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스크랩] 단풍잎과 시과의 어울림

klgallery 2008. 5. 28. 18:49

 

♣ 2008년 5월 14일 수요일 맑음


오늘은 우리 학교 소풍의 날이었다.

1학년은 4.3평화공원기념관과 ‘동방사신기’ 촬영 세트

2학년은 어리목에서 윗세오름을 거쳐 영실로 하산하는 한라산 등반

3학년은 한라수목원에 가게 되어 있어 수업 따라 3학년에 당첨.


몸이 아직 개운치 않고 목이 아파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

9시 반이 되어야 차를 몰고 한라수목원으로 달렸다.

마침 수목원 입구에 유동나무꽃이 있어 몇 컷 찍고 갔으나

바야흐로 신록의 철이라 꽃은 한물갔다.


몇 그루 안 되는 참꽃나무가 붉었으나 벌써 시들기 시작했고

약모밀, 원추리, 연꽃 등은 아직 소식이 없다.

시과(翅果)는 날개가 있어 바람에 날려 씨를 퍼뜨리는 씨를 말하는데

단풍나무의 그것은 아직 여물지 못했고, 게다가 바람이 가만 있질 않는다.

 

 

♣ 감악산 단풍 - 공석진


선홍의 자태로 유혹하고

황금빛 정염이 샘늪을 덮치면

일엽관음이 부럽지 않다


벅차오는 숨을 고르며

빠져드는 남정은

점입비경에 숨이 멎는다


어차피 지고 말 운명이라도

온갖 욕정, 바람에 실어

세속 만물을 탐하리


빛 고운 화장으로 단장하여

정신 혼미한 오르가슴 느끼다가

나락으로 떨어져 해탈의 다리를 건너


격렬한 정사에 상한 몸

법당 앞 석탑에 기대어 앉아

옛 절정을 더듬는 잠을 청한다


탄식하는 목탁 소리 우울하여

이승의 고갯마루를 저물도록

알몸으로 배회하다가


허름한 종루 한구석에 안장되어

합장하는 스님 눈가에 이슬 고이면

감악은 조용히 눈을 감는다

 

 

♣ 청단풍 - 안재동


너는 너의 사랑법으로

나는 나의 사랑법으로

서로 혹은 홀로 사랑하였을지니


그건

너는 너만의 사랑으로

나는 나만의 사랑으로만

흘렀을지라, 어쩌면


네가 나의 사랑법으로

내가 너의 사랑법으로

서로 혹은 홀로 사랑하였을지라도


그건 어쩌면

너는 나의 사랑이

나는 너의 사랑이 진정 될 수가 없었을

너와 난


온 천지가 고혹하게 붉어가는

이 가을에도

연인들의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청단풍으로나 외로이

존재할 뿐인가?

 

 

단풍잎을 바라보며 - 강진규


누가 너를 잎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온통 다 살아버려 남은 것이라고는

해지고 해진 삶의 누더기, 빛의 무덤뿐인 걸


정성어린 수채화 한 컷

울음을 지고 바라볼 수 있는 이 시간

차마 말하려 함은 비워진 가슴의 상처


어디론가 두렵게 흘러가는 가슴

지고만 사랑이 조심스레 흔들고 올 때면

내 소망도 함께 황혼에 떨구어 버리려 한다


아픔의 자리

내 마음의 책갈피마다 스며드는,

스며들어 단풍잎이 되는 걸

누가 네 아픔의 자리를 메우고 갈까

하늘은 푸르러 더욱 비어 있는데

 

 

♣ 단풍 - 문효치

    

노오란 바람을 걸치고

파르르 떨고 있는 나무

가지 끝에서

한 덩이의 폭죽이 터진다.


한 점 연기도 없이

오직 불덩이로만

타오르는 나무.


일순에 개벽하는

하늘의 살점이

순수의 기둥에

단맛의 과길로 열린다


이윽고, 내 가슴의 무논에

첨벙첨벙 뛰어들어 안기는

낙과.


보석처럼 영근 씨앗이 되어

뛰어들어 안기는

오, 낙과.

 

 

♬ To Sir, With Love(선생님께 사랑을) - Lulu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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