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초상화

[스크랩] 미술작품과 평론, 여인과 보리밭 / 이숙자 -18-

klgallery 2008. 6. 18. 14:13

 

 

여인과 보리밭, 이숙자 화가의 작품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이브의 보리밭 93-2/1993년/60F(130.3x97.0cm)



이브의 보리밭의 에로티시즘, 글 김인환 /미술평론가

 
이숙자의 작품세계는 우리 전래의 민예적 풍몰 소재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것은 여성다움이 반영된 여인의 장신구나 혼례예물이 주소재이며 민속가면도 등장한다. 이들 민예품이 지닌 순도 높은 현란한 색채에 걸맞게 다색적인 원색배합과 간결하나 극명한 묘사로서 처리하고 있다. 역시 색채와 무관할 수 없는 꽃에 대한 소재적 탐구로 이어지면서 「색채화가 」로서의 기반을 굳히고 있다.

인물소재로서 여인을 다루던 <이브> 시리즈 이후 한때 <군우> 시리즈에 집착한 일도 있다. 이와 같은 한 소재에 대한 집중적 탐구로서 자신의 작가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다음의 <보리밭> 시리즈로 옮겨간다. 거의 10년 가까이나 한결같이 보리밭을 그린 이 화가에게 '보리밭화가'라는 닉네임이 붙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추일지 모른다. 보리밭이라는 소재 자체가 지닌 특성상 거기에는 세밀 묘사의 극사실적 표현이 필수적이어서 그의 또 다른 양식적 전형의 패턴이 가해진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청맥과 패랭이꽃/1997년/60F(130.3x97.0cm)


보리는 우리의 민족정서와 깊은 연관을 갖는 소재이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생겼을 만치 식생활을 주도하기도 했던 양식으로서 보리밭이 펼쳐지는 전원풍경은 적어도 우리 나라가 산업사회의 구조전환을 보기 이전까지 접할 수 있었던 친밀한 한국적 자연경관의 일부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아 화가가 보리밭에 소재적 관심을 돌린 이유를 짐작할 만 하다. 「한국적 자연서정에 슬픔의 정서가 배어있는 보리밭」이라는 작가의 기술은 일단 수긍할 만 하다. 「동양화」라고 불려져 온 회화영역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수묵위주의 기조가 굳혀져 왔던 만큼 채색그림은 도외시되는 경향이 널리 일반화되어 왔다.

중국회화의 전통영향권에서 중국화론 (예컨대 동기창(董其昌)의 「상남폄북론(尙南貶北論)」의 지침에 따라 많은 화가들이 남화에 탐닉할지언정 북화적인 채색그림은 관심권역에 들어설 기회가 적었다. 다만 「불화」나 「민화」를 통해서만 채색전통의 맥락이 형성되어 왔을 뿐이다. 더구나 근대화단에서 부분적으로 수용했던 채색화마저도 「일본화의 아류」로 지적되어 배척 당하는 판이었다.


청맥/1977년/100F(130.3x162.2cm)


이숙자의 채색화는 그의 스승인 천경자(千鏡子) 의 화풍에 계발된 바 크며 또 한사람의 여류화가인 박래현(朴崍을)을 포함한 선배화가들의 영향이 있었으리라 믿어진다. 그리고 서양화와 더불어 밀려들어오기 시작한 회화의 현대사조에 힘입어 새롭게 해석되어지기도 하는 동양화의 채색그림은 현대적 차원에서 조명되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 이어져 온 맥락의 언저리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오늘의 미술기류에 이완되지 않는 새로운 발상과 기법적 탐구를 실현시키는냐가 성패의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동양화영역이 사실상 수묵을 고수할 뿐만 아니라 고격을 앞세워 전통적 화법과 고풍한 양식에 충실하던 풍조는 70년대가 지나면서 퇴조현상으로 방향선회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추세이며 귀결이라고 하겠다. 미술의 흐름에 있어서의 과거회귀와 같은 양식의 역류는 일시적인 현상이었을 뿐이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수국의 여심/1983년/60F(130.3x97.0cm)


극세한 사실풍과 농채의 채색기법은 과거 중국의 북화계열 기법에서 볼 수 있는 바이나 그것은 주로 「화조화」에서 많이 다루어진 양식이다. 그러한 고법에 묶이지 않고 다양한 소재를 다채롭게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화가는 동양적 재료로서 서양화의 묘사기법을 도입하여 오늘의 시각에 즉응하는 양식모색에 부심하고 있다. 사물의 세부에 있어서의 입체적 처리나 풍경의 원근투시법적 전개 모두가 고식적인 전통기법을 탈피한 서양식 표현방법과의 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브의 보리밭 96-1 (116cm x 91.0cm. 50호)



단일주제에 촛점을 맞추면서도 집체적으로 늘어놓거나 대형화면에 병렬적으로 전개시키면서 유동적인 구성성과 동일한 소재의 반복적인 리듬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는 치밀하고도 스케일이 큰 작업은 이 화가의 작품세계의 중요한 특색으로 간주된다. 오늘의 회화에 있어서 특히 구상회화의 필수적인 현장감의 표현에 적중하면서 동시에 극세묘사에 따르는 과다한 작업량을 적절하게 소화해 가는 것 같다.

<이브의 보리밭>이라는 명제가 부쳐진 근작 시리즈로서 화가는 지금 획기적인 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이브>시리즈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여체추구의 전말이 <보리밭>으로 이어지고 의외의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여체의 치부 부분까지 상세하게 묘사하던 누드그림으로 일관되었던 작업에 보리밭이 개입되는 이중구조로서 열려진 별개의 작품세계에로의 진전이다.


이브의 보리밭 90-6/1990년/100F(162.2x130.3cm)


화가의 누드그림은 결코 풍만하다고는 할 수 없는 때로는 혐오감마저 들 정도로 적나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말라빠진 여인의 몸둥이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관능적이기보다 차갑고 괴기한 느낌조차 들 정도의 환상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누드화였다고 말할 수 있다. 화가 자신이 실토한 일이 있듯이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체나 관능적인 감각으로 본 여체를 그렸던 것은 결코 아니다.


「보리밭 가운데서의 에로티시즘」이라는 기묘한 표현이 적절할 것 같은 발상의 새로운 전개로서 바뀌어진다. 보리밭과 연관되는 민담이나 속설을 떠올릴 수 있다. 봄철이면 보리밭 사이에서 있었을 법한 남녀간의 정사장면이 환기되는 조상 전래의 에로티시즘에 착안한 발상적 전개이다. 보리밭에 얽힌 여러 가지 속담 중에서 남녀의 로맨스에 착안했던 것이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이브의 보리밭 90-2/1990년/100F(162.2x130.3cm)


보리밭을 메운 보리이삭은 물론 그 알맹이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묘사해 가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변화를 주어 색조나 형태의 다채로운 변주를 꾀해왔다. 굵거나 가느다란 보리이삭과 알맹이는 반복적으로 그려지면서 변하는 묘미가 있다. 바람이 쓸려간 보리밭의 파상적인 움직임이 큰 물결을 지으며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맑은 대기아래서 광선의 변화에 의한 색진동에 따라 명암이 굴곡이 생기기도 한다.

그 작은 미립자의 보리이삭과 알맹이는 비단결같이 섬세한 체모와 원형의 형상을 지녔다. 거기에 여체의 관능적인 몸둥이를 중첩시키는 이중영상의 결합은 다분히 은유적이면서 상징적인 에로티시즘의 세계를 시사한다. 여인의 머리카락이나 체모와 곡면적인 볼륨감이 묘한 대조를 보이며 결합관계를 이룬다.


이브 86-2/1986년/80F(112.1x145.5cm)



'보리밭'과 '여체'라는 두 소재의 맺음을 통해 상징적으로나마 민담적 차원에서 우리 고유한 속설을 환기시키는 에로티시즘의 모형을 화면에 정립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지금부터의 과제가 될 것이다. 두 개의 상이한 소재세계를 별도로 화면에 올렸다가 결합시킨 발상이 우연의 계기로부터 출발한 것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우연성의 경험의 축적이 작가가 의도한 바의 목적을 더욱 심화시킬지도 모른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패랭이꽃이 있는 이브/1999년/40F(100.0x80.3cm)


작품의 주제 속에 에로티시즘을 투영시킨다는 것에 많은 화가들이 주저해 왔던 사실을 감안할 때 이 여류화가의 대담한 발상적 전환에 기대를 걸어봄직하다. 예술의 세계는 통념적 모랄이 지배하는 세계와는 다른 것으로서 인간의 원생적 본능에 밀착된 어떠한 시도도 환영할 만 하다. <이브>시리즈와 <보리밭>시리즈의 에로티시즘을 매개로 한 맺음도 파격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종래의 보리밭소재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일차적으로는 보리밭이 주축이 되는 평화로운 전원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실재적인 묘사에 따르는 현실감의 리얼리즘이 중요한 척도였다. 거기서 점철적으로 연상되는 한국적 정서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한국적 민담의 에로티시즘으로까지 발전된 경위가 흥미롭다.


이브의 보리밭/1989년/120F(193.9x130.3cm)



이숙자의 작가적 특성은 창의력의 기발함이나 특출한 상상력에 있는 것은 아니다. 감각이나 감성의 성숙된 개안과도 거리가 멀다. 이 화가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주제에 대한 집착과 그것을 끈기 있게 밀고 가는 집요한 추진력에 있다. 보리이삭을 하나하나 헤어 묘사해 가는 꼼꼼함이나 대형화면을 감당하며 거기에 갖가지 소재대상을 오랜 시간의 제작과정을 거쳐 묘출 해내는 강인한 창의적 자세가 돋보인다. 작품의 특색으로 보더라도 그가 한 작품에 기울이는 정력은 다른 사람보다 더 배가되리라는 추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와 같은 남다른 추진력과 저력이 그의 작품세계를 오래 지탱하게 하는 결정적인 힘이 되리라고 믿는다.





작가의 글, 이브의 보리밭 / 이숙자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청맥-망초꽃과 달개비가 핀/1998년/60F(130.3x97.0cm)

      
나는 누드를 73년 첫 개인전때 4점을 선보였고 20년간 틈틈히 그려왔다. 보리밭은 10년이상 그렸다.
보리밭과 누드가 만난것은 필연적 결과이다. 과거의 누드는 여체를 작품의 대상물로서 보았지 性의 여체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적나라한 포즈를 그렸더라도 관능적이지 않았고 차가웠다. 나 자신이 여체를 관능적인 감각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이브의 보리밭은 우리겨레의 보리밭 에로티시즘을 전제로해서 그린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보리밭을 여러점 그렸다. 한국적 자연서정에 슬픔의 정서가 배어있는 보리밭은 화가로서 어려웠던 한시기를 극복하게 해준 테마였다. 보리밭 화가라는 말이 나를 쉽게 이해시키기도 했다. 이숙자라면 잘 모르는 사람도 보리밭 그리는 이숙자라면 나를 기억할 정도였다. 


이브의 보리밭 97-3/1997년/40F(100.0x80.3cm)



그런데 얼마전부터 보리밭에 대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선 작업량이 지나치게 많아서 나를 꼼짝못하게 만든다. 다른 作品을 할 시간과 체력을 남겨놓지 못하게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간과 노력을 무한할 정도로 받아들이는 보리밭 작업은 내 직성에 딱 맞는 그런 작업이었다.

나는 과다한 작업량에 의해서 육체적고통와 정신적 피로의 극치를 느낄 때 일종의 만족감에 의한 쾌감의 극치를 동시에 느껴왔었다. 나는 손에 붓을 들고 있는한에는 마음의 한없는 희열과 만족감에 잠기곤 한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맥파/1980년/150F(227.3x181.8cm)/1980년 중앙미술대전 대상


그리고 보리수염 하나하나에 개성이 담겨지어 그 개개의 수염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그리느라고 애쓰다보면 또 개성과 함께 보리수염 전체의 조화가 귀결점이므로 조화를 이루게 하기위해 여러가지 배려를 세심하게 해야한다. 좀 눈에띄게 굵게 그어진 수염은 세필로 반을 쪼개고 하얀색의 수염이 우연히 나란하게 두개가 그어져 눈에 그부분이 유독 하얗게보이면 그중 한개의 수염은 다른색으로 바꾼다.

또 속도감이 약해서 수염의 기(氣)가 살지않은 수염은 속도감을 주어 기를 다시 살리기도 한다. 또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 극세필로 비단결같이 섬세한 수염을 그릴때도 있는가 하면 힘차고 굵고 다이나믹한 수염을 그릴때도 있다. 이 보리수염의 역할이 보리밭 작업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브의 보리밭 - 달무리 (162.2cm x 130.3cm , 100호)



여러가지 색깔, 빨강, 노랑, 파랑, 보라, 연두, 청록, 초록, 백록, 흰색... 이런 색들의 수염을 여러가지 굵기의 여러가지 속도변화의, 여러각도의 방향을 생각하면서 그리느라고 밤이오는 시간 즉 자야 할 시간이 아깝고 그래서 어서 빨리 이밤이 지나고 아침이되면 보리수염을 또 그릴 수 있을텐데 하는 그런 기쁨속에서 보리수염을 그렸다.

한때는 보리알맹이 한개 한개에 명암을 넣고 입체로 만들고 모양에 변화를 주고 하면서 보리이삭의 알맹이 한 개씩에 묘미를 느끼며 그리던 때도 있었다. 지금 이 보리수염을 그리는 묘미는 여체의 꼬불꼬불한 체모를 그릴 때나 이브의 머리카락을 한올씩 그릴 때도 비슷한 기쁨으로 그렸다. 머리카락을 한올씩 그리는 재미에 몰두하다가 밤을 새우기도 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청맥/1983년/100F(162.2x130.3cm)


전에 보리밭의 에로티시즘을 나타내 보라는 이야기를 여러사람들로부터 자주 들었다. 언젠가 어느모임에서 「요즈음도 보리밭을 그리느냐」, 「보리밭과 연관된 사연이라도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 겨레의 정서가 배어있는 듯한 분위기 때문에 그린다」고 대답했더니 혹 보리밭에서 연애를 해본 경험이 있어 그러는 것이 아니냐고 해서 폭소가 터졌다.

국문학을 하시는 홍교수는「비단 속꼿(옷)입고 보리밭 매러간다」, 「보리밭 머리만 지키면 일년농사가 거뜬하다」는 옛 속담을 들려주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봄이되면 보리밭에 숨어서 로맨스를 즐겼고 어쩌다 남의 눈에 띄기라도하면 소문날 것이 두려워 곡식을 퍼다주고 입을 막았다는 말에서 연유된 속담이라며 그러한 에로티시즘도 같이 표현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그러자 옆에있던 P씨가 보리밭 한가운데를 싹뭉개지게 그리면 그런그림이 되지 않겠느냐고 해서 웃음바다가 된적이 있었다.


이브의 보리밭-달빛 그림자/1999년/80F(112.1x145.5cm)



보리밭정서가 보리고개를 위시해서 가난이나 한 또는 한국적인 자연정서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에로티시즘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후 몇년이 지났다. 얼마전 우연히 시인 유선생과 대화중 보리밭은 그만그리려고 한다고 했더니 보리밭의 에로티시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가져보기를 권했다. 그때서야 그 보리밭의 에로티시즘이 내 가슴 깊이 들어왔고 감동이 왔다.

나는 곧 환희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즉 보리밭의 새로운 방향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기쁨이 생겼다. 그것은 폭발하는 듯한 에너지로 나를 작품속에 몰입시켰다. 하루 17시간의 작업시간을 지탱할 수 있었다. 외부의 방해가 없는 한은 먹고자고 작업만했다. 차를 타고 집 현관에서 화실 현관까지 왔다갔다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백맥-보리밭 사잇길/1996년/50F(116.8x91.0cm)


어느날 거리에 나서니 대지를 두발로 밟고 섰다는 감회가 서렸고 땅이 부드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에 이브의 뎃생이 한점씩 완료되는 경이(내게 있어서는 놀라운 속도였다)가 이어졌다. 그동안 토요일 오후마다 모델을 초빙해서 3시간씩 때로는 3시간씩 두타임 정도 크로키를 한 그 크로키들중에서 포즈를 골라「이브의 보리밭」씨리즈의 작품상의 여인으로 형상화시켰다.

지금 나는 「이브의 보리밭」을 그릴 의욕으로 부풀어있고 또한 새로운 기법의 개발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내가 그린 보리밭 중에서 이번에 새로 그린 작품이 최고가 아닐까」하며 새 작품마다 비슷한 느낌을 갖게하는 아직도 이렇게 미련이 남아있는 보리밭을 더 그릴 수 있어서,-보리밭을 더 그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갈등으로부터 해방되어 기쁘고 앞으로 은유적이면서 한국적인 에로티시즘의 세계로 젖어들 수 있는 작품세계가 열려 무한히 기쁘다.





들판이 보이는 청맥/1992년/30F(90.9x72.7cm)



현실과 환상 / 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이숙자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리밭>을 연상하게 되고 이에서 연유되는 보리밭 화가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보리밭과 관능적인 여체를 결합시킨 특이한 구성의 작품으로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특히 보리밭에서의 여체란 설정이 환기하는 에로티시즘의 맥락이 극히 토속적인 정서와 연관되어 우리의 원시적 삶의 풍경을 노래하는 작가로 인상되고도 있다. 어쨌거나 그가 가장 오랫동안 다루어온 것이 보리밭과 여체이다. 이외 작품들은 이와 관계된 변주의 형식이다. <황맥> <청맥> <백맥> 등은 순수한 보리밭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면, <이브의 보리밭>은 보리밭에서 대담한 포즈의 여체를 설정시킨 것이다. 보리밭 시리즈에서 변주된 <훈민정음과 청맥> <청맥과 석보상절>이 있는가 하면, 이브에서 변주된 <패랭이꽃이 있는 이브> <이브-부귀평안도> 등이 있다. 그러니까 보리밭은 독립된 모티브로 나타나기도 하고, 여체와 어우러지기도 하며, 또 이에서 벗어난 다른 유형으로도 모색되지고 있다.

이숙자가 보리밭 시리즈를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반이다. 그러니까 그가 보리밭을 소재로 한 작품을 다루어온 것이 대개 25년쯤 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왜 이토록 오랫동안 매여 있는가는 어느 인터뷰 자리에서 밝히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어느정도 암시받게 된다.
"보리밭을 그릴 때면 마치 단단하게 감겨진 실타래 같은, 가슴속에 응어리진 어떤 것이 한올한올 풀려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보리밭은 전 시대 곤궁의 상징으로서 보리고개를 연상시키고 있어 보리밭과 연계된 한은 작가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넘어 우리 민족 보편의 한의 개념으로 확대되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발가벗은 여체를 등장시킴으로써 한과 생명력의 기이한 조화를 시도해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보리밭으로 대변되는 슬픔의 그림자가 건상한 여체의 등장으로 갑자기 싱싱한 원생의 풍정으로 뒤바뀌는 기묘한 전환의 국면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전혀 다른 사물끼리의 만남을 통해 나타나는 위화(違和) 효과는 시각의 충격과 더불어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부여해주는데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 다루던 방법이다. 보리밭과 건강한 여체의 어우러짐이란 의외로온 설정이 반드시 초현실적 수법의 원용은 아니어도 세계 속에 감추어진 신비로움의 일깨움이란 점에서 신선한 시각적 충역을 안겨줌이 틀림 없다.

끝없이 펼쳐지는 보리밭을 청맥, 황맥, 백맥과 같은 변화된 색채로 잡기도 하고, 근래에는 배경에다 여러 색채의 천에 훈민정음과 석보상절의 구절을 새긴 만장을 휘날리게 하는 변모를 시도해가고도 있다.
그가 추구해 마지않는 생명력이 민족성과 깊은 관계를 형성해 보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근래의 화면은 장대한 스케일로 펼쳐지는 어떤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백두산 기행을 통해 얻어졌다는 대작 백두산과 단군신화도 같은 맥락에서 결실된 것이 아닌가 보인다.

이숙자는 한국화 영역에서도 채색화를 집중적으로 다루어오고 있는 대표적 채색화가이다. 그가 초기에 보여주었던 작품들이 전통적인 기물인 색 상자나 족두리 또는 안방가구 등 화사한 색채가 부여된 사물을 주 모티브로 다루었다는 점에서도 채색화가로서의 자신의 방향을 일찍이 확고히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와 같은 방향 설정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오늘에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채색화가에 상응된 소재의 선택으로 더욱 심화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같은 보리밭도 청맥, 황맥, 백맥으로 다양화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뛰어난 채색화가임으로 해서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술작품과 평론, 여인과 보리밭 / 이숙자

흐르는 곡: 윤용하의 보리밭



 

 
 
 <출처;http://tong.nate.com/hnj00516>

 

 

 

 

출처 : ..
글쓴이 : 너와집나그네 원글보기
메모 :

'인물 초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Svetlana Valueva / 여인들 -11-  (0) 2008.06.18
[스크랩] 주운항 누드화 -4-  (0) 2008.06.18
올해의 (2007년) 초상사진  (0) 2008.06.17
산울림의 김창완님  (0) 2008.06.04
이 영길 가롤로 신부님  (0) 2008.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