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펌)

[스크랩] 김수현이 말하는 죽음이라는 것.

klgallery 2007. 6. 12. 10:43

<내 남자의 여자> 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언제나 딸려 오는 것이 바로 '불륜 드라마' 라는 수식어다. 보는 사람이나 보지 않는 사람이나 <내 남자의 여자> 의 '불륜' 에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듯 한데 뻔하디 뻔한, 어쩌면 닳고 닳은 소재라고 할 지라도 유독 <내 남자의 여자> 에 펄쩍 뛰는 이유를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이 드라마는 '불륜 드라마' 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이 드라마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사람'  , 그리고 그 사람들간의 관계다. 일반적인 불륜 드라마가 불륜 하나에 집착한다면 <내 남자의 여자> 에선 무수히 많은 관계에 집중한다. 부부, 친구, 자매, 부자, 모자, 고부 등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그들만의 인생을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가 불륜이 아니라 사람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불륜 드라마' 지만 '불륜 드라마' 가 아니라는 소리와도 같다.

 

 

어제 용덕의 죽음은 다시 한 번 이 드라마가 사람과 인생에 대해 말해주고자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군더더기' 라는 것이 없는데 그것이 바로 업둥이의 등장과 용덕의 죽음이다. 김수현의 드라마는 대개 그러하듯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형식을 띠고 있고 <내 남자의 여자> 에서도 업둥이와 죽음의 양 극단의 형태로 드러난다. 업둥이의 등장은 곧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용덕의 죽음은 그와는 반대 급부인 '인생의 종말' 이다.

 

 

즉, 새로운 것과 새롭지 않은 것이 태어나고 죽음으로써 이 드라마는 '인생' 의 한 귀퉁이를 덤덤히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김수현은 스스로 '신의 짓궂음' 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완전한 사랑> 에서도 차인표의 죽음이 그와 같은 '신의 짓궂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 이라고 할 수 있다. <완전한 사랑> 시절, 차인표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김수현이 한 인터뷰가 있다. 잠깐 들어보자.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내가 안보는 다른 데서 엄청난 불행이 덮치는 일 얼마든지 많습니다. 한치 앞을 우리는 모르고 살죠. 집에 불이 났는데 모르고 아빠는 망년회에서 마이크 잡고 노래를 불러제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이없는 신의 짓궂음. 그저 그렇게 생각하세요."

 

 

김수현이 바라보는 인생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어제 분 용덕이 죽어갈 때, 가장 사랑했던 딸들인 은수는 남편과 티격태격하고 있었고, 지수는 석준과 즐겁게 영화를 보고 있었다. 준표와 경민은 서커스를 보면서 서로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상관 없이 일상이 주는 행복을 느끼는 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시금 '신의 짓궂음' 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용덕의 죽음은 이제 은수와 지수에게 또 다른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 줄 것이다.

 

 

용덕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았던 "강아지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생명은 소중한거야." 라는 말 때문에 은수는 자신의 인생 한 귀퉁이에 업둥이 딸 하나를 받아 들일 것이고, 유일한 의지처이자 안식처가 사라진 지수는 방황과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조금 더 강해질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죽음으로서 딸들에게 베풀려 했던 것은 삶이 주는 고통과 그것을 감내하는 인내의 현명함이 아니었을지.

 

 

 

 

김수현 드라마의 '죽음'

 

 

그렇다면 김수현 드라마의 '죽음' 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완전한 사랑> 에서는 '사랑' 의 완전함이었고, <부모님 전 상서> 에서는 필연적인 인생의 과정이었고, <사랑과 야망> 에선 한 시대의 교차였으며, <내 남자의 여자> 에선 인생의 전환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 모든 작품들을 관통해 지나가는 단 한가지 의미는 '삶' 과 '죽음' 이 붙어있다는 것,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곧 죽어가고 있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다.

 

 

그래서 나는 김수현의 드라마가 좋으면서 무섭다. 대단히 '드라마' 다우면서도 때때로 삶이 주는 무게가 이런 것임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죽음' 으로서 새로운 '삶' 이 탄생되기도 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곧 '죽어야' 하는 운명, 60세를 훌쩍 넘은 한 노작가의 인생관은 이처럼 덤덤하지만 섬뜩하다.

 

 

 

 

 

인생은 다 바람 같은거야.


 

 

<내 남자의 여자> 에서 줄기차게 말하고 있는 인생은 다 바람 같은 것이다. 지수가 무심결에 외우고 있는 시처럼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순간" 이며,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돌" 뿐이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 어찌되었건 살아가야 하는 것, 그러니까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 그러나 결코 허무한 것만은 아닌 것.

 

 

묵연 스님의 시가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바람 자체는 신선하지. 그러나 바람자체는 늘 신선하지. 상큼하고 새큼한 새벽바람 맞으며 바람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바람처럼 살다 가는 게 좋아." 라고. 번민과 고통도 삶의 귀퉁이일 뿐, 기쁨과 희망도 모두 삶이 주는 하나의 축복일 뿐. 영원한 것도, 완전한 것도 없는 그저 하나의 일상일 뿐이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말하는 '인생' 에 준표와 화영의 불륜도, 지수의 분노도 모두 녹아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불륜도 영원할 수 없고, 지수의 분노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 그저 삶의 한 귀퉁이 '신의 짓궂음' 이라는 평범한 진실. '바람' 같은 인생 속에서 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될까. 남은 2주동안 그려질 그들의 '운명' 이 새삼 궁금해진다.

출처 : ♤끄적끄적 이야기♤
글쓴이 : 승복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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