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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의 유산과 음악 환경의 변화
20세기 클래식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히 그가 남긴 족적이 그만큼 거대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가 부르주아 예술의 정점에 서서 프랑스 대혁명의 조짐을 예언한 작곡가였다면 베토벤은 부르주아 예술, 정신의 파탄을 예감한 작곡가였다. 그렇다면 카라얀은? 그는 분명히 푸르트벵글러나 브루노 발터 같은 예술가들이 남긴 그 어떤 유산보다 많은 유산을 남겼으며 20세기 클래식 음악계는 분명 카라얀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무엇보다 카라얀의 시대에 와서 고전 음악은 더 이상 예술이란 고전적인 이름으로만 존재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음악은 산업이 되었고, 예술가들은 그들의 내면 못지 않게 외면 또한 신경써야만 했고, 지휘자의 지휘봉을 잡은 손은 번번이 스튜디오 녹음 엔지니어들에 의해 제지당하게 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변화가 '카라얀'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된 일은 아니며, 그가 추진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앞서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는 20세기라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LP시대를 지나 CD를 맞이했고, 음원을 담는 새로운 매체들이 속속 개발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1980년 소니(Sony)의 사장 아키오 모리타는 카라얀에게 앞으로 디지털 레코드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미리 알렸다. 이를 받아들인 카라얀은 1980년 봄 베를린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처음 디지털로 녹음하며 누구보다도 먼저 디지털 음반 산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CD 연주 시간이 대략 74분으로 결정된데는 카라얀의 의견이(그는 CD의 수록시간을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을 표준으로 삼고자 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베토벤 교향곡 9번이었을까? 이 곡은 잘 알다시피 푸르트벵글러의 연주가 절대명연으로 알려져 있다. 푸르트벵글러는 본격적인 LP 시대 이전의 인물이었다)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로써 카라얀은 CD 시대의 선구자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베를린 필의 종신 지휘자로 계약을 맺은 카라얀은 단원들에게 막대한 수익금을 안겨준 대신 그와 연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제왕으로 군림하고자 했다. 이에 마찰을 빚은 많은 음악가들이 그의 곁을 떠났고, 그 역시 때로 상처받고, 때로 상처주며 그들을 등졌다. 베를린 필과의 관계 역시 그랬다. 카라얀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여성 클라리넷 주자 자비네 마이어를 베를린 필 단원으로 추천했으나 단원들이 이를 거부하며 이들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1984년 마침내 카라얀과 오케스트라의 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카라얀의 재정적인 욕심까지 거론되어 이들 사이의 분쟁은 더욱 심화되어갔다.
결국 카라얀은 건강상의 이유와 계약상의 이유를 들어 베를린 필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었다. 생전에 이미 1992년까지 자신의 계획을 세워놓았는가 하면 죽음 직전에도 소니의 매니저를 맡았던 카라얀이지만 그리고 1989년 잘츠부르크 근교의 아니프에 위치한 자신의 별장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그날 카라얀은 7월 27일 잘츠부르크 대성당 광장에서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개회 연주로 거행될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를 오전동안 연습한 뒤였다고 한다. 20세기 클래식 음악계의 황제는 지금 아니프 마을 오르트스프리베호프 묘지에 묻혔다.
첼리비다케의 사후 그의 음반들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생전에 녹음된 음악을 그토록 혐오했던 첼리비다케였지만 그의 죽음 뒤에 남겨진 것은 그의 표현을 빌자면 깡통에 담겨 일반에게 유통되었다. 푸르트벵글러와 첼리비다케가 고전 음악의 내면적 전통에도 충실한 구시대의 음악가들이었다면 카라얀은 시대의 흐름을 따랐지만 음악적 전통이란 점에서는 나름대로 충실했던 음악가였다. 어쩌면 첼리비다케는 그가 살아 생전에 심취했었다는 불교 철학에 입각해서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는, 기록의 예술이 아니라 순간(찰나)의 예술인 음악의 본질에 가장 충실했던 음악가였을 것이다. 이제 와서 카라얀의 행위를 비난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은 음반과 영화, 비디오 등을 통해 불멸을 꿈꾸었던 카라얀 뿐만 아니라 그런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첼리비다케도 기억한다. 인간은 기억함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카라얀의 욕심이 한낱 부질없이 느껴지는 것, 동시에 그의 욕심이 이해되는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제 푸르트벵글러도, 카라얀도, 첼리비다케도, 게오르그 솔티도 떠났다. 신들의 시대에 황혼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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