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새로 나온 <산울림 다시 듣기> 시디(CD)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쓴다. 마음에 착착 감기는 음악들이다. 이 세 장짜리 시디가 새로 나오기 전에는 산울림의 음악을 들으려면 아주 예전에 사 두었던 테이프를 꺼내 듣거나 인터넷을 어렵게 검색해서 겨우 몇 곡 찾아내거나, 그도 아니면 홍대 앞에 있는 술집 '곱창전골'에 가서 음악을 신청해서 감질나게 틀어 주는 노래들을 기다려야 했다.
▲ <산울림 다시 듣기> 시디 겉표지. | |
ⓒ2005 도레미레코드 |
비 오는 날,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를 듣는다거나, 그리운 이가 떠오를 때 '너의 의미'를 흥얼거린다거나, 이도저도 아닐 때 '회상'을 들으면서 분위기 잡아 본다거나 하는 유치한 나. '문 좀 열어 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같은 노래들은 또 어떤가. 제목을 들자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산울림의 노래들은 마흔이 넘은 언니들과 노래방에 가서 불러도 언제나 환영받는 몇 안 되는 노래들 가운데 하나다.
고운 노랫말, 마음을 흔드는 음악들을 만들어 왔던 김창완 아저씨의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를 읽으면서 나는 많이 행복했다. 아, 김창완을 '아저씨'라고 칭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해 주시라. 내가 처음 '김창완'이란 이름을 알게 됐던 초등학생 때 그는 웃기지도 않는 이티 복장을 한 머리 큰 인형들 틈에 서서 "식빵같이 생긴 이티의 머리, 하하하하 우스워"를 부르던 확실한 '아저씨'였으니까. 그리고 고등학생 때 다시 만난 김창완 아저씨는 라디오 디제이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한 청취자가 보내 온 편지를 담당 피디와 함께 묶은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를 읽으면서 우리 반 아이들이 흘린 눈물, 콧물은 참 대단했었다.
산울림의 음악은 어떤 '울림'을 주는가
그러던 김창완의 음악적 성취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래 전에 폐간된 잡지 <리뷰REVIEW>의 95년 여름호, 강헌과 나눈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강헌과 김창완의 인터뷰를 통해서야 나는 산울림의 음악들이 어떤 '울림'을 주는 것인지, 많은 청춘들을 염세주의자로 만들고야 마는 것 같았던 '청춘' 같은 노래들에 선배들이 열광했던 까닭이 무엇인지, 가요 순위에 오르내리는 사랑타령들과 산울림의 그것이 왜 다른지에 대해서 알게 됐다. <이제야 보이네>를 읽다가 다시 꺼내 본 잡지 속에서 강헌은 산울림의 앨범에 대단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아, 물론 심하게 비판해 놓은 몇 개 앨범도 있긴 하지만. 상업적으나 예술적 성취로나 다 실패한 앨범에 대해서는 굳이 옮길 필요가 없겠지.
▲ 10년 전 김창완 아저씨의 모습. 지금까지 여전히 해맑은 얼굴. | |
ⓒ2005 <리뷰> 제3호 |
그늘에 앉아 그물코를 손질하고 있는 게으른 어부
아,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너무 오래 수다를 떤 모양이다. 그래, 나는 김창완 아저씨의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황소자리, 2005) 얘기를 하려고 했지.
ⓒ2005 황소자리 |
서울에서 나고 자라, 서울이 고향이면서도 한강 모래밭에서 놀던 기억을 세세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고, '드라마게임' 같은 데 조금은 모자란 배역을 맡아 나가면서도 어머니와 마주 앉아 "그래도 뽑히면 다행이에요" 하고 능청스레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취미가 무엇이냐 묻는 이에게 "비 오는 날 음주 운전(김창완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이오!" 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김창완은.
그이가 들려주는 어린 시절 이야기는 다른 이의 추억에도 이렇게 함뿍 젖을 수 있구나 하는 생경한 놀라움을 전해 주며, 연극이나 영화를 두고 짤막하게 언급하는 촌철살인의 감상평은 같은 내용을 다르게 인식할 수 있게 해 주는 혜안에 무릎을 치게 하며, 곰살맞게 어머니와 나누는 식사 장면은 멀리 계신 우리 엄마 얼굴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쉽게 만나기 힘든 썩 괜찮은 산문집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소멸될 때 노래는 완성된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내 마음을 흔들었던 대목은,
"서른 즈음 당신들은 세상에 아주 익숙하다. 이제 후각으로 날씨를 안다. 눈 오는 냄새, 비 오는 냄새, 기다림과 이별과 사랑의 냄새를 안다. 모든 인연의 중심에서 균사 같이 인연이 또 피어난다. 아이가 입학할 때 당신은 느낄 것이다. 당신이 부모와 너무 닮았다는 것과 아이가 당신을 따라 살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인 또는 답답함. 세상에 익숙해지지만 못 가 본 세상은 오히려 더 넓어진다. 킬리만자로는 더 멀어지고 파푸아뉴기니는 이제 자신의 지도에서 지워버린다. 수첩에는 필요 없는 전화번호가 쌓여간다. 단 세 개의 전화번호만 남기고 모두 지워라."(243쪽)였다. 내게서 멀어지고 있는 냄새들, 이름들에 이 계절을 바쳐야겠다고 다시 마음먹게 만들었던 문장이다.
10년 전, 강헌이 김창완에게 물었다. 왜 현실을 직설적으로 비판하지 않느냐고, 김창완의 음악 안에서 세상은 너무 화해롭다고. "당신은 왜 싸우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 김창완 아저씨는,
"나의 노래가 무엇을 담는다고 하더라도 거울 앞의 내 모습 이상의 그 무엇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반항하고 저항하는 것은 '이것은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 것이다'라는 통념이다. 그것은 심지어 내가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그래서 이 화두는 내가 존재하는 한 영원하며 나는 계속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 가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 궁극의 과제는 작품 속에서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내가 소멸될 때 노래는 완성된다."이렇게 멋지게 대답했다. 자신이 소멸될 때 노래가 완성된다고 말하던 김창완 아저씨는 지금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노랫말도 쓰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에도 욕심을 내고 있으며, 자전거를 미치게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언제 봐도 개구쟁이 같은 김창완 아저씨가 말한 '소멸'의 뜻은 아마, '낡은 자아의 끝없는 죽음, 그리고 새로운 자아의 탄생'이 아니겠는가.
기타로 오토바이를 탈 줄 아는 사람, 세상의 통념들과 화해하지 않는 영원한 청춘, 김창완 아저씨를 다시 만나게 해 준 <이제야 보이네>에 감사 인사를 보낸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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