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몰랐을까 - 천양희 -
사과를 깎다 생각한다 사과! 나는 왜 몰랐을까 사과 한 알 깎았을 뿐인데 사과 한 알의 단 맛에 물든 내가 잘못한 일 생각 나 그걸 깜빡 놓쳤다 그 사과 한 번을 젊어서는 풋사과처럼 깍듯이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붉은 것이 다 열정인 줄 알았다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가 붉어지는 내 미안 붉은 사과 한 알보다 더 붉다는 것을 다시는 그런 일 없어야겠다
* 안녕하세요? 요즘은 사과를 먹을 적마다 이 시가 생각이 납니다. 5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만큼 참 빨리도 지나가버리고 말았네요. 요즘은 이 메일 답을 천천히 하고 있는데 날짜를 보니 글세... 올해가 아니라 2010년에 보낸 글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을 보고 새삼 세월의빠름을 절감하였습니다. 요즘 수녀원 뜰에는 패랭이꽃, 찔레꽃이 피었고 6월의 숲에서는 아카시아 향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 오늘은 우리가 심어서 거둔 채소를 반찬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우리 수녀원 텃밭의 이름들이 재미있는데 '탐나네,싱싱이네,풍년이네,쑥쑥이네,당근이네, 하늘이네,보라네,아삭이네,비아네, 깍지네,무럭이네 등. 주인의 소임상 자주 돌보아주지 못하는 밭은 '알아크네'라고 하였답니다. 저도 곧 무지개네,색동이네로 이름을 붙여 밭을 하나 받으려고 합니다.
* 성분도 은헤의집 작업실은 그대로 두고 먼저 글방이 있었던 곳(잔디밭이 보이는)에 아담한 민들레 전시실을 하나 차렸으니 다음에 방문하시면 보셔도 됩니다. 나무도 잘 보이고 새소리도 잘 들리는 그 방이 좋아 자주 앉아있다 내려오곤 한답니다. 영구적인 것이 될지 임시일지는 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우선은 제가 (아직 살아서) 이것 저것 정리를 할 수 있음이 새삼 기쁘고 행복한 마음입니다. 수도공동체의 배려에도 고마운 마음 가득하구요.
*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좋으니 저도 좋지만 심부름이 더 많아져서 바쁘기도 하네요. 서점에서의 사인회 대신 다른 방식으로 이벤트(북컨서트)를 6월 11일과 14일에 하는데 뜻깊은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두 가지 행사를 위하여 할 수 없이^^ 며칠 간의 휴가를 내기로 하였어요. 이번에 가능하면 어머니의 묘소에도 한 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 메일로 우편으로 보내오는 편지의 내용들도 다양하고 감동적인 것들이 많아서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이지요. 책의 내용을 자신의 삶에 비추어 돌아보고 재해석하는 모습들도 아름답게 여겨지곤 합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수녀님들은 다 완벽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자신의 허물과 부족함을 고백하는 솔직함에 친근미, 인간미가 느껴져 많은 위로가 되었다는 고백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좀 더 맑고 선하게 살겠다는 다짐과 함께! 아무튼 요즘은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이 부쩍 가톨릭으로 입교하는 분들이 많아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 올 해는 우리가 80주년을 지내는 해라서 5월10일 <시와 음악이 있는 코이노니아>도 본원 성당에서 진행했지요. 저의 시로 만든 노래 '사랑한다는 말은, 함께 걷는 길 위에서, 풀꽃의 노래, 민들레의 영토'를 우리 예비수녀들의 청아한 합창으로 들으니 어찌나 감동스럽던지요. 음악회 중간에 제가 잠시 '짧은 시 긴 여운'이란 제목으로 함께 시낭송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 5월 마지막 주에는 연길서 온 선배수녀님들이 처음으로 공동체생활을 시작했던 청주사천동과 안동(목성동성당)으로 본원식구들끼리 역사순례도 다녀왔지요. 지난번 역사순례 양양에는 제가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에 이번에는 성라자로 마을에서 주관하는 <그대있음에> 자선음악회(5.29 예술의 전당)에 참석 후 즉시 청주로 가서 합류하였답니다. 버스 안에서 소감나누기를 하였는데 제가 형제적 친교를 말하며 인용한 글이 다들 좋다고 하여 한 번 더 음미해 봅니다. '하느님을 찾았으나 뵈올 길 없고 영혼을 찾았으나 만날 길 없어 형제를 찾았더니 셋 다 만났네!' 출처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어느 성인이나 교부들의 가르침에 나온 말이 아닌가 합니다.
* 책을 읽는 속도가 전과 같진 않지만 그래도 늘 좋은 책들이 곁에 있어 행복합니다. "좋은 책에서는 좋은 향기가 나고 좋은 책을 읽은 사람에게도 그 향기가 스며들어 옆 사람까지도 행복하게 한다. 책에서 마주친 어느 한 구절로 내 삶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늘 새롭게 기대하며 살자"고 언젠가 이야기 한 일이 있습니다. 요즘은 소설이나 자기계발서가 많이 읽힌다고 하지만 저의 경우는 그래도 시집들을 많이 찾아 읽고 있는 편입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가 해외에서도 사랑을 많이 받으니 저도 축하인사를 작가에게 메일로 보낸적이 있습니다. 교보문고에서 30년간 집계한 베스트셀러 작가 목록에 제가 들어가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아마도 8월 말에는 공지영 작가와 공동으로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질지도 모르겠습니다. 25명 중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이를 교보가 독자들에게 설문조사하여 뽑은 10인을 <대한민국이 읽은 대작가>라는 타이틀로 표현한 것 자체가 저한테는 안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30년 간 받은 독자들의 사랑에 대해서는 참 고마운 마음 가득합니다.
* 종종 초청이 와도 해외는 아직 못 가지만 국내의 특강은 상황을 보고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하기로 하였습니다. 암센터에는 7월 중순에 갈 것으로 예약이 되어있지요. 우리집 암환자 수녀들의 찔레꽃 모임에는 새 회원이 늘어나면 안되는데 이번에 또 한 분이 늘었습니다. 얼마 전 금경축 행사를 지낸 원로 수녀님이라 마음이 아프네요.
* 요즘은 어느때보다 환희심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록의 계절에 초록빛 인사를 전하오니, 여러분 모두 은혜의 숲길에서 한 그루 푸른나무가 되시길 바랍니다. 다시 말하지만 마음엔 평화 얼굴엔 미소 가득한 새 날 새 삶 되소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6월의 장미 -이해인-
하늘은 고요하고 사랑의 이름으로 땅은 향기롭고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마음은 뜨겁다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6월의 장미가 누구를 한번씩 용서할 적마다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사소한 일로 6월의 넝쿨장미들이 우울할 적마다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밝아져라" 자꾸만 말을 건네 옵니다 "맑아져라" 사랑하는 이여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삶의 길에서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가장 가까운 이들이 내내 행복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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