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노의 아베마리아 / 프래시드 도밍고
“하느님 뜻 전하는 어머니따라 끊임없이 기도하고 회개해야”
교회 역사 안에서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모친이요, 교회의 어머니로서 당신 아들의 이름으로 하느님 뜻을 알리는 초자연적인 현현(顯現) 현상을 여러 차례 보여왔다.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축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축일로 꼽히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모 발현과 그 메시지들을 소개한다.
그간 교회의 정식 인가를 받은 성모 발현은 1858년 2월 11일~ 7월 16일 프랑스 루르드에서 보인 18차례의 발현을 비롯 멕시코 과달루페, 프랑스 라 살레트, 아일랜드 노크, 포르투갈 파티마, 벨기에 보랭과 바뇌 등 총 일곱 차례로 꼽힌다.
이 같은 발현을 통해 드러난 성모 마리아의 주된 메시지는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 그리고 어려울 때 자신을 찾아 의탁할 것을 간청하는 모습이었다.
■ 과달루페(Guadalupe)
“나는 평생 동정이며, 하느님의 어머니임이 알려지기를 원하고 어려울 때에 정성을 다해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자비를 드러내도록 이 자리에 성당을 짓기를 바란다.”
1531년 12월 9일 멕시코 원주민 후안 디에고(Juan Diego)에게 성모 마리아는 4차례에 걸쳐 나타나 이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원주민들이 신전을 세웠던 테페약언덕에서 성모 마리아는 인디언 피부의 용모를 보였다.
당시 멕시코는 스페인에 의해 정복된 지 10년 되는 해를 맞고 있었고 원주민들이 폭압과 폭정에 시달리고 있던 상황. 이 성모 발현은 이후 8년 만에 당시 800만 인구 중 700만 명이 영세, 입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 파리(Paris)
성모는 1830년 11월 27일 파리의 뤼 뒤 박 소재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지원자였던 카타리나에게 나타나 지구 위에 서서 두 팔을 지구 위로 활짝 펼친 형상을 드러냈다. 그 주변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때 자신이 나타난 모습대로 메달을 만들어 지니는 사람은 큰 은총을 받을 것이라 했는데, 그 후 메달 착용이 늘어나면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 ‘기적의 메달’이라고 불리게 됐다.
이 발현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신심을 고조시켰고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 라 살레트(La Salette)
성모 마리아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죄인들의 화해자’라고 밝힌 발현이다. 과학만능주의, 자유주의, 무신론의 풍조 속에 전통적 신앙과 성서 가르침이 위기를 맞던 19세기 후반, 1846년 9월 19일 프랑스 가르가스산 기슭의 라 살레트에서 11세의 막시망 지로와 15세의 멜라니 마티유 칼바에게 나타난 성모는 인류가 회개하여 하느님과 화해하면 축복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받으리라고 경고했다.
발현 당시 사람들은 이 메시지를 무시했으나 보불 전쟁과 대흉년으로 100만 명 이상이 굶어죽는 재앙이 닥쳐오자 회개하는 순례객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 루르드(Lourdes)
성모는 1858년 2월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루르드 동굴에서 14세 소녀 베르나 데트에게 발현했다.
이때는 교황 비오 9세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 교리를 반포한 지 4년째 되는 해였고 자유주의 사상의 팽배로 지식층들이 교회 가르침을 의심하고 교회를 떠나는 경향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원죄없는 잉태된 자’로 본인을 소개했던 성모는 기도와 보속 행위, 회개를 촉구했으며 많은 묵주기도를 권했다. 이후 루르드에는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방문하고 있으며 수많은 기적이 보고되었다.
■ 퐁멩(Pontmain)
1871년 1월 17일 프랑스 부르타뉴와 노르망디 접경 지역 라발 교구 작은 마을 퐁멩에 12세 외젠느와 11세 요셉 바르베데트에게 성모가 자신을 드러냈다. 그리스도가 못 박힌 붉은 십자가를 양손에 잡은 모습이었고 검은 면사포에 허리띠 없는 짙은 하늘색 바탕에 별들이 그려진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이때 성모 마리아는 ‘얘들아 언제나 기도하여라. 내 아들은 너희의 기도를 들어 허락하신다’는 글씨를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러시아 군대가 프랑스 전역을 침략, 위태로운 상황을 맞던 처지에서 발현 후 10여일 만인 1월 28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자 많은 이들이 발현한 성모를 ‘희망의 여인’으로 부르며 순례를 했다고 한다.
■ 노크(Knock)
19세기 후반 아일랜드는 영국의 억압과 대기근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1879년 8월 21일 아일랜드 노크에서 마을 주민 15명에게 나타난 성모는 흰옷을 입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성 요셉과 사도 요한과 함께였다.
제대와 어린양 주위로 천사들이 돌고 있는 모양의 발현이었다. 특별하게 말씀으로 전한 메시지는 없었으나 미사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다.
■ 파티마(Fatima)
파티마의 성모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6차례에 걸쳐 포르투갈 레이리아 교구 작은 마을 파티마에서 10세의 루치아, 7세의 히야친타, 9세의 프란치스코에게 발현했다.
‘로사리오의 여왕’이라고 자신을 밝힌 성모는 세계 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칠 것과 죄인을 위해 희생할 것, 그리고 성모성심을 공경할 것을 요청하였고 특히 러시아를 당신 성심에게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 영성체 할 것을 당부했다. 또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 보속을 통해서만 세계 평화와 러시아의 회개 및 교회의 안정 평온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 보랭(Beauraing)
1932년 11월 29일부터 1933년 1월 3일 사이, 벨기에 남부 지역 보랭에서 9~15세 다섯 아이들에게 33회에 걸쳐 나타났다. 흰옷에 황금관을 쓰고 양손을 들어 티없는 황금빛 성심을 드러내 보인 성모는 자신을 ‘원죄없이 잉태된 티없는 동정녀, 하느님의 어머니요 천상 여왕’ 으로 전하고 끊임없는 희생과 기도 및 죄인들의 회개를 청했다. 이후, 공산주의 영향으로 교회를 떠났던 많은 신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왔다. 발현 첫해의 순례자가 200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병의 치유와 영적 치유(회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 바뇌(Banneux)
바뇌의 성모 | |||
1933년 벨기에 바뇌에서 비신자였던 12세 소녀 마리에트에게 발현, ‘가난한 자의 동정녀’라고 자신을 칭했다. 루르드 발현 때처럼 흰 옷에 푸른 허리 띠를 두르고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숙인채 합장하고 오른팔에 묵주를 늘어뜨린 모습이었다. 이때 성모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러 왔다고 밝히고 기도를 많이 바칠 것을 요청했다. 그후 수많은 성당이 바뇌의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됐다.
성모님의 발현
1846년 9월 19일, 성모칠고 축일전날, 11세의 소년 막시민 지로드와 15세의 소녀 메라니 마튜는 프랑스 남부 라 살레뜨라는 마을 앞에 있는 산 기슭에서 소를 치고 있었다. 막시민가 메라니가 맨 처음 본 것은 눈이 부시게 광채가 나는 공 모양의 물체였다. 놀라서 쳐다보고 있으려니까 그 공 모양의 물체가 열리면서 한 여인이 울고 있었다. 두 어린이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메라니는 막대기를 들고 있다가 얼떨결에 땅에 떨어뜨렸다. 그랬더니 막시민은 "그걸 짚고 있어, 여차하면 후려치게"라고 말했다.
이 때 여인은 몸을 일으켜 서서 팔짱을 끼고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아 조금도 두려워 말고 가까이 오너라. 나는 너희들에게 중요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어린이들은 작은 시내를 건너 여인의 앞으로 갔다. 여인은 두 어린이의 사이에 섰다. 비록 눈에 눈물이 가득했지만 여인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여인은 장미술이 달린 망토를 입고 있었다. 가느다란 목걸이에 십자가가 달려 있었고 흰 면사포를 쓴 머리 위에는 가지각색의 장미로 꾸며진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여인은 어찌나 아름답고 빛이 찬란한지, 어린이들은 겨우 쳐다보았다. 그들은 후에 그 여인의 아름다움에 비길만한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인은 이 세상의 어떤 음악보다도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말하는 동안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만일 나의 백성이 순명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 아들의 손을 더 이상 잡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손은 너무나 강하고 너무나 무겁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이다. 나는 얼마나 오랫 동안이나 너희들을 위해 고통을 받아야 한단 말이냐? 나의 아들이 너희들은 버리지 않게 위해서 나는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너희들은 그 점에 대해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는구나. 너희들이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내가 너희들을 위해 당하는 괴로움의100분의 1도 기워갚지는 못할 것이다. 성모님께서 계속 말씀하시길 사람들이 주일을 거룩히 지내지 않음과 당시 아들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이 당신 아들의 팔을 그토록 무겁게 하는 여러 가지 죄중에 일부임을 특히 지적 하셨으며, 재앙이 세상에 찾아오는 것은 인류가 저지른 죄의 결과라는 사실도 분명히 하셨다.
바뇌의 성모
1. 발현 배경과 시기
유럽의 작은 나라 벨기에의 1월은 대단히 추운 계절이다. 천주교회가 정식 인정한 성모님의 발현지인 '바뇌' 또한 나자렛과 같은 매우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조그만 마을일 뿐이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는 가" 라고 한 것처럼 이렇듯 작고 천한 마을 바뇌에서 성모님은 1933년 1월 15일 가난하고 천한 마리아 백호에게
발현 하신 것이다.
보랭에서 성모님의 발현이 끝난지 12일 만 이었다. 또한 1월 12일은 루르드 성모 발현 75주년 기념일로 많은 순례단이 루르드를 향하여 설레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거룩한 시기에 발현 하신 것이다.
2. 나자렛 마리아와 마리아 벡호
성모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마다 당신을 가장 많이 닮은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중대한 임무를 맡기신다. 마리아 벡호는 매우 가난한 집의 11남매 중 맏이로써 저녁 7시 어두운 밤에 남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벨기에는 4시에 어두워 지기 시작함)
또한 그는 거짓말 할 줄 모르는 매우 솔직하고 단순한 성격으로 정결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겸손하고 용기 또한 나자렛 마리아와 비슷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성모님은 매우 솔직하고 정결한 마음을 지닌 마리아 벡호 에게 발현 하신 것이다.
3. 바뇌의 성모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
무엇보다도 가장 큰 특징은 '가난한 자들의 동정녀' 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신 것처럼 병든자와 가난한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러 오신 어머니다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바뇌의 성모님은 발현 하신 모습부터 매우 소박하고 겸손한 많은 자녀를 둔 어머니의 모습이다.
성모 마리아는 대단히 젊고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미소를 띄며 친절하게 벡호에게 나타나셨다. 그리스도의 사랑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친절도 있다. 벡호 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은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바라보며 돌보듯 양손을 벌려 벡호를 바라보고 뒷걸음질 쳐가며 어머니답게 인격존중하며 샘물로 인도하셨다.
부랑아와 같은 매우 보잘 것 없는 아이를 존중하고 그에게 존경심을 드러내는 사랑많으신 어머니, 가난한 자의 동정녀이며 병든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러 오신 바뇌의 성모님께 고통받는 많은 이들은 영원히 위안을 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뇌에 발현하신 마리아는 늘 기도하는 모습으로 발현하시고 벡호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이로써 냉담중이던 마리아 벡호는 묵주를 찾아 기도를 드리고 성당에도 다시 나가 교리를 배우고 첫 영성체를 받았다. 마리아는 하느님과 멀어진 아이를 예수님께 인도하신 것이다.
1933년 이래 오늘에 이르기 까지 벨기에 바뇌의 소성당에는 성모님께서 마리아 벡호에게 말씀하신 '병든 이들을 위하여 보존되어 온 샘물'이 마르지 않고 솟아나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완케되는 기적이 매일 매일 기적 처럼 일어나고 있다.
4. 바뇌의 성모 마리아의 가르침
바뇌에 발현하신 성모님은 무엇을 가르치시는가? 마리아는 늘 기도하는 사람으로 발현하셨다. 8번 발현하신 중에 5섯번을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시므로 기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다.
또한 작은 성당을 원한다고 하심으로 성모님은 예수님을 중심해서 말씀하심을 알 수 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아이에게 부드럽고 친절하게 가르치고 그의 인격을 존중함으로 누구든지 하느님 앞에 가난한 이들을 업신 여기지 않도록 하셨다.
마리아벡호는 가난한 집의 11남매 중 맏이이며 지금도 수도자나 동정녀가 아닌 많은 자녀를 둔 어머니이다. 그는 여러가지 고통 중에도 순례객 들을 위하여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바뇌의 성모님은 마리아 벡호를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어머니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서는 마리아수녀회가 바뇌의 성모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으며, 바뇌의 성모님을 본받아 마리아수녀회 사도직의 목적은 가난한 이들의 현실적인 의식주 뿐 아니라 그들의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그들을 인도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 교황 승인 - 현지 대성당 관계자 10월13일 교황 주례 희망
1917년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 성모발현을 목격한 목동 3명 중 2명이 곧 복자품에 오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당시 성모 발현을 목격한 히야친타 마르토(Jacinta Marto, 1910∼1920)와 프란치스코 마르토(Francisco Marto, 1908∼1919)에 대한 시복을 승인하고 이를 지난달 28일 공식 발표했다.
시복식 장소와 날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파티마 대성당의 관계자들은 오는 10월13일(파티마 성모 마지막 발현 기념일) 교황이 직접 현지를 방문해 시복식을 주례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
양치기였던 세 어린이들은 1917년 5월13일부터 10월13일까지 매 13일 6회에 걸쳐 발현한 성모를 직접 보고 그 메시지를 들었다. 당시 성모 발현이 거듭되자 파티마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으며, 성모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약속한 10월13일에는 태양이 수직으로 떨어지며 10여분간 갖가지 빛을 발하는 ‘태양의 기적’을 7만명의 군중이 목격했다.
파티마 성모는 세 어린이들을 통해 ▲ 속죄하고 묵주의 기도를 자주 바칠 것 ▲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와 고행을 바칠 것 등을 당부했다. 성모는 이같은 회개와 희생은 많은 영혼을 구하는 것은 물론 러시아의 회개와 세계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남매인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는 그후 감기가 악성폐렴으로 악화돼 세상을 떠났는데 이들의 죽음은 성모 발현시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요청한 데 대한 응답으로 여겨지고 있다. 나머지 한 명은 현재 가르멜회 수녀로 있는 루치아로 그녀는 파티마 성모 발현에 관한 3권의 책을 저술했다.
포르투갈 주교단은 1930년에 파티마의 성모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며, 교황청의 시복절차는 1979년부터 시작되었다. 파티마 성모가 남긴 메시지 보급과 실천을 위해 설립된 대표적인 단체가 국내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마리아의 푸른군대’다.
교회 역사 안에서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모친이요, 교회의 어머니로서 당신 아들의 이름으로 하느님 뜻을 알리는 초자연적인 현현(顯現) 현상을 여러 차례 보여왔다.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축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축일로 꼽히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모 발현과 그 메시지들을 소개한다. 그간 교회의 정식 인가를 받은 성모 발현은 1858년 2월 11일~ 7월 16일 프랑스 루르드에서 보인 18차례의 발현을 비롯 멕시코 과달루페, 프랑스 라 살레트, 아일랜드 노크, 포르투갈 파티마, 벨기에 보랭과 바뇌 등 총 일곱 차례로 꼽힌다. 이 같은 발현을 통해 드러난 성모 마리아의 주된 메시지는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 그리고 어려울 때 자신을 찾아 의탁할 것을 간청하는 모습이었다. ■ 과달루페(Guadalupe) "나는 평생 동정이며, 하느님의 어머니임이 알려지기를 원하고 어려울 때에 정성을 다해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자비를 드러내도록 이 자리에 성당을 짓기를 바란다." 1531년 12월 9일 멕시코 원주민 후안 디에고(Juan Diego)에게 성모 마리아는 4차례에 걸쳐 나타나 이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원주민들이 신전을 세웠던 테페약언덕에서 성모 마리아는 인디언 피부의 용모를 보였다. 당시 멕시코는 스페인에 의해 정복된 지 10년 되는 해를 맞고 있었고 원주민들이 폭압과 폭정에 시달리고 있던 상황. 이 성모 발현은 이후 8년 만에 당시 800만 인구 중 700만 명이 영세, 입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 파리(Paris) 성모는 1830년 11월 27일 파리의 뤼 뒤 박 소재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지원자였던 카타리나에게 나타나 지구 위에 서서 두 팔을 지구 위로 활짝 펼친 형상을 드러냈다. 그 주변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때 자신이 나타난 모습대로 메달을 만들어 지니는 사람은 큰 은총을 받을 것이라 했는데, 그 후 메달 착용이 늘어나면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 '기적의 메달'이라고 불리게 됐다. 이 발현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신심을 고조시켰고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 라 살레트(La Salette)
성모 마리아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죄인들의 화해자'라고 밝힌 발현이다. 과학만능주의, 자유주의, 무신론의 풍조 속에 전통적 신앙과 성서 가르침이 위기를 맞던 19세기 후반, 1846년 9월 19일 프랑스 가르가스산 기슭의 라 살레트에서 11세의 막시망 지로와 15세의 멜라니 마티유 칼바에게 나타난 성모는 인류가 회개하여 하느님과 화해하면 축복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받으리라고 경고했다. 발현 당시 사람들은 이 메시지를 무시했으나 보불 전쟁과 대흉년으로 100만 명 이상이 굶어죽는 재앙이 닥쳐오자 회개하는 순례객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 루르드(Lourdes) 성모는 1858년 2월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루르드 동굴에서 14세 소녀 베르나 데트에게 발현했다. 이때는 교황 비오 9세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 교리를 반포한 지 4년째 되는 해였고 자유주의 사상의 팽배로 지식층들이 교회 가르침을 의심하고 교회를 떠나는 경향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원죄없는 잉태된 자'로 본인을 소개했던 성모는 기도와 보속 행위, 회개를 촉구했으며 많은 묵주기도를 권했다. 이후 루르드에는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방문하고 있으며 수많은 기적이 보고되었다. ■ 퐁멩(Pontmain) 1871년 1월 17일 프랑스 부르타뉴와 노르망디 접경 지역 라발 교구 작은 마을 퐁멩에 12세 외젠느와 11세 요셉 바르베데트에게 성모가 자신을 드러냈다. 그리스도가 못 박힌 붉은 십자가를 양손에 잡은 모습이었고 검은 면사포에 허리띠 없는 짙은 하늘색 바탕에 별들이 그려진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이때 성모 마리아는 '얘들아 언제나 기도하여라. 내 아들은 너희의 기도를 들어 허락하신다'는 글씨를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러시아 군대가 프랑스 전역을 침략, 위태로운 상황을 맞던 처지에서 발현 후 10여일 만인 1월 28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자 많은 이들이 발현한 성모를 '희망의 여인'으로 부르며 순례를 했다고 한다. ■ 노크(Knock)
19세기 후반 아일랜드는 영국의 억압과 대기근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1879년 8월 21일 아일랜드 노크에서 마을 주민 15명에게 나타난 성모는 흰옷을 입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성 요셉과 사도 요한과 함께였다. 제대와 어린양 주위로 천사들이 돌고 있는 모양의 발현이었다. 특별하게 말씀으로 전한 메시지는 없었으나 미사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다. ■ 파티마(Fatima)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6차례에 걸쳐 포르투갈 레이리아 교구 작은 마을 파티마에서 10세의 루치아, 7세의 히야친타, 9세의 프란치스코에게 발현했다. '로사리오의 여왕'이라고 자신을 밝힌 성모는 세계 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칠 것과 죄인을 위해 희생할 것, 그리고 성모성심을 공경할 것을 요청하였고 특히 러시아를 당신 성심에게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 영성체 할 것을 당부했다. 또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 보속을 통해서만 세계 평화와 러시아의 회개 및 교회의 안정 평온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 보랭(Beauraing) 1932년 11월 29일부터 1933년 1월 3일 사이, 벨기에 남부 지역 보랭에서 9~15세 다섯 아이들에게 33회에 걸쳐 나타났다. 흰옷에 황금관을 쓰고 양손을 들어 티없는 황금빛 성심을 드러내 보인 성모는 자신을 '원죄없이 잉태된 티없는 동정녀, 하느님의 어머니요 천상 여왕' 으로 전하고 끊임없는 희생과 기도 및 죄인들의 회개를 청했다. 이후, 공산주의 영향으로 교회를 떠났던 많은 신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왔다. 발현 첫해의 순례자가 200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병의 치유와 영적 치유(회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 바뇌(Banneux) 1933년 벨기에 바뇌에서 비신자였던 12세 소녀 마리에트에게 발현, '가난한 자의 동정녀'라고 자신을 칭했다. 루르드 발현 때처럼 흰 옷에 푸른 허리 띠를 두르고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숙인채 합장하고 오른팔에 묵주를 늘어뜨린 모습이었다. 이때 성모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러 왔다고 밝히고 기도를 많이 바칠 것을 요청했다. 그후 수많은 성당이 바뇌의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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