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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 이름" / Verdi Rigoletto - Caro Nome / Giuseppe Verdi/

klgallery 2007. 5. 4. 10:14
'베르디'(Giuseppe Verdi)의 오페라
'리골레토'(Rigoletto) 중
'그리운 이름'(Caro Nome)을 올립니다.

잘 알려진 아리아입니다.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와
우리나라가 배출한 걸출한 소프라노인
'조수미' 와 '신영옥'
그리고 '조안 서덜랜드'(Joan Sutherland)까지...
각자의 개성을
맘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럼...


Giuseppe Verdi(1813 ~ 1901 / 이탈리아)





'Verdi' / Rigoletto / "Caro Nome"
Maria Callas


조수미 - 신영옥


Soprano Joan Sutherland


Maria Callas, (1923 ~ 1977)마리아 칼라스

1950년대 큰 인기를 누린 프리마 돈나로 오페라의 전설이 되었다.
본명은 '칼로게로풀로스'로, 이탈리아 사람들이 라 디비나(오페라의 聖女)라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는 1923.12.2 미국 뉴욕에서 그리스 이주민의 딸로 태어났다.
그러나 1937년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그리스로 되돌아왔으며 이듬해부터 아테네의 국립 콘서바토리에서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1947년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La Gioconda(라 조콘다)""를 부르는 것으로 이탈리아 데뷔 공연을 갖게 된다.
공연은 성공적이었음에도 별 인상을 남기지 못해서 추가 계약은 맺어지지 않았지만 그해 12월에 이탈리아어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졸데역을 부르게되고 푸치니의 "투란도트"중 타이틀롤로 재계약을 맺는데 성공하게 된다.

■ 마리아 칼라스의 전성기
칼라스는 1951년 권위있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극장의 시즌 개막공연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으며, 1954년 시카고 오페라 극장에서 '노르마(Norma)'역으로 미국에서 데뷔했고, 같은 역을 1956년 뉴욕 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하는 등 1958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맡게된다.
칼라스는 음악의 감성을 정확히 표현하는 힘과 매력적인 음색으로 사랑을 받았으며, 특별한 발성 능력을 요구하는 배역들을 맡아 이름을 떨쳤고, 프랑스 오페라, 독일 오페라, 이탈리아 오페라에 모두 출연했다.
벨리니·로시니·도니체티·케루비니 등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칼라스의 연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우아한 용모, 대스타로서의 기품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뛰어난 오페라가수로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최대의 오페라가수로 인정받았다.

■ 오나시스를 만난 후..
그러나 한창 전성기 무렵 칼라스는 화려한 축하 파티에서 남편 메네기니와 함께 참석했다가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를 만나고 남편 곁을 떠나게 된다.
오나시스와 함께 있는 동안 아기를 유산하고 자살기도까지 할 정도로 황폐해진 그녀는 오나시스가 케네디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해 버리자 1965년 42세의 한창 나이에 코벤트 가든에서의 '토스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이후 칼라스는 영화 <메데아>(1971)에 출연했으며, 이듬해에는 줄리어드 음대에서 마스터클래스(정상급 음악가들이 지도하는 실기교실)를 열기도 했고, 1973년과 74년에 걸쳐서는 미국과 유럽에서 마지막 순회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75년부터 은둔생활을 하던 마리아 칼라스는 1977년 우울증과 수면제 과다복용이 원인이 되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002년 마리아 칼라스 서거 25주년을 맞아 영화 '칼라스 포에버'가 제작되었다.



조수미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의 프리마돈나로 데뷔한 조수미. 카라얀으로 부터 ' 100년에 한두 명 나올까 한 목소리의 주인공 ', 쥬빈 메타로부터 ' 신이 주신 목소리 ' 라는 극찬을 받으며 세계를 휩쓸고 있는 그녀는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무용, 성악, 가야금, 피아노 등 다방면에 걸친 폭넓은 교육을 받았고, 또 소질을 보였던 그녀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에 의해, 그 유달리 뛰어난 성악적 재능을 인정받고 성악가로 클 수 있는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다. 동북 초등학교를 거쳐 선화 예중, 고를 수석으로 입학했던 그녀는 서울대 성악과를 과 개설 사상 최고의 실기점수를 받으며 수석으로 입학, 이 때부터 이미 남다른 가능성을 지닌 재목으로서 세인들의 입에 오르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교 생활에 크게 만족하지 못했던 그녀는 입학한지 1년도 안되어 성악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역시 대어 다운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곳의 세계적인 명 성악가의 산실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 입학하면서 그녀는 비로서 그 천재성에 걸맞는 순도 높은 조련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녀의 목소리에 새 생명력을 불어 넣어 준 이는 음악원의 자넬라 보넬리 여사. 비록 메조소프라노로 음역은 달랐지만, 그녀는 조수미의 고음을 연마시켜주고 완벽한 테크닉을 갖추도록 큰 공헌을 했다.

음악원 유학 2년 만인 85년, 그녀는 나폴리 존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국제무대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어 여러 콩쿠르를 차례로 석권하면서 경력을 쌓은 그녀는 드디어 1986년 정식으로 오페라 데뷔를 하게 된다. 이탈리아 5대 극장의 하나인 트리스테 베르디 극장에 <리골레토>의 질다로 출연한 것이 그것이다. 이때 선보인 환상적인 가창으로 거장 카라얀을 감복시킨 그녀는 2년 뒤 그의 오디션에 초청되어 함께 작업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쌓을 수 있는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이후 라 스칼라(88), 메트(89), 코벤트 가든(91), 빈 국립 오페라(91), 파리 오페라(93) 등 소위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을 차례로 섭렵하며, 유럽과 미국의 음악 팬들을 열광시킨 그녀는 이제 셰릴 스투더, 캐슬린 베틀의 뒤를 잇는 세계의 프리마돈나로서 당당히 그 이름을 떨치고 있다.



신영옥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오페라 무대인 메트로폴리탄의 디바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영옥은 고유의 음악적 영역과 위치를 확고히 다지고 있는 한국 성악계의 자부심이다.

1961년 서울에서 출생한 신영옥은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보이며 주위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노래뿐만 아니라 춤에도 재능을 보여 리틀엔젤스 어린이 예술단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오페라 무대에서 보여주는 그녀만의 연기는 어린 시절 배운 춤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선화예고를 거쳐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 동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성악가로서의 자질을 갖추어 나갔다.

본격적인 데뷔 이후에는 오페라 무대, 콘서트, 음반 작업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통해 비평가와 음악 애호가들에게 많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리골레토 Rigoletto」의 질다(Gilda)역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 입문한 그녀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Lucia di Lammermoor」에서 타이틀롤인 '루치아'를 맡는가 하면, 「돈 지오반니 Don Giovanni」에서 '젤리나(Zerlina),' 「청교도 I Puritani」에서 '엘비라(Elvira)' 역으로 열연한 바 있고, 제임스 레바인(James Levine)이 지휘를 맡고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와 함께 공연했던 「가면 무도회 Un Ballo in Maschera」에서 '오스카(Oscar)' 역을 훌륭히 소화해 냈다. 그리고 역시 파바로티와 함께 일본 무대를 달구었던 「사랑의 묘약 L'Elisir d'Amore」에서 '아디나(Adina)'로변신에 성공했다.

신영옥은 메트 뿐만 아니라 세계 무대로 영역을 넓혀 나갔는데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the Bastille Opera), 영국의 코벤트 가든(the Royal Opera Covent Garden), 캐나다의 코벤트 가든(Canadian Opera Covent Garden),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이탈리아의 피렌체, 브라질의 상파울로, 칠레의 산티아고, 중국의 베이징, 베트남의 하노이 등 전세계 오페라극장에서 주역으로 찬사를 받았다.



콘서트 무대에서도 천상의 목소리라는 격찬을 들으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주로 링컨 센터(Lincoln Center)에서 벌어지는 모차르트 페스티벌,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와 함께 했던 싱가포르와 쿠알라룸푸르 갈라 공연, 뉴저지 교향약단과의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 무대, 셔터쿠아 패스티벌 오케스트라(Chautauqua Festival Orchestra)와의 아리아 콘서트, 피츠버그 오라토리오 소사이어티(Pittsburgh Oratorio Society)와 공연했던 헨델의 「삼손 Samson」중에서 '필리스티아 여인'으로 열연을 펼쳐보였다.

음반 활동으로는 삼성 클래식의 「보칼리제」, 「아베 마리아」가 있으며 세 번째 앨범 「드림」에 이어 「마이 로맨스 My Romance」등이 1998년과 1999년 시즌에 소개되었다. 「마이 로맨스」는 거시윈, 포터, 로저스의 명곡들을 담은 모음집이다.



Rigoletto - Caro Nome
제 1 막 제2장
리골레토가 아름다운 딸을 숨겨두고 있는 교외의 작은 집이다. 망토로 몸을 가리고 집으로 가는 리골레토의 뒤를 스파라푸칠레가 따라오며 부른다. 그는 자신을 적수를 없애는 자객이라고 소개시킨 후 자신의 거취 장소를 알려주고 떠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리골레토는 <그는 살인자, 나는 혀끝으로 사람을 찌르는 익살꾼>이라는 장엄한 독백을 시작으로 하는 노래를 부르고는 문을 열고 정원으로 들어선다. 질다가 집에서 뛰어나와 아버지 품에 안긴다. 둘은 <여인이여, 사랑스런 이 꽃을 보라>는 2중창을 부른다. 리골레토는 질다에게 거리에 나가지 말라고 당부하고 하녀에게는 문단속을 철저히 할 것을 지시한다. 그가 밖을 살피러 나간 동안 학생으로 변장한 공작이 숨어 들어온다.
공작은 질다 앞에 나타나 <사랑은 마음의 태양, 삶이랑 곧 사랑이니라>라는 노래로 사랑을 고백한다. 그녀도 교회에서 그를 만난 후부터 가슴 조이던 사람임을 확인하고는 그의 이름을 묻는다. 그는 자기의 이름은 괄티에르 말데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 때 보르사와 체프라노 백작이 지나가므로 공작은 허둥지둥 피한다. 혼자가 된 질다는 그 유명한 소프라노 아리아 <그리운 그 이름>을 부르고는 집으로 들어간다.



'베르디' '리골레토' 중 '그리운 이름'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Rigoletto)'는 빅토르 위고의 희곡을 피아체가 대본으로 만들어 작곡된 비가극으로 테너가 부르는 제2막의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과 함게 제1막의 '그리운 그 이름'이 유명하다.

가사
Gualtier Maldè...  
nome di lui sì amato  
scolpisciti nel core innamorato!  
Caro nome che il mio cor  
festi primo palpitar,  
le delizie dell' amor  
mi dêi sempre rammentar!  
Col pensiero il mio desir  
a te ognora volerà,  
e pur l' ultimo sospir,  
caro nome, tuo sarà.
 
Gualtier Maldè…  
사랑하는 그의 이름,  
사랑에 빠진 심장에 낙인을 찍네요.  
사랑스런 이름, 내 심장을 처음으로
두근거리게 만든 당신,  
당신은 날 기쁨과 사랑으로
기억해야 해요  
나의 욕망은 생각의 날개를 달고
당신에게로 날아갈 거에요.  
그리고 나의 마지막 숨결은
당신의 것이 될 거에요,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