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일기- 이해인
여름엔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 아래
나를 빨아 널고 싶다
여름엔
햇볕에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
땀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뜨겁게 살고싶다
여름엔
꼭 한번 바다에
가고싶다
바다에 가서
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온
섬 이야기를 듣고 싶다
침묵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그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오고 싶다
여름일기 2 --이해인
오늘 아침
내 마음의 밭에는
밤새 봉오리로 맺혀 있던
한 마디의
시어가
노란 쑥갓꽃으로 피어 있습니다.
비와 햇볕이 동시에 고마워서
자주 하늘을 보는 여름
잘 익은 수박을 쪼개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초록의 기쁨이여
우리가 사는 지구 위에도
수박처럼 둥글고 시원한
자유와 평화 가득한 여름이면 좋겠습니다.
오늘 아침 나는 다림질한 흰 옷에
물을 뿌리며 생각합니다.
우울과 나태로 풀기 없던 나의 일상을
희망으로 풀먹여 다림질해야겠음을
지금쯤 바삐 일터로 향하는
나의
이웃을 위해
한 송이의 기도를
꽃피워야겠음을--
쇼팽의 피아노곡 '프렐류드 E단조 작품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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