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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집(펌)

klgallery 2014. 9. 15. 13:51

긍정적인 밥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박
호박 한 덩이 머리맡에 두고 바라다보면

방은 추워도 마음은 따뜻하네

최선을 다해 딴딴해진 호박

속 가득 차 있을 씨앗

가족사진 한장 찍어 본 적 없는 나(我)라

소박네 마을 벌소리 붕붕

후드득 빗소리 들려

품으로 호박을 꼬옥 안아 본 밤

호박은 방안 가득 넝쿨을 뻗고

코끼리 귀만한 잎사귀 꺼끌꺼끌

호박 한 덩이 속에 든 호박들

그새 한 마을 이루더니


봄이라고 호박이 썩네

흰곰팡이 피우며

최선을 다해 물컹쿨컹 썩어 들어가네

비도 내려 흙내 그리워 못 견디겠다고

썩는 내로 먼저 문을 열고 걸어나가네

 

빨래집게
옷을 집고 있지 않을 때

내 몸을 매달아본다

몸뚱이가 되어 허공을 입고

허공을 걷던 옷가지들

떨어지던 물방울의 시간

입아귀 근력이 떨어진

입 다무는 일이 일생인

나를 물고 있는 허공

물 수 없는

시간을 깨물다

철사 근육이 삭아 끊어지면

툭, 그 한마디 내지르고

훑어지고 말

온몸이 입인


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샐러리맨 예찬
쥐가 꼬리로 계란을 끌고 갑니다 쥐가 꼬리로 병 속에 든 들기름을 빨아먹습니다 쥐가 꼬리로 유격 훈련처럼 전깃줄에 매달려 횡단합니다 쥐가 꼬리의 탄력으로 점프하여 선반에 뛰어 오릅니다 쥐가 꼬리로 해안가 조개에 물려 아픔을 끌고 산에 올라가 조갯살을 먹습니다 쥐가 물동이에 빠져 수영할 힘이 떨어지면 꼬리로 바닥을 짚고 견딥니다 30분 60분 90분 - 쥐독합니다 그래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은 눈동자가 산초 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


 

오래된 잠버릇                                         

파리는 내가 덮고 자는 공간을 깔고 잔다

날개 휘젓던 공간밖에 믿을게 없어

날개의 길밖에 믿을 게 없어

천장에 매달려 잠자는 파리는 슬프다

추락하다 잠이 깨면 곧 비행할 포즈

헬리콥터처럼 활주로 없이 이착륙하는 파리

구더기를 본 사람은 알리라

왜 파리가 높은 곳에서 잠드는가를

저 사내는 내가 덮고 자는 공간을 깔고 잔다

지구의 밑 부분에 집이 매달리는 시간

나는 바닥에 엎드려 자는데

저 사내는 천장에 등을 붙이고 잔다

발 붙이고 사는 땅밖에 믿을 게 없다는 듯

중력밖에 믿을 게 없다는 듯

천장에 등을 붙이고 잠드는 저 사내는 슬프다

어떤 날은 저 사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늦게 거꾸로 쭈그려 앉아 전화를 걸기도 한다

저 사내처럼 외로운 사람이 어디 또 있나 보다

만찬(晩餐)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달의 눈물
금호동 산동네의 밤이 깊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사람들이

노루들의 잠자리나 되었을 법한

산속으로 머리를 눕히러 찾아드는 곳

힘들여 올라왔던 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몸 더럽히고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숨찬 산중턱에 살고 있는 나보다

더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많아

아직 잠 못 이룬 사람들 많아

하수도 물소리

골목길 따라 흘러내린다

전봇대 굵기만한 도랑을 덮은

쇠철망 틈새로 들려오는

하수도 물소리

누가 때늦은 목욕을 했는지

제법 소리가 커지기도 하며

산동네의 삶처럼 경사가 져

썩은내 풍길 새도 없이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또 비린내가 좀 나면 어떠랴

그게 사람 살아가는 증표일진대

이곳 삶의 동맥처럼

새벽까지 끊기지 않고

흐르는

하수도 물소리

물소리 듣는 것은 즐겁다

쇠철망 앞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물면

달의 눈물

하수도 물소리에 가슴이 젖는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세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커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던 이삿집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짜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짜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짜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라면을 먹는 아침                                     
프로 가난자인 거지 앞에서

나의 가난을 자랑하기엔

나의 가난이 너무 가난하지만

신문지를 쫙 펼쳐놓고

더 많은 국물을 위해 소금을 풀어

라면을 먹는 아침

반찬이 노란 단무지 하나인 것 같지만

나의 식탁은 풍성하다

두루치기 일색인 정치면의 양념으로

팔팔 끓인 스포츠면 찌개에

밑반찬으로

씀바귀 맛 나는 상계동 철거 주민들의

눈물로 즉석 동치미를 담그면

매운 고추가 동동 뜬다 거기다가

똥누고 나니까 날아갈 것 같다는

변비약 아락실 아침 광고하는 여자의

젓가락처럼 쫙 벌린 허벅지를

자린고비로 쳐다보기까지 하면

나의 반찬은 너무 풍성해

신문지을 깔고 라면을 먹는 아침이면

매일 상다리가 부러진다.

                                         

함민복

1962년 충북 청주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88년 『세계의문학』에 시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 『우울氏의 一日』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등

시집 한 권에 '삼백원'

문학을 하는 벗들에게 ‘왜 하필 문학이라는 걸 하느냐’고 물어보면, 열 명 중 아홉 명 정도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은 다른 무엇을 탄압하지 않는다”고. 나 역시 그렇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문학 중에서도 ‘리얼리즘’의 진정한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사실적 묘사일까, 아니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섬세한 붓터치일까. 나는 리얼리즘의 힘은 ‘타자에 대한 긍정’이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밥


함민복이라는 시인이 있다. 그의 시들은 대체로 슬프다. 읽고 나면 눈물이 절로 흐르는 시들을 아주 잘 쓰는 몇 안되는 ‘시쟁이’ 중의 한 명이다. 그러나 함민복의 시편들이 가지고 있는 ‘슬픔의 미학’의 근저에는 바로 ‘긍정’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시들은 우리네 서민들의 팍팍한 삶들을 조명하고 있지만, 결코 어둡거나 절망스럽지 않다. 오히려 함민복은 우리 삶의 눈물과 고통과 피와 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따뜻한 초월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의 시 ‘긍정적인 밥’을 차분히 들여다보자.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긍정적인 밥’, 전문.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적어 내려간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솔직히 스스로에게 절망했었다. 가난한 작가들의 삶과 심경을 이토록 절실하게 표현한 작품을 본 적이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아주 따뜻하다. 그러나 함민복의 ‘따뜻한 슬픔’은 정호승의 ‘슬픔의 힘’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정호승의 슬픔이 도회지 인텔리겐차의 그것을 대변한다면, 그리고 그 슬픔을 진술하는 것에 머물러 있다면, 함민복의 슬픔은 긍정적 슬픔이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고등학교 무렵 문학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우리에겐 정호승, 안도현, 곽재구라는 스승들이 있었다. 이들이 우리에게 직접 시를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시를 쓰는 법’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얻었다. 정호승의 ‘슬픔’과 안도현의 ‘녹두장군 눈매’와 곽재구의 ‘우리말’은 문학이라는 것이, 아니 시라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울림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그 후에 만난 이들이 함민복과 이원규, 그리고 이윤학이다. 함민복의 ‘긍정의 힘’과 이원규의 ‘빨치산의 눈’, 그리고 이윤학의 ‘물가 버드나무같은 튼실함’이 나에게 오늘을 버티게 하는 ‘지난날의 꿈’이다. 사실 서울에서 집 한 채 없이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나는 늘 불빛들을 바라본다. 밤하늘의 별보다도 많은 그 불빛들 중, 나의 불빛은 어디에서 빛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좋아하는 노래 중에 ‘동지들 앞에 나의 삶은’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를 입술에 담고 세상을 바라보면 순간의 절망은 다시 희망으로 치환된다. 그리고는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 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전문.


이 작품은 분명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러나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함민복이 얼마나 따뜻한 시선을 가진 시인인가를 알게 해준다. 함민복의 시편들이 지니고 있는 궁극의 힘은 바로 ‘극복’이다.

둘러보면 우리보다 잘난 사람들만 눈에 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시선을 넓혀보면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음을 알 수 있다. 종부세를 내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다가도 지하철역 입구에 웅크리고 있는 노숙인의 모습을 본다. 서울역 광장 앞의 거대한 대우빌딩에 주눅들었다가도 한 가치의 담배를 구하는 걸인들의 떨리는 손을 본다. 우리는 아직 완전히 절망스러운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항상 ‘위쪽’만 쳐다본다. 그러니 습관적인 어깨통증에 시달린다.

시선을 아래로 두고 다니면 그럴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언론에서도 부추긴다. 아내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방송프로그램은 주말 저녁 KBS에서 방영하는 ‘1% 어쩌구’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방송 노조는 뭐 하는지 모르겠다. 양극화를 극렬하게 부추기는 그 따위 프로그램을 왜 그냥 두냐는 말이다.


얘기가 딴 길로 샜다. 여하튼 함민복의 시편들은 읽는 이들에게 ‘따뜻한 슬픔’과 ‘긍정의 힘’을 얻게 해준다. “슬픔도 힘이 된다”는 말이 있다. 추운 겨울, 함민복의 시편들을 품고, 홍합국물에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행복하다. 그리고 아직 희망적이다. 저 어둡고 축축했던 1980년대 후반, 시인 기형도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고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절망의 골목이 아닌 희망과 긍정의 거리에서 우리는 만나야 한다. 지난 2002년의 어느 겨울날, 광화문에 모였던 이들이 그러했듯이.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눈물은 왜 짠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