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저녁 이덕구 산전을 가다 보았던 몇 차례 만난 노루들의
그 천진난만한 눈빛 같은 노루귀가
산촌인 조천읍 교례리 부근 양지녘에 피었다.
일요일 오후에 카메라가 고장이 생겨
어제 낮에 서비스 센터에 찾아갔더니
너무 많이 찍어서 회로 부분 이음새가 탈이 났단다.
5만원 정도가 소요되는 부품을 갈아야 한다고
부담해서 고치겠느냐 하길래 그리하겠다 했더니
4시까지 찾으러 오라고 한다.
가서 찾고 아무래도 실험 겸 본전도 뽑아야 하겠기에
늦은 시간임에도 길섶나그네로 달려 작년에 보았던 곳으로 가
양지쪽에서 너무 저물어 원기를 잃어 가는 이 녀석들을 만났다.
♧ 노루귀꽃 숨소리 - 山詩·23 - 이성선
늦은 저녁 산에 귀 대고 자다
달빛 숨소리 부서지는
골짜기로
노루귀꽃 몸을 연다
작은
이 소리
천둥보다 크게
내 귓속을
울려
아아
산이 깨지고
우주가 깨지고
♧ 당신은 누구십니까 - 권경업
누구십니까
혹여 키 낮은 풀꽃 아닐런지요
겨우내 아린 꽃물 품어
보아줄 이 있건 없건
조그만 꽃부리 애써 여는 당신은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소리 낮추어 피는 감자난초 족두리풀
듣기에도 어색한 개불알꽃 고슴도치풀
이름 한 번 불릴 일 쉽지 않은 이 땅에
말 없는 노랑제비꽃
연보라 노루귀, 꿩의바람꽃
천덕꾸러기 엉겅퀴 들꽃이라도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무심히 스치는 길섶, 하찮다지만
먼지만 한 씨앗으로 세상에 오던 날
하늘에는 바람, 땅에는 비 내렸습니다
척박한 땅 싹 틔워 질긴 뿌리내리라는
그 가르침
당신은 누구십니까
♧ 꽃 - 함영숙
척박한 땅에서
잔돌 집어 던지니
옥토가 숨쉬며 날 반기네
누군가 쉬임 없이 심어 놓은 꽃들
그 많은 꽃 중
내가 좋아하는 꽃은
땅이 좋아 흙 속으로 숨어드는 꽃
벌나비 찾아드는 조팝나무 꽃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겨울나는 설백, 솜양지꽃
야생화의 강인한 생명력, 노루귀 꽃
향기 좋아 곤충들이 찾아 쉬는 보춘화 꽃
봄소식을 전해 주는 길가 언덕 제비꽃
이른 봄 눈 뚫고 여섯폭치마 펼치는 처녀치마 꽃
만발한 꽃향기 나만 맡으며
내가 좋아하는 봄꽃만 뿌리째 옮겨 심고
푸른 하늘 우러러 님 생각하며
여름꽃, 가을꽃 그리고 겨울꽃도
님 보듯 보며 살고 싶어라
♧ 나를 호흡하는 저것은 - 홍일표
붉은 단풍숲이 슬며시 내 속으로 들어와
숨을 쉰다. 맑고 청아한 숨결이 들락날락 한다
새도 지저귀고
금란초, 노루귀, 쑥부쟁이, 얼음새꽃도 줄줄이 따라와
마음의 틈새마다 둥지를 튼다
문득 적막한 뜨락이 환하게 밝아오고,
누군가 나를 곱게 빗질하여
가벼이 들어 올린다. 둥둥 떠오르는
저녁 안개
울긋불긋 아물지 않은 골짜기의 깊은 상처를
온몸으로 어루만지며 속 깊이 스며든다
잡념처럼 북적이는 가랑잎을 거둬내면
산쪽풀 잎새마다 또록또록 반짝이는 숨결
생각의 밑둥에 고여 맑은 샘물로 찰랑이고,
청설모 눈 속을 흐르던 가을 하늘은
나뭇가지를 타고 조르르 흘러내린다
♬ Visions - Cliff Rich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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