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스크랩] 자두나무 꽃을 네게 보낸다

klgallery 2008. 4. 15. 10:45

 

♣ 2008년 4월7일 월요일 흐림


어제 ***모임 회장 아드님 상(喪)을 당했으니

오늘 오후 6시에 중앙성당에서 조문이 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너무 당황했다.

아직 20대 중반쯤인데다 그렇게 해맑았었는데….


외아들인 그는 어렸을 때 가슴 수술을 받아서

집에 혼자 두기도 그렇고, 돌아다니며 튼튼해지라고

육지부에 답사를 갈 때도 제 누이와 같이 함께 따라가

도시락(부인)에 반찬(아이들)까지 싸갖고 왔다고 웃곤 했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어른들하고도 스스럼없이 대하고

여행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담당했었는데….

오늘 아침부터 비는 제대로 오지 않는데,

2~3시가 넘도록 안개 속에 그 녀석의 미소가 어른거렸다.


빈소 상 위에 놓인 사진 속 그 녀석의 미소가 빛나는데

그 앞에 두건 쓰고 서 있는 제 아비는 차마 바로 못 보겠다.

동생이라도 있었으면 대신 상 앞에 세웠을 터이지만….

오랜만에 모인 일행들은 옛날을 회억(回憶)하고 나는 소주만 홀짝였다.


 

♧ 자두꽃 - 강수정


보름달에 이끌려 자두꽃밭 언저리에 닿았다

바람은 산기슭 어디에 잠들었는지 따라나서지 않고

시냇물 자주 몸 뒤척이며 흐른다

희멀건 달빛아래 부채춤 추는

흰나비 떼 꽃잎,


알몸에서 향내가 난다 손안에서 물커덩거린다


지난 꽃샘추위 붉은 울음, 푸른 울음,

꼭꼭 감춘 하얀 꽃잎

우레처럼 들끓던 꽃물 밀어 망울망울 꽃피운


먼 산 검은 이마 드러내고 눕자

견고한 길들 일제히 일어나

지금 막 허물 벗는 달빛 속으로 무수히 뛰어든다

산기슭 어디선가 잠자던 바람 푸르르 달려든다

놀란 자두꽃 깨어나 눈비비고

산 밑 마을 개 짖는 소리

후두둑 떨어져 날리는 꽃잎, 꽃잎, 꽃잎들


 

♧ 자두꽃빛에 대하여 - 나희덕


자두꽃빛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꽃은 열매의 외연일 뿐일까

열매가 맺힐 때까지만 유효한

그 후로는 잊혀지는


흰 꽃을 빌어

태어나는 붉은 열매

스스로를 찢고 나온 피투성이


자두꽃빛을 희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고요한 자궁 속 양수의 빛깔

젖빛 같기도 하고 흰빛 같기도 한,

자궁이 터지는 순간 붉게 물드는 강물과도 같은


비 내리는 봄날

자두꽃 만발한 산길을 따라 적천사에 오른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없다, 이미 구름처럼 흩어져버린 자두꽃

 

 

♧ 자두나무 당신 - 김언

 

당신과 내가 간편한 사이라서

헤어져도 좋은 간편한 사이라서

당신의 수첩에서 간편한 내 이름을 지우고

냉큼냉큼 잘도 받아먹은 씨앗들

당신의 씨앗들 모두 뱉아서

간편한 목소리로

너무 간편한 목소리로 내가

잘 가, 하고 부르면

당신은 뒤도 안 돌아보고

딱 한번 돌아보고

가서는 아니 오고

영영 아니 오는 당신에게

간편한 당신에게

간편한 목소리로

너무 간편한 목소리로 내가

자두, 하고 부르면

당신은 자두나무가 되어

불알 주렁주렁 달린 자두나무가 되어

우리 사이에 너무 간편해서 좋은 우리 사이에

씨알 굵은 당신의 목소리를 토해서

게워내서

더러워 더러워

내가 다시 자두, 하고 부르면

당신은 내가 아니라서

간편한 내가 아니라서 불편한 당신은

안개 자욱한 자두나무 숲이 되어

운다네 자두나무 자두나무

당신의 온 숲을 흔들어 운다네

 

 

♧ 흰자두꽃 - 문태준


손아귀에 힘이 차서 그 기운을 하얀 꽃으로 풀어놓은 자두나무 아래

못을 벗어나 서늘한 못을 되돌아보는 이름 모를 새의 가는 목처럼

몸을 벗어나 관으로 들어가는 몸을 들여다보는 식은 영혼처럼

자두나무의 하얀 자두꽃을 처량하게 바라보는 그 서글픈 나무 아래

곧 가고 없어 머무르는 것조차 없는 이 무정한 한낮에

나는 이 생애에서 딱 하번 굵은 손벼마디 같은 가족과

나의 손톱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 Neil Diamond - You Don't Bring Me Flowars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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