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스크랩] 따끈따끈 양전형 시집에서

klgallery 2007. 5. 31. 13:01

 

* 콩제비꽃

 

오늘 시집 한 권을 받았다.
내가 좋아 읽는 우리 학교 동문이 보내온 새 시집
술 한 잔 하는 것은 시간이 없어 미뤄놓은 상태지만
어떻게 썼을 시들인데 그냥 놔둘 수 있겠나.

 

술 좋아하다 쓰러졌던 동료를 위문한 뒤
돌아오다 저녁 먹으며 한 잔 하고 와서
일년도 더 걸려 썼을 시집 한 권을
한 시간도 안 걸려 통독하고 말았다.

 

그 중에서 꽃시는 나중에 올리려 아껴두고
시집 제목인 '도두봉 달꽃'을 포함해 몇 편 내 보낸다.
오늘 꽃은 여기저기서 새로 골랐다.
시인의 더욱 왕성한 활동을 기대해본다.


 

* 벌노랑이

 

♧ 나무와 새

 

나무는
세상 모든 걸 알고 싶어
새를 낳는다
어느 산골 어느 바닷가
어떤 사람을
품에 돌아온 새가 이야기한다
궁금했던 미지의 세계들
다 알아듣는 나무는
-- 이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이로군
꽃으로 열매로 가만가만 말한다

 

 

 * 솜방망이


♧ 슬프다

 

아끼던 후배 하나 죽었다
미련 곰탱이, 마흔넷
일하다 쓰러졌는데 바로 죽었다
사람 넉넉한 그의 모습
연달아 눈에 밟혀 와 눈물이 난다
세상사 아무 혐의가 없는 그들
이렇게 허무하게 데려가다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저승부(府)는 각성하라!
공감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행정을 하라!
예고된 집행을 하라!
슬프다

 

 

* 애기나리

 

♧ 만남과 이별의 공식

 

만남은 '플러스'요
이별은 '마이너스'다
만남에 이별을 더하면 '제로'요
만남에 이별을 빼면 '둘'이다
그대여,
너 하나 나 하나
어디서든 늘 둘이어서
우리의 만남에 이별은 더하지 말자고
우리의 만남에 이별은 영원히 빼자고
했는데
만남과 이별은 서로 닿을 수밖에 없구나

 

 

* 윤판나물아재비

 

♧ 도두봉 달꽃

 

일찍이 제 몸 둘이었다면
하나는 분명 나를 주겠다는 여자
파도 부서지는 방파제에 마주 앉아
내 눈에 뜬 별들 헤아리다
고개 숙이고 어깨 흔들며
눈물처럼 방울지는 목소리,
하나뿐인 몸이라도
지구가 파계하는 날
완전히 나를 주겠다는 여자
마음밭에 달 하나 심어
뜨고 지며 뜨고 지며 기다리겠다는
보름달 치렁치렁 달꽃 같은 여자,
핏덩이 억새꽃 가붓해진 중가을 밤
도두봉 민머리에 활활 핀 여자

 

 

* 등심붓꽃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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