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1962년 9월 19일 ~ 2010년 1월 14일)은 대한민국의 가톨릭 사제이자 의사로 아프리카 남부 수단의 마을인 톤즈에서 의료봉사활동을 겸한 구호운동을 펼쳤다. 세례명은 세례자 요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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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편집] 출생과 성장
부산광역시 남부민동에서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났다. 10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며, 어머니가 자갈치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해서 아이들을 키웠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성당에서 다미앵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보고 같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1] 천마초등학교,대신중학교,경남고등학교를 나왔다.
[편집] 청년기
1987년 부산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신부가 되는 뜻을 품었으며, 복무를 마치고 특히 청소년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에 따라 1991년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한다. 그리고 광주가톨릭대학교에 수도회 소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광주 가톨릭 대학교에서 2년 철학과정을 마친 후 서울 대림동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역시 2년 과정의 사목실습을 하였으며, 1997년 로마 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로 유학한다. 그곳에서 재학 중인 1999년 방학 때 선교체험을 하려 아프리카 케냐에 들렀을 당시 남수단 톤즈에서 활동을 하고 있던 제임스라는 인도출신 살레시오 신부를 만나 톤즈로 가게 되고, 이때 강렬한 인상을 받아 톤즈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한다.
[편집] 사제 생애
2001년 6월 24일 서울 구로3동 천주교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같은 해 10월 아프리카를 향해 선교사로 출발하여 12월 7일 아프리카 남부 수단 와랍주 톤즈에 부임한다.
그곳에서 가난과 기아,질병 등으로 도탄에 빠진 마을의 참상을 보게 되고,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겸한 의료봉사활동과 구호운동에 헌신한다. 진료소를 만들어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돌보며 인근 80여개 마을의 순회진료와 예방접종도 했다. 학교를 만들고, 초·중·고교 11년 과정을 꾸려 수학과 음악도 가르쳤다. 기숙사도 짓고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악기도 가르쳤다.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이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나환자(한센인)들의 신비스러운 힘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
– 이태석,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중[2]
그러나 2008년 11월 한국에 휴가차 잠시 입국하였을 때, 대장암 4기를 진단받아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암투병 끝에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에 선종하였다.
[편집]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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