀를 결정하는 화영이란 캐릭터는 가부장제 가족주의에 대한 도발 이상의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댄 특별한 여자였다.

조은영 helloey@news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