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_79
8월 하순, 일주일 내내 비와
햇빛을 흠뻑 맞고 나면 블랙베리가 익었다...
처음에는 여럿 중에서도
딱 한 알, 윤기 나는 자주빛 덩어리 하나가 유독
붉고 푸르게 단단해졌다, 매듭처럼
그 첫 번째 열매를 먹으면 과육이 달았다
진한 포도주처럼, 여름의 피가 그 안에 있어
혀에 얼룩이 남고 열매를 따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이어서
붉은 것들에 검은색이 오르면 굶주린 욕망이
우리로 하여금 우유 통, 콩 통조림 통, 잼 통을 들고
달려나가게 했다, 장화는 찔레장미에 긁히고
젖은 풀들에 물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목초밭, 옥수수밭, 감자밭 이랑을 돌며 열매를 따
딸랑거리는 밑바닥은 덜 익은 것들로 채우고
그 위는 눈알처럼 불타는 굵고 검은 열매들로 덮어
통들을 가득 채웠다, 손은 가시에 찔려 화끈거리고
손바닥은 푸른 수염의 사나이처럼 끈적거렸다
우리는 싱싱한 베리 열매를 헛간에 저장했다
그러나 큰 통이 가득 찼을 때 우리는 발견했다
우리의 저장물을 포식 중인
솜털 같은 회색 곰팡이 균을
과즙도 악취가 났다, 일단 덤불을 떠나자
열매들이 발효해 달콤했던 과육은 신맛이 났다
나는 그때마다 울고 싶었다
공평하지 않은 일이었다
깡통 가득 들어 있던 먹음직한 열매들이
썩은 냄새가 난다는 것은
매년 나는 그것들이 그대로 보존되기를 바랐으나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 셰이머스 히니 <블랙베리 따기> (류시화 옮김)
*푸른 수염의 사나이(Bluebeard) - 아내를 여섯이나 죽인 프랑스 전설에 나오는 잔인한 남자
성 프란치스코의 아몬드 나무 이야기를 바꾸면, 가시나무에게 "형제여, 내게 하느님 이야기를 해 다오." 하고 말하자 가시나무는 하나 가득 검은 딸기를 열리게 했다. 신이 주신 윤기 나고 달콤한 열매가 입술과 혀를 검붉게 물들인다. 과즙, 피, 욕망 같은 단어들이 베리 열매를 따는 순수한 행위와 대비되며 감각을 자극한다. 그러나 삶의 즐거움은 파국을 내포하고 있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달고 신선한 열매들은 시큼한 냄새로 변한다.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이다.
은유와 상징, 운율(원문의 각운-sun/ripen, clot/knot, pots/boots, covered/burned-을 보라), 시적 묘사 등이 완벽에 가까운, 야생 블랙베리를 따는 일상의 일을 통해 인생의 이해에 접근하는 뛰어난 수작이다. 우유 통, 콩 통조림 통, 잼 통은 목초밭, 옥수수밭, 감자밭의 리듬으로 이어진다. 가시에 찔리고 장화가 찢기면서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덤불숲과 들판을 다니며 따 모은 베리 열매이지만, 그 기쁨과 수고는 아랑곳없이 저장통 안에서 모두 곰팡이가 피어 썩어 버린다. 모든 좋은 것들은 허무한 마지막이 있다. 그러나 해마다 베리 열매는 다시 열리고 여름마다 다시 통을 들고 달려 나간다. 그것이 썩지 않고 신선하게 보관되기를 바라면서. 또한 바람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기대와 실망의 반복, 그럼에도 다시 기대를 거는 것이 삶이다. 절망하지 않게 되기를 희망하면서 우리가 따러 다니는 열매는 무엇인가? 우리로 하여금 계속 희망을 갖게 만드는 열매는?
아일랜드의 역사와 자연에 바탕을 둔 시를 썼지만 동시에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에 호소하는 수많은 명시를 쓴 셰이머스 히니, "나는 말할 권리를 위해서 시를 썼다……. 계시로서의 시, 자아 발견으로서의 시를."이라고 말한 그가 작년 8월 더블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인간의 언어와 시문학에 큰 손실이었다. 죽어서도 어린 시절의 들판으로 베리 열매를 따러 갔을까?
painting_Caren Heine ⓒ che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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