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취미는 혼자 놀기, 특기는 고독 하기....

klgallery 2007. 2. 1. 14:14

월요일 회식, 화요일 출장, 수요일 야근…. 한 주는 빼곡했다. 주말 아침, 서른 살의 글루미씨는 집을 나섰다. 한산하고 조용한 서울 종로 ‘스폰지하우스’에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수면의 과학’을 봐야지. 오래 전부터 보고 싶어 벼르던 영화다. 영화 보는데 옆에서 말 거는 게 제일 싫다. 남자친구에게는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캄캄한 극장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영화를 보며 블루베리 머핀과 카페라테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다. ‘사랑은 왜 꿈처럼 되지 않는 걸까.’ 주인공 스테판의 대사를 떠올리며 혼자 청계천을 따라 걷는다. 배들리 드로운 보이(Badly Drawn Boy)의 ‘이어 오브 더 랫(Year of the Rat)’을 들으며 광화문까지 걸어가 교보문고에서 책 구경을 한 후 지하철을 타고 상수동 카페 ‘비하인드’에 자리를 잡는다. 커피 한 잔 시키고 소설을 읽다가 간간이 다이어리에 감상을 끄적끄적. 시간은 어느덧 오후 4시….

끊임없이 말하고 듣고 의무적으로 인간 관계를 맺다 보면 가끔은 외롭고 싶다. 혼자이고 싶다. 종일 사람에 치이고 부대끼며 사는 일상에 지친 탓일까. 지나치게 깔끔 떠는 자기애(愛)일까. 고독한 시간, 아주 잠깐의 우울을 일부러 찾아 다니는 ‘글루미족(族)’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낯선 곳에 익숙한 사람과 가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점심은 일부러 혼자 먹어요.” ‘글루미(gloomy)’는 ‘칙칙하고 우울하다’는 뜻이지만, 이 시대의 글루미족은 성격이 괴팍한 외톨이들이 아니다. 통제 가능한 가벼운 우울을 감성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부류에 더 가깝다.

영국에는 글루미족과 비슷한 ‘와이즈’(WISE)족이 있다. ‘더 타임스’ 온라인판에 따르면 ‘나홀로 경험을 고집하는 여자들’(Women who Insist on Single Experiences)의 약자다. 홀로 식당에 예약해 밥 먹고, 혼자 영화 보고, 혼자 짐 싸서 여행을 떠나는 여자들이다. 혼자 할 수 있으니까 혼자 한다. 요즘 여자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오랫동안 싱글 라이프를 즐긴다. 쇼핑부터 메뉴 결정, 여행지 선택에 이르기까지 남과 타협할 필요가 없는 절대 자유를 누리기 위해 혼자 한다. 영국의 한 여행업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9%가 ‘나홀로 여행을 즐긴다’고 답했다.

우리가 사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회적 관계의 그물망이 더욱 촘촘해지면서 글루미족이 등장한다. 스터디·학교·모임·직장에 이르기까지 하루 종일 이 사람 저 사람 시달리다 보면 이제는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요즘 글루미족,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내공을 자랑한다. ‘어떻게 혼자 밥 먹냐’던 옛날의 겁쟁이들이 아니다. 일부러 쓸쓸해지려는 사람들, 쓸쓸함을 세련되게 즐기는 사람들, 글루미족이 사는 법은 D2~4면으로 이어진다.