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스크랩] 흰등심붓꽃과 금아 수필선

klgallery 2011. 6. 1. 15:23

 

피천득 선생님이 타계하신 지 며칠이 흘렀습니다.

돌연변인지 모르지만 흰등심붓꽃에 학교에 피어있어

평소 좋아하던 비교적 짧은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과 함께 내보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맛과 멋 - 피천득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은하다.

 맛은 생리를 필요로 하고, 멋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

 맛은 정확성에 있고, 멋은 파격에 있다.

 맛은 그때뿐이요, 멋은 여운이 있다.

 맛은 얕고, 멋은 깊다.

 맛은 현실적이요, 멋은 이상적이다.

 정욕 생활은 맛이요, 플라토닉 사랑은 멋이다.


 그러나 맛과 멋은 반대어는 아니다. 사실 그 어원은 같을지도 모른다. 맛있는 것의 반대는 맛없는 것이고, 멋있는 것의 반대는 멋없는 것이지 멋과 맛이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맛과 멋은 리얼과 낭만과 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맛만 있으면 그만인 사람도 있고, 맛이 없더라도 멋만 있으면 사는 사람이 있다.

 맛은 몸소 체험을 해야 하지만, 멋은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

 맛에 지치기 쉬운 나는 멋을 위하여 살아간다.

 

 

 은전 한 닢 - 피천득(皮千得)


 예전 상해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錢蔣 ; 돈 바꾸는 집)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일 원짜리 은전 한 닢을 내 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전장 주인은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돈을 두들려 보고 '하―오(좋소)' 하고 내어 준다. 그는 '하―오'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돈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전장을 찾아 들어갔다.

 

  품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은전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은으로 만든 돈이오니까?" 하고 묻는다.

전장 주인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돈을 어디서 훔쳤어?"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예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큰 돈을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거지는 손을 내밀었다. 전장 사람은 웃으면서 '하―오'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은전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돈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돈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 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일 원짜리를 줍니까? 각전(角錢) 한 닢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에서 몇 닢씩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다양[大洋]' 한 푼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 플루트 연주자 - 피천득


 바통을 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찬란한 존재다. 토스카니니 같은 지휘자 밑에서 플루트를 분다는 것은 또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다 지휘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같이 하모니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체에 있어서는 멤버가 된다는 것만도 참으로 행복된 일이다. 그리고 각자의 맡은 바 기능이 전체 효과에 종합적으로 기여된다는 것은 의의 깊은 일이다. 서로 없어서는 안 된다는 신뢰감이 거기에 있고, 칭찬이거나 혹평이거나, '내'가 아니요 '우리'가 받는다는 것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자기의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이 얼마 아니 된다 하더라도, 그리고 독주하는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 서운할 것은 없다. 남의 파트가 연주되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 것도 무음(無音)의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야구 팀의 외야수(外野手)와 같이 무대 뒤에 서 있는 콘트라베이스를 나는 좋아한다. 베토벤 교향곡 제 5번 '스켈소'의 악장 속에 있는 트리오 섹션에도, 둔한 콘트라베이스를 쩔쩔매게 하는 빠른 대목이 있다. 나는 이런 유머를 즐길 수 있는 베이스 연주자를 부러워한다. 전원 교향악 제 3악장에는 농부의 춤과 아마츄어 오케스트라가 나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서투른 바순이 제때 나오지를 못하고 뒤늦게야 따라나오는 대목이 몇 번 있다. 이 우스운 음절을 연주할 때는 바순 연주자의 기쁨을 나는 안다.


 팀파니스트가 되는 것도 좋다. 하이든 교향곡 94번의 서두가 연주되는 동안은 카운터 뒤에 있는 약방 주인같이 서 있다가, 청중이 경악하도록 갑자기 북을 두들기는 순간이 오면 그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자기를 향하여 힘차게 손을 흔드는 지휘자를 쳐다볼 때, 그는 자못 무상(無上)의 환희를 느낄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공책에 줄치는 작은 자로 교향악단을 지휘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지휘자가 되겠다고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토스카니니가 아니라도 어떤 존경받는 지휘자밑에서 무명(無名)의 플루트 연주자가 되고 싶은 때는 가끔 있었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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